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노동이 급격하게 증가하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비정규노동이 급격히 증가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기업조직의 변화와 노동의 유연화 경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노동공급 측면에서의 비정규직 선호 경향, 추세적 요인이나 경기적 요인, 정부의 각종 정책, 노동조합의 효과적이지 못한 대응 등이 부가적으로 비정규노동 증가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여 임금, 노동조건, 사회보장 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차별을 받고 있으며, 그에 따라 불평등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은 비단 이러한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건강의 측면에서도 크나큰 불평등을 경험하고 있다. 최근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들에 따르면, 노동조직, 고용형태 등이 노동자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비정규 형태로 고용된 노동자의 건강이 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쁜 결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다양한 연구 결과에 비하면,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실태를 드러내 주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단위 사업장 내에서의 건강 실태 조사는 일부 존재하지만, 전국적 규모 혹은 특정 산업 규모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실태를 나타내주는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 한국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실태를 서술할 이 글의 한계는 명확하다. 현재까지의 결과를 종합하여 향후 필요한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주요한 목적이다.

1. 불안정한 일자리는 건강을 위협한다

비정규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유해요인 노출과 같은 불건강한 노동조건에 노출되는 정도가 정규직에 비하여 더 높은지를 평가해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건강 이상 증상 호소율, 스트레스 지수 등의 주관적 건강 지표나 산재율, 산재사망률 등의 객관적 건강 지표에서 차이가 나는지를 비교해 볼 수 있다.

먼저 정규직과 비정규직에게서 불건강한 노동조건에 노출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면,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하여 더 위험하고 더 유해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2000년에 유럽연합의 더블린 재단 조사에 의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힘든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7%의 임시직 노동자들이 고통스럽고 지루한 자세로 근무하고 있었고(정규직의 경우 42%), 38%가 심한 소음에 노출되고 있었으며(정규직의 경우 29%), 66%가 반복적인 동작을 행하고 있었다(정규직의 경우 55%).
이는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8년 노동과건강연구회가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작업환경측정 결과를 비교하였을 때, 소음, 분진, 중금속, 유기용제 등이 원청에 비해 하청사업장에서 높은 허용농도 초과율을 보였다(그림 1 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보다 위험하고 유해한 작업 환경에서 노동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주관적 건강 지표나 객관적 건강 지표에서도 정규직에 비하여 더 나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외국의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자기 기입에 의한 재해 경험률, 정신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 등 주관적 건강 지표뿐 아니라, 재해율, 재해사망률, 혈압 등 객관적 건강 지표 모두 정규직에 비하여 비정규직이 좋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하여 스스로 건강하지 않다고 느끼는 경향이 높고 삶의 질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인하여 불안, 우울 등의 정신 증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혈압이 증가하는 등 심혈관계질환 발생의 위험성이 높다. 그 결과 산재가 더 많이 발생하고 산재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더 많다. 한편 철도사영화에 따른 결과를 연구한 논문에서 철도 보수 작업이 외주용역화 되었을 때 철도 관련 사고가 더욱 빈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동의 비정규화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다른 이들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혈압은 높고, 삶의 질은 낮다

특히 최근 외국에서는 비정규노동과 직무 스트레스 및 직업불안정성과의 관련성을 살펴보고, 비정규노동의 특징인 직업불안정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한결같이 비정규직 노동자은 직무 스트레스가 높고, 직업불안정성이 높다는 결과를 내고 있고, 이와 같이 높은 직업불안정성과 직무 스트레스가 복합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들 중 몇 가지 결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04년 호주국립대학에서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직무스트레스와 직업불안정성이 모두 높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에 비해 우울증상은 14배, 불안 증상은 13배, 육체적 건강 문제는 4배나 높았고, 스스로 느끼는 건강 상태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7배나 많았다. 2004년에 하버드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직업불안정성이 높은 이들은 관상동맥질환과 같은 심장질환에 걸릴 확률이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 연구자들이 2003년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직업불안정성이 높은 노동자들이 감기에 걸릴 확률이 1.4배 높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하였다. 런던의과대학에서 2002년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직업불안정성이 높은 여성 노동자들은 혈압이 높고 몸무게도 적었다. 2001년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이루어진 연구에서는 직업불안정성이 높은 노동자들은 안전보건에 대한 동기 부여가 적고, 안전보건 규칙 준수도도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이러한 요인들이 산업재해의 빈도를 높이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국의 경우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여러 면에서 나쁜 건강 상태를 보이고 있다. 먼저 주관적 건강 지표를 비교한 결과를 살펴보면, 최홍열 등은 2001년에 행한 연구에서 조선업종 원청노동자에 비해 하청노동자의 일반적 건강상태 평가지수가 더 낮은 것으로 보고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개인의 삶의 질을 평가하는 도구로 개발된 SF-36 설문지를 사용하여 원청과 하청노동자 자신이 느끼는 삶의 질을 비교 평가하였는데, 원청노동자의 평균점수는 63.9점인데 반하여 하청노동자의 평균점수는 61.2점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았다. 이는 하청노동자가 원청노동자에 비하여 삶의 질이 더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트레스는 높고 사회적 지지도는 낮다

정규직에 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는 스트레스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향란이 병원노동자들을 대상으로 2003년에 행한 연구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직업불안정성, 직무위험성, 스트레스가 높았고, 직무자율성, 상사의 지지는 낮았다(표 1 참조). 고상백 등이 2004년에 조선업종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원청노동자에 비하여 하청노동자들의 직업불안정성, 직무요구도, 스트레스가 높고, 직무재량도, 사회적지지도는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표 2 참조).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해 해고나 감원 등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고, 직무와 관련해서 자기결정권이 낮아서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각종 질병에 자주 걸리며, 이는 특히 직업관련성 질환인 경우 더욱 심각하다. 백도명이 2003년에 행한 연구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에 비하여 더 많이 질병에 걸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1998년에 전국민을 대상으로 시행된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것인데, 정규직의 48.7%에서 지난 2주 동안 앓았던 질병 내지는 증상이 있었던 반면에, 비정규직에서는 53.1%에서 질병 내지는 증상을 갖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지난 3개월간 앓고 있던 만성질병을 파악하였을 때에도 정규직은 58.7%, 비정규직은 61.8%가 만성질병을 앓은 것으로 응답하였다(그림 2 참조). 그뿐 아니라 이 질환들을 직업관련성 여부와 관련지어 분석하였을 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일반 질환보다 직업관련성 질환에 걸리는 경우가 더 많고, 한편 직업관련성 질환일 경우 의료기관에서 치료받는 경우도 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국산업안전공단이 2004년에 발간한 ‘비정규직 근로자의 건강실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파견근로자의 54%가 ‘건강이상’을 호소했으며, 정규직과 시간제 근로자의 경우 각각 40%, 일반임시직 36%가 신체적 이상증세를 자각했다. 신체가 불편한 부위의 숫자도 파견근로자의 평균치가 0.95곳으로 조사돼 정규직 0.66곳, 시간제 0.64곳, 도급근로자 0.63곳, 일반 임시직 0.57곳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파견근로자의 36%가 고통을 호소한데 비해 정규직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4%만이 해당 통증을 자각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객관적 건강 지표를 비교한 결과 역시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하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비해 작업장에서 더 많이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 1998년 노동과건강연구회가 금속산업 사업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하여 산업재해를 더 많이 당하고,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원청노동자는 10,000명당 1.91명의 사망재해를 보이는 반면에 하청노동자의 경우 10,000명당 8명이 사망재해를 보였고, 재해율 역시 원청은 0.74, 하청은 1.70을 보였다. 그리고 한국산업안전공단이 2001에 펴낸 미발간 보고서에 의하면, 정규직 노동자의 재해율은 1.16이었으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재해율은 1.24로 정규직 노동자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망만인율은 3.09로 정규직 노동자의 0.29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다(그림 3, 4 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혈압 등 스트레스 수준에 영향을 많이 받는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도명이 2003년에 행한 연구에 따르면, 혈압,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 등을 비교하였을 때,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하여 혈압도 높고, 혈중 콜레스테롤 농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정규직에게서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비정규노동자가 건강할 수 없는 네가지 요인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하여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압박에 시달리기 때문에 이것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계약 경쟁 속에서의 경제적 압박, 계약을 지속하여야 한다는 압박, 최저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 등에 시달리는데 이것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압박은 일차적으로 직무 긴장도 및 직업불안정성을 증가시키고, 이러한 직무 스트레스의 증가는 종합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나쁘게 만들고, 안전보건과 관련된 사항들에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만든다.

둘째로 이런 압박은 비정규직 노동자로 하여금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도록 만드는 등, 노동 강도의 강화 경향을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성과급으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닐지라도, 사업주의 경제 상태가 좋지 않을 때에 과도한 노동을 하도록 강제당할 수 있고 이것을 거부하기 힘들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위험하고 해로운 작업환경에서 일하도록 만든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나 하청 노동자는 안전하게 작업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등은 큰 사업장이나 정규직 노동자가 하기를 거부한 일을 받아들이도록 강제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한다.

셋째,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파트타임 노동자 등의 존재 자체가 작업장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해체를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도 동원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작업장에 그 작업에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가 존재함으로써 전체적인 안전보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다. 임시노동자나 하청노동자는 해당 작업에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있고, 직업안전보건 관련 규칙이나 법규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들에게는 이와 관련된 정보의 교육 기회가 박탈된 경우가 많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 소속되어 있는 경우가 적고, 그들 자신의 이해를 지키기 위해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들도 간접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직업안전보건 관련 제도는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어진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제도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제도가 존재하더라도 그 제도에 따른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하거나, 권리 주장을 하였을 경우 직업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예방을 위한 제도뿐 아니라, 산재보험 제도도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안전망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고, 적용대상이더라도 정보 부족이나 고용 유지에 따른 불안 때문에 이를 활용하는 경우가 적다. 이러한 상황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여 임금, 고용, 노동조건 등에서 불평등을 경험할 뿐 아니라, 건강의 측면에서도 크나큰 불평등을 감수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건강 불평등은 보다 직접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전체 노동자의 5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노동자의 건강은 곧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이라는 인식이 문제해결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