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정규노동자에게서 안전보건상의 문제가 더 많이 일어난다
비정규노동자들에게서 안전보건상의 문제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노말헥산 유기용제 중독이 발생한 이주노동자들만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일용직 및 임시직을 포함한 전체 비상용직 노동자들에게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그 동안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 등 여러 가지 자료를 바탕으로 설득력 있게 보고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안전보건상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있어서는 기술적 요인 + 관리적 요인 + 사회문화적 요인 등의 결합이 작용하고 있다. 즉 노동을 통하여 노동의 주체가 위험기구나 유해물질을 다루게 되며, 이러한 노동의 과정에서 관리적 요인을 통하여 노동시간, 배치, 교육 훈련 등에 있어 제대로 된 통제가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한편으로 이러한 잘못된 구조가 사회문화적 요인에 의하여 문제가 발생하거나 악화될 때까지 지속되고 강화되는 경우에 실제 안전보건상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좀 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여진 이주노동자들을 포함하여 전체 비정규노동자의 현황은 이러한 과정 중 여러 지점에서 안전보건상의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안고 있다.
나쁜 작업환경과 기술적 요인
현재 비정규직의 안전보건문제 발생에 있어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은 정규직에 비하여 열악한 작업환경이다. 이러한 현황은 우리 사회의 주변부 노동력이 투입되는 업무의 성격이 임금과 안전보건문제를 비롯하여 여러 차원의 고용조건이 열악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단순히 3D 업종이 아니라 재래식 공정에서 그 나마의 보호구도 갖추지 못한 상태로 작업을 하여야 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열악한 환경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비정규직이 갖는 특성상 직업 안정성이 손상되어 있음으로 해서 업무가 주는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는 점이 단순히 비정규직이 담당하는 작업의 물리적 차원뿐만이 아니라 사회심리학적 차원에서도 그 문제가 심각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작동하지 않는 미시관리적 요인
한편 이러한 위해요인에의 과다한 노출이 갖는 문제 이외에도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 적절한 훈련이나 교육도 없이 투입되어야 하는 고용관계 또한 문제발생의 주요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는 단순히 비정규직의 고용관계가 단기간에 걸친 것이어서 충분한 훈련이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 이외에도 비정규직의 특성상 생활방식이나 습관 등에서 장기 근속자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점, 교육수준이나 사회경력에 있어 훈련이나 교육에 대한 수용도와 준비상태가 다르다는 점 등에 있어서 정규직과 달리 적절한 훈련이나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많은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게서는 언어의 문제가 겹치면서 제대로 된 관리가 전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
충격완화장치가 없다
마지막으로 비정규직에서 문제발생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지적되는 점으로는 정규직과는 달리 문제발생을 예방하거나 이의 영향을 감소시킬 수 있는 충격완화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고용관계로 비롯되는 공적 영역의 삶이 가족 단위 내지는 다른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영역의 삶과 맞닿아 있으며, 한쪽의 문제는 결국 다른 쪽으로 넘겨지거나 흡수되어 해결되거나 내지는 해결되지 못하면 다른 형태의 문제가 불거지는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취약한 가족관계와 빈약한 경제적인 상황은 임금이나 다른 사회보장적인 조건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그 자체로서 안전보건관리와 문제해결 여력의 차이를 초래할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사적 영역에서의 충격완화장치 이외에도 공적영역에서의 문제해결장치 또한 정규직과는 달리 열악한 상황이라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즉 고용관계를 통하여 발생하는 안전보건문제의 관리와 해결을 위하여 법적 제도적으로 마련된 장치들로서 사고나 질병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이나 조치들을 비롯하여 사업주의 의무 내지는 필요한 조치로서 강요되는 규제와 기제들이 단기간의 고용관계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리하게 작동하는 거시관리적 요인들
한편 이와 같은 직접적인 요인들 이외에도 이러한 원인들을 초래하는 근본적인 배경과 원인작동의 중간기제를 제공하는 요인들이 전체 문제해결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러한 배경원인 내지는 중간 작동기제들로서는 여러 차원의 요인들이 작용할 수 있으며, 앞서 언급한 원인들에 좀 더 가까운 배경원인으로서, 사업주, 노조, 감독기관을 비롯한 주체들의 역할과 입장이 고용관계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들 수 있다.
비정규직들의 경우 노조결성 및 가입이 정규직에 비하여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며, 이러한 차이는 안전보건을 비롯한 고용상 제반 문제 제기와 그 해결에 있어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 한편 사업주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하청업체의 소사장을 비롯하여 특수 고용관계가 발생하며, 동일한 인원이나 동일한 집단에 대하여 여러 명의 사업주가 관여하게 되거나 그 관계가 분화하여 일관성 있는 내지는 효과적인 경영체계를 갖추기 어려워지는 면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근로감독에 있어서도 전과는 달리 유효한 기제를 확보하지 못한 집단을 대상으로 기존의 정규직과는 다른 접근을 하여야 하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체적으로 변화하는 고용조건에 적합한 관리체계를 마련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상용직의 감소와 일용직 및 임시직의 증가로 나타나는 고용관계의 변화는 보다 근본적인 경제활동의 변화로서 대기업의 구조조정, 외주와 하청의 증가, 그리고 고용의 유연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논리는 또한 한편으로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하려고 하는 신자유주의에 의하여 제공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는 전체 자본과 사회적 규제의 세력관계 속에서 기존의 조건들에 의하여 받는 제약을 넘어서서 지속적인 자본의 확장을 이루려고 하는 시도들이 표현되는 결과로서 나타나고 있다.
불합리한 사회문화적 요인들
이와 같은 안전보건문제 발생 작동기제의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처하여진 열악한 기술적 관리적 여건들이 본인의 노력이나 상황에 비추어 부적절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사회문화적인 요인들이 있다. 즉 교육받지 못하거나 다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낮은 질의 고용조건에 처하여진 것이 부적절한 것이 아니며,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안전보건상의 문제들을 포함하여 주어진 처지에 만족하여야 한다는 사회적 판단이 문제발생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안전보건의 문제가 경제적 효율이나 능력에 따른 경쟁의 자유에 우선하지 않으며, 결과적으로 본인의 노력이나 능력에 따라서 안전보건의 문제가 다른 것도 용인된다는 입장이라고 할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이러한 배금주의 경향과 함께 확대되는 사적영역, 즉 소유자 자유의 불합리한 확대가 우리 사회에서의 안전보건문제의 근본적 배경이라고 할 것이다.
2. 비정규영세노동자 안전보건 정책의 현실
(1) 정책은 없고 기술지원만 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수행되고 있는 비정규영세노동자계층의 산업안전보건사업들로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우선적으로 비정규직 자체에 대한 대책이 아니며 제조업종에 국한된 사업이긴 하지만 영세사업장 안전보건기술지원사업으로서 Clean 3D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이는 영세사업장들에 대하여 일부 건강관리와 함께 안전보건상의 정보를 제공하고 작업환경측정 등을 무료로 해주는 사업이다. 이러한 사업은 보건 및 안전관리 대행사업, 그리고 국고대행 사업 등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것으로서 외부 서비스 기관이 사업주의 의무에 해당하는 사항을 일부 서비스로서 대행해 주는 방식으로 그 내용이 채워지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사업으로는 일부 지도원에서 번역물을 가지고 교육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고 사업장에 배치를 받는 과정에 체계적으로 결합하여 교육이 제공되는 방식이 아니라, 임의적으로 일부에 대하여 일회적인 교육을 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한편 고령노동자 및 여성노동자에 대한 사업으로서 일부 사업장에 대한 기술지도를 산업안전공단 지도원에서 수행하고 있다. 이는 여성노동자에게서는 육아 및 생식독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고령노동자에게서는 뇌심혈관질환의 발생에 대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문제발생의 배경과는 상관없이 그 직접적인 작동을 하는 기술적 원인들에 대한 일회적 사업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한편 그 이외에 장애인이나 비정규직 자체의 안전보건상의 문제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은 현재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2) 필요를 외면한 행정동원 사업
지금까지의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정책은 취약 노동자층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나 그 기제의 파악이 없이 단지 취약하다는 사실 하나만을 중시하여 취약한 현황을 보조하는 것에 머무르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즉 취약계층에서 보이는 안전보건 문제점들을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 대신 정부가 나서서 시정하려는 사업이었으며, 이러한 해결에 필요한 재원과 능력을 행정적으로 동원하여 위에서 아래로 베푸는 시혜적인 사업이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취약계층이 주체로서 나서서 안전보건상의 문제점을 해결하는데 담당할 역할이 사업의 내용 중에 하나도 없는 사업들이었다.
구체적으로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영세사업장 산업안전보건 기술지원사업을 수행하여 왔으며, 최근에 이르러서는 Clean 3D라는 명칭 아래서 영세사업장들에게 주로 건강상담과 일부 작업환경측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을 수행하여 왔는바, 이는 주로 안전보건문제 해결에 필요한 기술적인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스스로 능력을 갖추는 방향이었기 보다는 일회적이고 단편적으로 제공되어 소모되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와 같은 배경 하에 제공되고 있는 취약 노동자계층을 위한 정책 및 사업 내용들은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첫째, 고용의 질이나 안전보건문제를 쉽게 제기할 수 있는 권리 등과 같은 구조적이거나 근원적인 문제가 아닌 혈압을 측정하거나 작업환경측정을 대행해주는 방식의 지엽적이고 말단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둘째,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거나 여러 다양한 모습이 반영되는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닌 그 동안 수행해 왔던 사업들의 연장선에서만 정책방향이 잡혀 있다.
셋째, 말단지엽적이고 좁은 범위에 국한된 문제라고 할지라도 지속적이거나 여러 번에 걸쳐서 되먹임구조(feed-back)를 갖추는 방식이 아닌 일방적인 전달에만 그치는 정책이 수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취약노동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사업이 되지 않고, 필요한 사업은 빠져 있다. 조직사업, 교육사업, 고충처리사업 등이 지원되어야 한다.
3. 노동자건강의 사회적 성격을 이해하는 정책
과학적 정책의 근거는 문제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그에 따른 관리 원칙의 준수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새로운 노동보건체계는 단순히 그 구성요소를 나열한다고 수립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들을 연결하고 묶어주는 합목적성이 있어야만 한다. 특히 노동보건문제의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고, 그에 따라 그 해결방안을 체계적으로 제시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보건문제의 발생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는 세 가지 차원의 원인들, 즉 기계론적 원인들, 확률론적 원인들, 그리고 체계론적 원인들이 모두 고려되고 아우러지는 새로운 관점의 노동보건정책 및 노동보건의 관리 원칙이 수립되어져야 한다.
먼저, 유해물질, 또는 유해인자로 대변되는 기계론적 원인에 대한 확인이나 측정이 당대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기술적인 표준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점이 확고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객관적이고 정확한 측정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표준화된 기술적 조건이 확보되지 못할 경우 기술적 접근이 얼마나 해악이 될 수 있는가는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이, 작업환경의 위험성이나, 노동자의 건강상태를 정확히 측정, 검진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문제가 없기’를 바라는 기업측과 정부관료의 필요에 봉사하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제대로 된 위해도 관리를 위해서도 확률론적 우선순위가 적용되는 방식으로 노동보건의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노동보건문제의 원인을 확률론적으로 본다는 것은 다양한 요인이 노동보건에 영향을 미치고, 그 원인을 확률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요인을 크게 분류하면 환경요인, 작업요인, 개인요인을 분류할 수 있는데,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각각의 요인에서 노동보건의 위해도가 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요인 중 가변성이 가장 크고, 노출의 변화에 따라 노동보건문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큰 요인, 즉 노동보건의 위해도가 장 큰 요인이 우선적으로 관리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점에서 산업안전보건관리는 노동보건의 위해도가 가장 큰 환경관리에 우선적으로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며, 다음으로 작업관리,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서 건강관리에 의존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노동자 일터의 안과 밖의 환경이 노동자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짚기 보다는, 노동자 개인의 생활습관을 탓하거나, 작업장내 ‘건강증진프로그램’ 등으로 노동보건의 문제를 왜곡, 축소시키려는 기업의 접근방식과 정부정책이 주요흐름이라 주도하는 실정이다.
셋째, 노동보건의 체계가 포괄성과 완결성을 갖추는 방식으로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의 사업장 단위도 그러하겠지만, 노동보건의 영역이 사회 전체로 확장될 경우 노동보건 문제에 대한 해결의 방향을 찾기 위해선 체계적 접근이 필수적이다. 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표출되는 노동보건 문제는 노동보건 관련 자원, 재원조달 체계, 조직 및 서비스의 제공체계 등 노동보건 체계 전반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체계론적 접근과 관리는 그 체계의 목적이 무엇인지에 비추어 보아 과연 그 목적이 최종적으로 달성되고 있는지, 달성되고 있지 못하다면 어떤 구성요소에서 약점과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노동보건 정책은 그 사회적 성격에 대한 이해가 척박하며, 원칙과 철학이 없는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정책의 나열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노동자건강권을 위한 포괄적, 체계론적 접근을 위한, 정부의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