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나기 전-빛바랜 종이 속 열정

1990년 ‘노동과건강연구회’가 펴낸 「제3차 산업안전보건활동을 위한 공동교육훈련자료집」을 펴본다. 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현재 한국자본주의의 특수성의 중요한 일 측면인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과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방법에 기초한 높은 노동생산성의 축적체제는 이전의 저임금-장시간노동에 더하여 70년대 중반 – 80년대에 이르는 포디즘-테일러리즘의 완성에 기초한 노동강도의 획기적 강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완성되었다. …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광범위한 저항으로 인한 노동시간의 단축과 그 궤를 같이하는 서구자본주의에서의 포디즘-테일러리즘의 정착과는 달리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방식(노동일의 연장)을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관철된 포디즘-테일러리즘의 한국(혹은 3세계 신흥공업국) 정착은 자본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 외에 다름이 아니다. … 이리하여 절대적 잉여가치에 의한 건강파괴와 상대적 잉여가치에 의한 건강파괴 즉, 이른바 “기아에 의한 죽음과 암으로 인한 죽음의 중복” 현상이 한국노동자 건강상태의 특징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
70년대에 걸친 산재건수의 급격한 증가, 재해율의 경향적 증가와 강도율의 뚜렷한 비약은 이러한 두가지 잉여가치 생산방식의 결합의 결과를 보여주며 이러한 비극적 결합이야말로 필리핀과도 다른, 또한 미국과도 다른 한국노동자의 전대미문의 건강파괴의 결과를 잘 설명해 준다.
물론 제3세계 신흥공업국의 자본축적체제의 일반적 특성만으로 한국의 산재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한국의 산재는 브라질보다도 대만보다도 매우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한국의 노동자계급이 같은 제3세계 신흥공업국에 비해서도 더욱 열악한 상태라는 사실로부터 다시 말하면, 자본의 공격에 대해 정치, 경제, 생활 전반에 걸쳐 무권리, 무방비 상태로 침탈당해 온 역사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이어지는 문장들에 눈을 옮기다 보면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를 거치면서, 제조업의 잉여가치율의 상승하락 곡선은 산재도수율의 상승하락 곡선과 아주 비슷한 모양새로 이어진다는 두개의 그래프를 볼 수 있다.
80년대 사회변혁의 열망 속에 산재문제를 정치경제학적으로 풀어간 이 글 속에서, 종이의 빛은 바랬어도 ‘시대정신’과 ‘열정’만은 활자 깊숙이 살아 있다.

그는 노동건강연대에 사무공간을 흔쾌히 내어준, 노동건강연대 새 사무실의 숨은 주인이기도 하다. 위 자료집이 나오던 때, 스무살이었던 필자는 원진레이온 직업병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대자보로 읽던 짧은 기억이 스친다. 그나마 정치적 수사도 화려한 여타 글들에 비하면 참으로 초라하였다.

그를 만나다-쉽지만은 않은 싸움의 한 가운데

그로부터 15년 후 2005년 봄, 뚝섬역 앞, 성수동의 영세공장들 사이에 자리잡은 그의 일터에서 그를 만났다. 1990년 그는 노동과 건강 연구회의 교육부원이었다. 2005년 그는 성수의원 이라는 작은 병원의 원장미며, 의 정책국장이다.
반갑게도 그의 ‘열정’은 아직 그대로이며, ‘시대정신’은 동시대성을 반영하여 더욱 치열해졌다고 한다면 지나친 칭찬일까.

은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치과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은 위한 청년한의사회 의 네 개의 보건의료인 단체와 노동건강연대로 구성되어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의료의 시장화, 사유화에 맞서, 공공성을 지켜내고 확대하기 위한 운동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다. 쉽지만은 않은 이 싸움의 한가운데, 우석균 정책국장이 중심을 잃지 않고 서 있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2004년 연말, 경제자유구역 반대 투쟁이 노동,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여의도 국회앞 ‘국가보안법철폐’의 드높은 함성 속에 ‘경제자유구역법 반대 의료개방반대’의 깃발이 올려지고, 천막이 들어섰더랬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법은 통과되었다. 깃발과 천막도 자리를 무르고 여의도를 나왔다.

** 연말, 경제자유구역법이 통과되었습니다.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싱겁게 끝난 것 같아 힘이 빠지지 않습니까?

12월 31일 28개 법안이 통과될 때 포함되어 통과되었습니다. 국회 안에 찬성파가 훨씬 많긴 하지만, 반대나 기권표도 40명이 되었거든요. 이른바 개혁적이라는 사람들이 어디를 바라보고 있느냐가 드러난 법안이라 할 수 있죠. 복지부가 버텼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멕시코에 가서는 통과시키라, 팩스를 넣었다는 얘기가 돌더라구요. 그러니까 경제자유구역법 통과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죠. 한나라당 보건복지위원들은 이유야 어쨌든 반대했구요.

** 경제자유구역 안에 병원이 들어선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생길 수 있습니까?

경제자유구역 안에 외국인 병원을 개설하고,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인투자법에 따른 외국인이거나 외국병원이 국냉 병원을 만드는 게 가능해집니다.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신자유주의 법안들, 기업도시법, 과학특구법, 경제자유구역법에는 모두 의료, 교육문제가 걸려있습니다.

** 노무현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분명한 방향을 갖고 가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 국민들은 정확한 실상을 잘 모르거나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에도 여러 길이 있습니다.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정책의 극단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모은 돈을 외국에 팔거나 주식시장에 내놓아 자본의 통제 하에 두고, 자본의 밑돈을 대는 것, 이것이 사유화정책이고, 정부가 주장한 뉴딜정책입니다. 연기금이 100조가 남으면 못 먹는 사람들 먹일 방법을 강구하면 되지 않나요. 그런데 정부는 공공서비스사유화에만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미 물이 사유화되었고, 상수도도 2006년에 사유화됩니다. 김대중정부가 시작한 공공부문 사유화를 서비스부문 사유화로 완성하는 것이 노무현정부입니다.
그런데 보수언론에서는 국민의 80%가 의료개방을 찬성한다고 나옵니다. 외국병원이 들어오면 좋겠다는 거예요. 진료비가 비싸도 외국병원이 들어오면 난치병도 치료되고, 의료의 질이 높아질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는 거죠. 개방은 좋은 것이다. 불가피한 것이다 라는 인식도 상당하구요. 그러면서도 우리 병원들이 비싸다 불만이 많죠. – 사실 외국병원이 들어오면 더 비싸지는데도 – 시민단체들 또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어요.
학교, 병원, 노인요양, 군시설, 공공청사 등을 기업이 짓고, 국가에 임대하는 민간투자법도 심각합니다. 국가가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는 거잖아요. 국가가 나서서 공공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을 전파하고 있는 거죠. 공공서비스 영역에다 수익성사업을 해야하고, 이윤을 내야 한다는 압력을 줍니다. 민간투자법에 의하면 공공의료기관도 지금 들어서는 민자역사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민자역사의 부대시설에서 나오는 수익은 민간이 다 가져가는 것이죠. 적당하게 사회안전망을 갖고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유럽 좌파 정권들보다도 노골적으로 사유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 공공의료의 상황이 최악이라고는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정부는 손놓고 있고, 재벌들이 병원을 짓고 돈벌이에 뛰어든다는 것은 대충 보아도 보이는데…

1980년대부터 삼성, 현대 병원이 생기면서 대기업이 병원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대우재단도 아주대 병원을 만들었죠. 거대자본이 사립대 병원까지 진출하면서, 병원이 고급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값비싼 기계를 들이고, 비급여 진료를 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한 거죠.
의료에까지 자본이 뛰어들어 사정이 이러한데도, 공공부분에 대한 정부투자는 전무합니다. 8,90년대 정부가 공공의료에 투자를 안 하고 노니까, 국립병원하면, 거미줄에 다 쓰러져가는 병원들로 비춰진 것이죠. 우리는 전체 병상수에서 국립병원의 비율은 고작 8%인데, OECD 국가들은 75%가 국립병원이예요. 대만, 필리핀보다도 적죠. 최악입니다. 지난 의사파업 때 정부가 힘을 못 쓴 건 의사파업을 막을 수 있는 방패막이 없기 때문인데, 이런 그림 속에서 방안이 나오겠습니까, 안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공공의료의 외딴 섬입니다. OECD 국가들은 의료보험을 포함해 70-80%의 의료보장율이 되는데, 우리나라는 의료보험과 의료급여를 합쳐서도 45% 밖에 안되거든요. 이미 시장화되어 있습니다.
암웨이, LG 등 대자본이 이미 건강식품 사업에 나선 상황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자본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 장악당한 채 살게 되는 겁니다.

** 누구를 위한 의료이길래 이 정도로 방치하는지, 정부가 누구를 바라보며 이 정도 까지 나가는 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정부의 생각은 의료를 자본에 개방하는 겁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미 자본에 맡겨져 있는 의료를, 더 못가게 버티는 게 순서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의료공공성의 마지막 보루가 무너진 거죠. 이미 시장회되어 있는데, 아주 더 들어오라고, 빗장을 다 뜯어버린 겁니다. 우신 인천 경제자유구역 안에 외국병원들이 두 개가 생긴다고 합니다.
제가 레지던트 할 때, 그 병원에서는 지방사람들만 오고, 강남사람이 오지 않는다면서, 병원의 고급화를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빅4 체제가 되면서 고급진료위주로 바꾸기 시작하자, 도미노식으로 영향을 주었고, 그 결과 의료비지출이 GDP의 2배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필요에 의한 자연 증가분으로 의료비가 늘은 것이 아닙니다. 자연상승된 것이 아니다. 과잉진료로 늘어난 것이다. 의료에 대한 대기업진출이 사보험료와, 노인의 의료비를 늘렸습니다. 경제자유구역 안에 병원이 생기면 건강보험체계에서 이탈하는 병원이 생기고, 맹장수술이 40만원 들 것이 1000만원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됩니다. 보험적용을 안 해도 되면 우리나라 병원들 모두 건강보험 탈퇴하고 돈벌이만 하려고 할 것입니다. 진료비를 올릴 것이고, 정부에 대해서도 더 많은 돈벌이를 하게 해 달라고, 요구가 많아질 것입니다.
상급병실을 호텔같이 지어놓고 부자들만 치료받을 수 있는, 한마디로 정부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이죠.

** 의료인들 역시 정부와 마찬가지로 의료의 공공성이나 사회적 성격에 대해서는 문제의식이 부족한 것 같이 생각되는데요?

병원협회, 의사협회는 경제자유구역법에 찬성했습니다. 대놓고는 말하지 않아도, 의협 대변인이 의대학생들에게 신자유주의가 갈 길이다,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운동이 신자유주의에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 틈새를 비집고 신자유주의논리가 힘을 얻어 스며들고 있습니다.

** 그런데도 왜 국민들의 불만은 조직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우문에 대한 현답을 부탁드립니다.

아니죠. 국민들은 생활이 나빠진다고 불만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를 확장하고, 공공서비스를 확장하라는 요구를 못하는 사회운동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겨울에 일어난 대구 어린이 아사 사건같은 경우에도, 빈곤과 사회보장의 문제를 사회문제화하지 못한 운동의 책임이 근 거 아닌가요?
운동의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시민운동은 여전히 정치적 시민원은 말하면서, 사회적 시민권은 말하지 않고 있잖아요. ‘국보법이 밥먹여주냐’는 시민들의 불만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는 걸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서민들이 느끼는 문제를 정치화하지 않으면 정치적 시민권조차 흔들린다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하는 거죠. 사회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도 퇴행하게 되고, 의식이 퇴행합니다. 과김히 치지 못하면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되죠.

** 사실, 이 정도면 사회운동은 노무현정부에 대해 지금보다 더 강한 저항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요?

2005년에는 책임 못 지면 나가라,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남아공 만델라가 30년 장기수 하다가 대통령이 됐지만, 10%의 백인이 90%의 부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 90%의 흑인들이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살아가고 있죠. 서민적, 민중적 제스쳐를 쓰지만 브라질 PT당 역시 공공서비스를 팔고 있고요.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진한다는 건 모순이죠. 민주주의 이름으로 파병하는 역설이 나오게 된 것처럼 말이죠.

** 노동자들이 공공부문 투쟁을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문제로 이해하는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싸움이 관건이 될 것인데, 보건의료노조가 공공의료 투쟁에 나선 것은 좋은 선례가 될 것 같습니다.

사유화 반대투쟁에 노조가 나서야 하는 거죠. 보건의료노조의 의료개방 반대투쟁을 높이 사야 합니다. 전교조 사립학교민주화 투쟁에는 나섰지만, 교육개방문제를 놓쳤습니다. 보건의료노조는 병원의 영리법인화가 자신의 이해관계와 결려있어요. 구조조정이 자기 문제가 되는 것이죠. 병원이 주식회사가 되면 정부의 조정을 벗어나 수가가 올라가고, 자본의 논리대로 움직이게 됩니다. 영리화가 되면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해고 등 구조조정이 오게 돼 있으니까요. 자본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봐야 합니다.
이번 투쟁에서 경제자유구역법 싸움은 졌지만 기업도시법에서 교육과 의료개방을 제외하는 성과가 있습니다. 일부는 막은 것입니다. 분명히 투쟁의 성과가 있습니다. 재경부가 공공의료에 4조원을 지원하도록 하는 약속을 받아낸 것도 성과죠.
또 하나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요, 네덜란드에서 연금개악분제가 터졌을 때 노동자 20만 명이 모였습니다. 건국이유 다섯 번째로 많은 인원이 모였다고 하는데, 대다수가 젊은 노동자들이었다고 합니다. 연금은 노동자의 노후문제라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모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우리도 국민연금 문제를 고령화 문제로 보거나, 세대간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문제를 왜곡시키는 겁니다. 네덜란드 젊은 노동자들은 연금축소를 노동자계급의 문제, 내 문제로 본 거죠. 자신들도 늙기 때문이구요, 따라서 연금 축소는 공공재산의 탈취로 봐야 한다는 합의가 있는 것이죠.

** 그렇다면, 의료의 사유화를 막고, 공공성을 확대하는 전략이랄까, 장기적 계획을 어떻게 가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건강보험의) 보장성강화 싸움과 연계해야 합니다. 낮은 보장률을 높이는 것부터 합의해야죠. 자본과 정부의 움직임을 보고 약한 고리를 잡아서 싸우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철도나 전력도 막아내지 않았습니까. 막을 수 있다고 봅니가. 가장 강력한 건 파업이겠지만… 2005년 싸움은 특구에 대한 싸움을 확대하고 큰 싸움으로 가야 합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이야기하면서 이데올로기를 선점해야 합니다. 있는 것은 더 빼앗기지 않도록 지켜야 하구요, 보건의료와 사회복지의 연대가 필요한 부분이죠.

** 아, 말씀하신 무상의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이 있고 노동자들의 싸움으로 확대할 수 있는 희망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뎅요, 무상의료로 가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제시할 수 있을까요?

1단계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누구나 빈곤선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무상의료해 주고, 나머지 아이들에게도 부담금을 경감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의 본인부담상환제처럼 말이죠. 현실적인 목표를 잡고, 사회복지의 본질적 변화를 이뤄야 합니다. 사회적 이슈에 접근하면서, 국방비를 줄여야 사회복지가 나온다는 얘기를 해나가야죠. 총과 빵의 법칙으로, 반전평화운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쟁은 신자유주의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으니까. 사회 이슈에 대한 다양한 참여로 무상의료, 무상교육에 이르는 길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이야기를 돌려 보건의료운동과 노동자 건강운동에 대한 전망을 이야기 해 보고 싶은데요.

보건의료운동이 잃어버린 것이 지역운동과 평화운동, 그리고 노동자건강운동입니다. 노동자건강 운동은 초기에는 광범위한 의료인이 참여하는 운동이었으나, 대중적 활력을 잃어버린 면이 있습니다. 노동과 건강 연구회가 대중적 운동을 못한 면이 있어요. 보건의료운동이 되찾아야 할 부분입니다. 올해부터 의식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보건의료에서 노동자건강은 기본인데. 중요한 것은 보건의료운동에서 노동자건강운동이 대중성을 가지려면, 보건의료인 활동이 있는 지역, 현장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거죠.

** 노동자건강권 운동의 대중화 방안이라면? 별로 고민이 깊지 않았네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 좀더 듣고 싶습니다.

보건의료영역은 부문운동이라고 하지만 운동은 부문만 한다고 되지 않잖아요. 의료는 교육과 연계되고, 의료는 신자유주의, 노동과 복지와 연계되고 여기에는 다시 교육이 연계됩니다. 다종다양한 연대와 모색을 해야 합니다. 단일이슈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해야죠.
부문주의에 빠지지 않는 게 중요한 것이, 사회 전체적인 운동진영의 정책과 이에 대한 전체 정치적 입장을 이해해야 합니다. 반신자유주의, 반전평화 아래 같이 가면서, 우리는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꿈꾸는데 정말 이를 내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죠. 토론이 필요하지만, 국민들은 민주노동당이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의 건강은 상품이 아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못 가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 지금은 무상교육으로 중학교까지는 가잖아요. 무상의료도 그 정도 선에서는 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이렇게 내걸고 갈 수 있다고 봅니다.

** 노동건강연대가 보건의료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실천방안을 제시하신다면요?

노동건강연대는 흔들릴 수 없는 방향성을 갖고 가야 합니다. 보건의료운동과의 유기적 결합방향은 없는지 찾아야 하죠. 보건의료인들은 노동자건강문제에 대해 잘 모릅니다. 노동자건강 관련해서 지금 이슈가 뭐냐, 보건의료인들 대상으로 강연도 해야 하구요, 노동자건강이 어디만큼 왔나, 뭘 해야 하나 말해야 합니다.
보건의료인들은 각 조직마다 지역사업으로 무얼 해야 할 지 고민이 많은데, 노동자건강사업은 지역사업으로 하기 좋은 운동 아닌가요. 사례를 만들고, 강연을 다니고 하면 좋은 성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거든요. 보건연합의 각 단체와도 유기적 결합을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구요.

**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한가지… , 최근 담뱃값이 올라도 금연에 힘쓰는 사람을 거의 못 본 것 같은데요, 담뱃값 인상이 국민건강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봐야 할까요?

담뱃값 인상은 노동자들에게는 사실 별 영향이 없을 거예요. 담뱃값 인상은 주로 청소년의 흡연에 대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는 건데요, 노동자들은 한 5천원 선이 되면 상당수가 끊지 않을까요.
문제는 담뱃값 인상분을 어디에 쓰느냐 인데요, 담뱃값 올리면서 일반회계를 깎고, 담뱃값으로 정부 할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거죠. 담뱃값을 올려서 나오는 수익은 서민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 전제하에 담뱃값 인상에 찬성할 수 있는 것이죠. 사회복지를 축소하면서 담뱃값을 인상한다면 반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의 대화는 여기에서 중단되었다. 환자들이 기다리는데 언제까지고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양념처럼 물었던 마지막 질문, 담배 이야기에서도 철저하게 노동자, 민중에게로 환원되는 그의 공공성 논리를 확인하니 여기쯤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나와도 될 듯 하다.

사실 노동자건강 문제라는 것이 보건의료의 문제와 다를 수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역사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무섭게 먹어치우며 성장해 왔고, 그 안에서 노동자의 보건의료 문제는 체제 유지에 필요한 만큼만 ‘ 관리’ 되어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 ‘관리’ 체제가 노동자의 저항이나 참여 없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에는 ‘의학’이라는 지극히 전문적 지식과 기술이 개입하면서 노동자가 객체가 되고, 대상화 되어 온 역사가 또한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가. 노동자들이 작업장 안과 밖의 틀을 부수고 사회공공성 강화, 의료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싸움의 주체로 나서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은 일로 보이는 것은.

그와 헤어진 후-문제가 있던 그 자리

다시 앞의 자료집을 펼쳐 본다.
산업재해는 사회적 산물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같은 자본주의 사회라 할지라도 미국과 한국이, 필리핀과 한국이 각각의 특수성에 따라 특수한 산재발생 현실과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

그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우리는 미흡하나마 한국의 산재추방운동의 발전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장구한 투쟁과정의 일부를 차지하는 합법칙적인 발전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한국의 산재추방운동 또한 노동자계급의 일반적 과제의 해결과 그 전망을 같이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산재추방운동이 현실상에서 다양하고 구체적인 여러 계기 속에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그 본성상 여타의 사회, 정치적 운동과의 상호관련을 통해 보다 자신의 의의를 더해 가리라 생각되며 아울러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적 재편과정에 중요한 한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노동자계급의 건강문제는 ‘계급’의 문제이며, ‘정치’의 문제이다. 노동자계급이 ‘산재추방운동’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자들의 지배 아래 계급내부의 재구성화 과정을 온 몸으로 겪으며 저항하고 있는 21세기 한국의 노동자계급에게 산재는 여전히 떨쳐내지 못한 ‘구악’이며, 새롭게 다가올 ‘재앙’이다. 그러하기에 한국의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건강문제를 정치사회적 문제로, 원래 문제가 출발했던 그 자리로 되돌려놓기 위한 계획을 시급히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21세기의 ‘산재추방운동’은 사회공공성 투쟁이자,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투쟁이며, ‘무상의료’를 위한 투쟁이 될 것이라는 것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