1. 노사참여의 정의와 기본 전제

노동자 참여는 의사결정의 참가에 한정하는 협의의 노동자 참여와 의사결정 뿐 아니라 재무참가를 포함한 광의의 노동자 참여로 구분할 수 있다. 안전보건에서 노동자 참여는 지금까지 사업주가 갖고 있는 안전보건의 통제권 및 결정권을 배분하고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주로 의사결정의 노동자 참여에 해당한다.
의사결정의 참여는 노동자 대표를 통한 간접적 방식의 참여가 있고, 직접 노동자들이 참여하는 직접 참여로 구분할 수 있다. 조직의 의사결정을 수준에 따라 전략적․관리적․일상업무적 의사결정의 참여로 구분할 경우 간접 참여는 전략적 및 관리적 의사결정에 주로 해당하고, 직접 참여는 일상업무적 의사결정 내지 작업장 수준의 의사결정의 참여에 해당된다. 안전보건의 영역에서 볼 때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구성 및 참여가 전자에 해당하고, 위험 작업에 대한 작업중지권 확보 등이 후자에 해당한 참여의 예라 할 수 있다.
참여의 깊이 내지 노동자의 영향력 행사 정도에 따라 협의적 참여와 실질적 내지 이양적 참여를 구분한다. 협의적 참여는 안전보건에 대하여 노동자들이 의견을 개진하면 사업주들은 이를 수렴하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사업주가 내리는 경우에 해당한다.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심의, 의결 기능을 갖지 못한 상황에서 안전보건 현안에 대해서 사업주 내지 대리인에게 의견을 개진하는 통로 역할 밖에 못하는 현재 상황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반면 실질적 참여는 노동자에게 상당한 정도의 권한을 주고 이에 따른 책임을 부과함으로서 노동자들이 감독자의 간섭 없이 안전보건에 관한 의사결정이 공유, 분배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의결 기능을 갖고 안전보건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노사참여의 또 하나의 축인 사업주 참여는 노동자 참여와 전혀 다른 개념적 틀이 요구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의사결정이 사업주가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전적 의미로서 사업주 참여는 이미 완전하게 실현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조건과 위치에 처해 있는 사업주와 노동자를 노사참여라는 개념적 틀로 제시한 것은 안전보건 영역의 특수한 성격 또는 독특한 한국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안전보건과 관련하여 사업주가 수행하고 있는 의사결정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라 규정하기 어렵고, 다양한 규제를 통해 강제 받는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규제를 그 목적 및 필요성에 따라 구분하면 경제적 규제와 사회적 규제, 그리고 행정적 규제로 분류할 수 있다. 경제적 규제는 경제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주로 시장의 진입, 가격, 수량 규제 등의 형태로 시장 기구에 관여하는 규제이다. 이러한 경제적 규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최고 가격의 설정 등과 같이 가격 자체를 직접적으로 규제하는 방법, 보조금이나 관세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격을 규제하는 방법, 수량을 규제하는 방법 그리고 시장 진입을 통제하는 방안 등이 있다.
우리나라 헌법은 경제적 규제를 정당화하고 있는데, 헌법 제119조 2항에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규제의 목적으로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 소득 분배, 시장 지배력 남용 방지, 경제 민주화 등 네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사회적 규제는 환경, 안전, 보건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설정되는 조치이다.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거나 혹은 정보의 독점, 외부효과 등과 같은 시장실패 요인이 구조적으로 존재할 경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다. 사회적 규제의 성격상 경제적인 효율성이나 경제적인 가치는 부차적인 것으로 고려된다.
건강, 안전, 환경 등과 같이 사회적 규제가 목표로 하는 가치들은 측정하기가 힘들고, 화폐 가치 등으로 비교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아서 규제 강도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생길 수 있다. 안전보건의 예를 들면, 안전하고 건강한 사업장이 좋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렇지만, 안전보건을 위해 어느 정도의 투자가 필요하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법률 및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의 규제가 필요한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다만, 소득이 높아질수록 시민의 권리의식이 커질수록 사회적 가치를 더 중시하게 되고, 그 결과 사회적 규제에 대한 국민의 수요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특히 인권의 가치가 중요하게 취급되는 사회일수록 사회적 규제가 강화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평균적으로 소득이 증가하고 인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지금, 거꾸로 대표적인 사회적 규제 분야인 안전보건에서 규제완화가 논의되는 것 자체가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행정적 규제는 정부의 업무 수행과 관련된 서류 작업이나 행정적 절차에 관한 행위에 해당한다. 흔히 행정적 규제가 많을 경우 기업 및 개인에게 불편과 부담을 주고, 경제 및 사회적 성취도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과 같은 규제의 구분에 의하면, 안전보건의 영역은 대부분 사회적 규제에 해당하고 일정 부분 행정적 규제가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전보건의 성격 때문에 일반적으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그 자체의 주장이 정당한가를 차치하더라도 일부 행정적 필요성에 의해 규정되어 있는 일부 규제를 제외하면, 안전보건 분야에 해당하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강화되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 객관적 현실이다.
이처럼 안전보건에 대한 의사결정은 규제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자발적 의사결정 보다 규제에 따른 책임의 주체, 의무 수행자로서 인식되는 경향이 컸다는 점에서 안전보건 영역에서 사업주 참여의 현실적 동력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 규정에 근거할 때 노동자 참여는 의사결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노동자의 일반적 조건 속에서 의사결정의 분점 또는 분배를 달성해야 한다는 노동자 요구가 반영된 개념인 반면, 사업주 참여는 규제에 대한 수동적 행위자의 위치에서 탈피하여 적극적 행위자 또는 의사결정의 주체로 복원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매우 다른 맥락(context)에서 출발한 두 개념이 결합되어 있는 노사참여는 특정 조건과 상황에서는 성립할 수 있고, 노동자의 안전보건의 강화라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서로 가치와 이해가 충돌하는 지점에 처해 있을 때 노사참여의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대표적으로 노동조합의 유무, 업종, 규모, 고용형태 등에 따라 맥락적 조건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상황에 대한 분석 과정에서 그 노사참여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노사참여의 대전제는 안전보건의 특성을 볼 때 대부분 사회적 규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규제가 지금보다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일부 행정적 규제에 해당하는 일부 규정을 제외하면, 규제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결국 노사참여의 개념 설정은 규제완화와 연결되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규제의 방식을 법률준거 방식으로 할 것인지, 포괄적이며 실질적인 방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고 그 방향은 사회적 규제로서 안전보건이 강화되는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2. 노사참여의 구조적 틀과 특성의 이해

7-80년대에 한국사회를 지배한 담론이었던 성장 패러다임은 산재 문제에 있어서도 여전히 지배적인 담론이었다. 개발독재 시대에서 노동자는 고도성장을 위한 기계 부품으로 취급될 정도로 건강과 안전에 대한 무권리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면서 산재란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산물, 또는 사회적 비용쯤으로 여기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런데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 및 사회운동이 성장하고, 노동자의 권리의식도 함께 성장하면서, 또한 사회 전체적으로 인권의 중요성이 확산되면서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산재 문제를 풀어나가기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산재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경제 전반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면서 이를 해결할 수단을 찾게 되었는데, 이것이 산재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등장한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복지의 과잉에 따른 생산력 및 생산성의 정체’라는 구조적 조건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서구와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고, 여전히 성장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소한 안전보건의 영역만 보더라도 서구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안전보건에 관한 미국에서 지배적인 흐름으로 작용하고 있는 노사 자율관리 시스템을 살펴보면, 정부 주도의 규제 방식이 안전보건에 대하여 효과가 없기 때문에 노사간 자율적 해결 원칙에 근거하여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하고 제 역할을 수행하면, 안전보건의 획기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 연원과 배경은 다르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배적 담론으로 작동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노사자율관리 시스템이 이데올로기적 수사에 불과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 매우 어렵다. 실제로 이러한 시각과 정책이 미국에서 사회적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은 상당 부분 산업구조 및 생산조직의 변화를 전제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던 정부 주도의 규제가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전제된 것이란 점도 간과하기 어렵다.
따라서 영국과 미국에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핵심적 의제 중 하나인 ‘형식적 규제 완화’가 의미한 바는 기존의 안전보건시스템과 전통적 산업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생산조직 및 생산패턴의 변화라는 구조적 조건이 충돌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구조적 특성 때문에 전통적인 안전보건의 문제가 지배적인 위치를 점유하지 못하고, 새로운 안전보건의 문제가 부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과거의 생산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건과 환경 등에 투입되었던 비용이 점차 커지게 되면서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점도 이러한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러한 영국과 미국에서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한 신자유주의는 최근 자국 내에서조차 문제 해결을 위한 종착역이 아닌 사회갈등을 더욱 확대 재생산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고, 노동자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복지의 축소에 따른 빈부격차의 심화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하여 근본적 비판을 제기하는 사회적 흐름을 강화시키고 있고 패러다임 자체의 균열을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형성되고 있는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완화의 흐름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복지의 과잉’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할 수도, 존재해본 적도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또한 산업구조의 변화와 생산조직 및 패턴의 변화를 전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실 한번도 제대로 된 규제를 받아본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법적 제도적 규제 장치가 경쟁력 약화의 원인이었다고 진단되고 규제 완화가 어떠한 여과장치 없이 관철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안전보건 영역에서조차 지배적인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은 서구의 그것과 동일한 외양을 보이면서도 다른 특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전히 성장의 논리가 산재와 노동자의 건강에 앞서서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도 규제의 방식이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일방통행 식으로 규제완화 또는 폐지가 논의되고 관철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안전보건은 서구보다 훨씬 심각한 후유증과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고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들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과거와 동일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전일적 구조화는 강제 및 통제를 수반할 수밖에 없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양분하고 문제의 상당 부분을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등 주변부 노동자로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결국 노사참여적 안전보건체계를 새롭게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한국적 상황 또는 맥락(context)을 충분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3. 안전보건에서 사업주과 역할과 책임에 대한 이해

안전보건은 규제의 성격이 공공적이고 본질적으로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안전보건에 대한 규제 완화는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주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총 등은 사회적 담론으로 형성되고 있는 규제개혁을 명분으로 안전보건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폐기하려는 논리를 세우고 있다. 사회적으로 형식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실질적인 노동자 보호 장치로 만들어 나가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이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평가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어쨌든 안전보건은 그 특성상 규제 완화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현 조건에서 더욱 더 그러하다. 오히려 형식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에 그치는 규제 방식을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규제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러한 방법의 하나로서 노사참여가 논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을 정립하기 앞서서 안전보건에서 사업주의 책임이 왜 필요하며, 사업주의 책임의 수준과 양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사참여가 사업주의 책임을 면해주기 위하여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의 방식을 전환하고 수동적인 태도에서 능동적인 태도로 전환하자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현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노동은 사업주의 통제 하에 구상과 실행이 분리되어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과정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위험과 안전보건의 문제를 노동자가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자의 개인적 실수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는 대다수 안전보건 문제를 보면 대부분 사업장의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고, 결국 사업주의 의무와 책임에 해당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또한 일부 안전보건조치의 준수 여부만 특정화시켜 그에 대한 책임만 사업주에게 부과한다는 것은 사업주에게 책임을 면해주는 기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안전보건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주장은 모든 안전보건의 책임, 노동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건강상의 책임이 사업주에게 있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 및 의무는 산업안전보건법의 의무 이행으로 협소하게 이해될 소지가 크며,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근본적인 진전을 이루기 어렵다. 노사참여의 개념 역시 사업주가 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한 기제로 작동해서는 안되며, 사업주의 책임과 의무가 강화된다는 전제 조건에서 그 방식이 변하는 것으로 개념 설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 유무에만 맞추어질 경우 구조화된 안전보건의 문제를 끌어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이 조직되어 있어서 감시 기전이 작동하는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면, 비정규, 영세,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여전히 성장의 논리로 무장한 정부 관료, 검찰, 법원 등 지배적인 흐름에 제대로 대처하기 어려울 것이며, 사업주의 책임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과 역할은 산업안전보건법의 이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구조, 과정, 결과 전반에 걸쳐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4. 산재현황을 통해 본 노사참여의 필요성

2003년 노동부 산업재해분석에 의하면, 산업재해통계 집계가 시작된 1964년 이후 2002년까지 총 산업재해자수는 340만 명으로 대구광역시 전체인구 약 250만 명보다 많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기간동안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59,376명에 이르고 있다. 2000년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2,528명으로 산재보상보험 적용대상자 10만 명 당 26.7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인구 10만 명 당 21.3명인 것과 비교해볼 때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이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교통사고 사망률만 보더라도 OECD 30개국에서 가장 높은 비율인데, 산재사망은 이보다 더욱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재해율은 감소하는 모양을 보이고 있으나 반면 산재사망률은 감소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활동 연령의 일반 인구군의 사망자수와 비교하여 볼 때 일반 인구군의 사망자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산재 사망은 감소하지 않고 있으며, 2003년의 경우 오히려 증가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2002년 우리나라 산재사망 만인율은 2.46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을 나타내고 있으며, 국가경쟁력의 순위로 산재 사망률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볼 때 선진국은 물론 다른 개발도상국과 비교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또한 일부 국가의 연도별 사망률과 비교하였을 때도 5배에서 10배까지 높을 정도로 사망률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연도별 사고원인에 따라 사망자 분포를 보았을 때 추락, 전도, 충돌, 붕괴도괴, 협착이 차지하는 분율이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재래형 사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욱 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사망만인율을 살펴보면, 1-49인 규모에서 가장 높은 사망만인율을 보이고 있다. 300-999인의 경우는 1998년도에 가장 낮은 사망만인율을 보이다가 점차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2001년과 2002년의 경우 50-299인 규모 사업장보다 사망만인율이 더욱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문헌에서 직업관련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진 천식, 접촉피부염, 근골격계질환과 사고 중 직업관련성이 의심되는 상병명을 위주로 건강보험에 청구된 규모와 동일 상병명으로 산재보험에 적용된 건수를 비교 평가해보면, 20-59세 취업 인구에서 직업관련성이 큰 질환의 경우 산재보험이 아닌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경우가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입원만 하더라도 적게는 수십 배에서 많게는 수백 배에 이르기까지 건강보험에 적용을 받은 환자 수가 월등히 컸다. 산재보험 적용인구가 2003년 현재 1,059만 명에 이르고, 20-59세 인구 2,500만 명의 40%에 이른다는 점과 관련 질환이 대상 인구집단에서 직업관련성이 매우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수가 건강보험으로 이전되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특히 동일 상병으로 일년간 한 번 이상 외래에 방문하여 건강보험으로 적용을 받은 환자의 규모가 입원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재 요양이 주로 입원환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대부분의 직업관련성 질환으로 증상을 호소하는 병력자들이 대부분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각 상병을 천식, 접촉피부염, 근골격계질환, 사고 등 네 가지 상병군으로 분류하고 건강보험 입원환자와 산재보험 적용환자, 건강보험 외래환자와 산재보험 적용환자를 비교 분석해보면, 산재보험 적용대상자가 증가한 2000년과 2001년의 경우 산재보험 적용환자수 증가율이 건강보험 입원환자수 증가율에 비해 조금 높았지만, 2002년의 경우 오히려 건강보험 입원환자의 증가율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래 환자의 증가폭이 컸는데, 근골격계질환과 사고의 경우 2002년의 전년대비 증가율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까운 일본을 비교해보면,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1972년 이후 사망자수가 급속하게 줄어들었으나, 1980년 이후 감소세가 둔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1982년 이후에 지속적으로 산재 사망자수가 증가하고 있고, 1995년 이후 일정 수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은 동기간에 산재보험 적용대상자수가 급속하게 늘어났기 때문에 사망자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의 제정 효과가 전혀 발현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림1. 한국과 일본의 연대별 사망자 비교

이상의 특성을 정리해보면, 먼저, 우리나라는 재래형 산업재해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사망자의 규모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데, 일본이 산업안전보건법령이 발효된 이후 급격하게 산재 사망자가 줄어든 것과 비교해볼 때 매우 특징적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그 재해 발생형태를 보더라도 전통적인 사고성재해 유형이 지배적이라는 점이고, 규모를 보더라도 소규모 사업장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전통적 산재문제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산재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재보험 및 건강보험 자료 분석을 통해 볼 때 누적되어온 만성적인 직업관련성 질환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데, 산업화 기간 등 위험에 노출된 누적 기간을 고려할 때 향후 더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세 번째, 업종과 규모에 따라 안전보건 문제의 성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규모에 따라 산재의 유형과 발생 규모가 다르다는 것이고, 노동조합 등 노동자의 참여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물적 조건 등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업종 역시 안전보건 문제의 유형에서 차이가 존재하고, 노사의 대응력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구체적인 현황 자료가 없어서 분석은 하지 못했지만, 고용형태에 따라서도 안전보건 문제의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개념적으로 노사참여의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네 번째, 이러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지배적 담론을 형성하면서 안전보건 영역에서 규제가 완화되었으며, 그 결과 안전보건이 더욱 후퇴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종합해볼 때 한국은 오랜 기간동안 산재문제의 성격이 변화해온 선진외국과 달리 압축적인 성장 과정을 겪으면서 다양한 산재문제가 중첩되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가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노동자의 처한 조건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특성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따라서 노사참여는 일반 이론적 측면에서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산재의 특성을 면밀히 검토한 속에서 그 특성에 따라 접근 방식을 달리할 필요성이 제기된다고 하겠다.

5. 사업주의 책임 강화와 안전보건의 공공성 강화를 전제로 한 ‘노사참여’ 모형의 구축

기본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은 산재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예방하기 위하여 사업주나 노동자로 하여금 일정한 행위를 하도록 하거나 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전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통상적으로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고, 그에 따른 형벌이나 행정적인 처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이 예방법인 만큼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한 특정조항을 위반한 사항에 대해서만 처벌이 가능하다. 산재사고라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산업안전보건법의 위반사실을 적시하지 못하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전의 특정한 행위를 강제하는 데에는 적절할지 모르지만, 이 법에 규정된 사항 이외에 포괄적인 산재예방활동을 기대하기란 매우 힘들다.
사전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좋게 해석하면, 기업의 자율을 확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자율은 책임이 수반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산업안전보건법 이외에 산재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제는 물론 법적 조항도 매우 약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산재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처벌은 대개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산재사고에 대한 책임의 소재 및 배상이나 보상의 책임 문제가 잘 설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또한 기본적으로 사후 책임강화는 규제완화와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규제완화에 대처하기에 매우 바람직한 방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되어온 규제 개혁은 자율 규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징벌적 배상, 사후적 처벌 강화 등 사업주와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기준들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Better regulation’ 혹은 ‘self-regulation’이라는 정치적 수사보다 ‘규제 완화(Deregulation)’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에 대한 여론이 커지면서 최근 영국과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사업주 또는 기업의 산재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여 궁극적으로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징벌적 배상, 사후적 처벌 강화에 대한 움직임이 새롭게 일어나거나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움직임이 전무한 실정이다. 향후 노사참여 구조의 재구축을 위해 우선적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라 하겠다.
그런데,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기존의 안전보건체계로 해결되지 않을 뿐 아니라 노사참여에 기초한 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조건이 존재한다. 현 산업안전보건법을 액면 그대로 강조하여 규제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소규모사업장의 현실이 너무 열악하다. 실제 안전보건 관련 규제를 집행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소규모 영세사업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산업안전보건의 규제는 다른 규제마저 완화해야 한다는 빌미를 주기 쉽다.
소규모 영세사업장에서 산재사고와 직업병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공공서비스에 의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보와 자원의 부족으로 산재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서비스는 또 다른 행정 감시체계가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과 혜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규제완화가 안전보건 자체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진행되고 있는 만큼 소규모 영세사업장의 경우 적절히 규제를 유보시켜주되 그만큼 국가의 예산과 자원을 지원해야 한다. 즉, 기업이 자유스럽게 기업 활동을 하되 안전보건 측면에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수용 능력이 없는 개별 사업주에 대하여 규제의 책임을 면해주는 대신 정부가 공공서비스의 지원을 통해 다른 대기업과 비교하여 안전보건의 규제 효과가 동일하게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론 사업주는 정부의 공공적 개입 및 공공서비스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노동자의 건강평가를 포함한 사업장의 안전보건 평가 및 공정의 개선 결정을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관련 재원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산업안전보건은 공익성이 매우 강한 분야인 만큼 국가의 일반회계에서 재원 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안전보건에 대한 정부 예산의 직접적 지원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대부분 산재보험기금에서 산재예방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였는데, 산재피해노동자의 보장성이 취약하고 근골격계질환 등 직업관련성 질환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상황에서 산재보험기금을 통한 산재예방의 재원조달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안전보건은 공익성이 강하고 대표적인 사회적 규제의 영역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 분야에 대한 정부의 예산 지원에서 우선순위가 높아져야 한다.
이와 같이 다른 맥락적 조건에 있는 노동자와 사업주가 동일한 안전보건에 대한 목표와 수단을 합의하고 참여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안전보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의 영역과 수준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안전보건을 시장의 영역이 아닌 공공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공공적 지원과 개입을 강화하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러한 전제 속에서 노사참여의 범위와 내용이 확정될 수 있고 현실적인 모형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