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다. 물론 재벌기업에게 도덕적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예전부터 계속되었다. 그러나 지금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는 단순한 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지속가능경영’ ‘사회적 책임 경영’ ‘윤리경영’이라는 용어들은 경영학의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으며, NGO 들은 기업감시운동를 통한 사회적 대안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고 있고,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경영자들 또한 사회적 책임을 중요한 경영 목표로서 설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의 시대적 대세가 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이며,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리고 노동자운동, 특히 노동안전보건의 영역에서 이 논의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라는 용어는 사실상 매우 광범위하고 모호한 개념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기업의 1차적 목표는 경제적인 이득, 다시 말해서 이윤추구이다. 반면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은 정당성, 형평성, 정의로움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추구함을 의미한다. 즉,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의 개념을 결합하여 만든 것이 바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개념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개념 정의는 경영학자 Carroll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Carroll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구성하는 요소를 경제적 책임, 법적 책임, 윤리적 책임, 자선적 책임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경제적 책임은 기업의 1차적 목표인 이윤추구에 부합하는 것으로, 사회의 기본적 경제단위인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둘째, 법적 책임은 기업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 윤리적 책임이란 법의 규정을 넘어서서 기업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대되는 윤리적인 행동이다. 넷째, 자선적 책임이란 기업의 개별적 판단이나 선택에 맡겨져 있는 책임으로 사회적 기부행위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이러한 책임들이 요구되는 것은 기업이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건전한 시민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1)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개념은 이미 서구사회에서 195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 논의의 흐름은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기부행위를 늘려야 한다는 소박한 주장에서부터 시작되어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 경영을 평가하는 지표의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기업의 거대화와 자본의 독점력이 강화되었고 기업 활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해졌다. 때문에 기업이 이윤추구 이외에 긍정적인 ‘사회적 성과’를 내야하며 기업 활동의 영향을 받는 당사자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조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과 사회적 책임의 이론적 논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소 이론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현대 자본주의의 성격 논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일반적으로 현대 자본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된다. 바로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와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이다.2)
인과관계는 다르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이 두 가지 유형 모두에서 강조되고 있다.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경영에 대한 주주의 통제를 강조하며 자유로운 자본시장과 노동시장을 활용하여 자본축적을 수행한다. 따라서 주주 자본주의는 기업 활동은 무엇보다도 주식가치극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유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방조한 기업 활동이 주식가치를 하락시킴으로써 주주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에너지 기업 엔론사의 파산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두 차례나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선정되었던 엔론사는 정경유착, 회계부정, 내부정보를 이용한 투기 등이 밝혀지면서 파산하였고, 결과적으로 주주들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히고 말았다. 주주 자본주의는 이러한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유럽식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보다는 기업의 경영자, 은행과 같은 채권자, 노동조합 등의 종합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금융기관의 활용, 경영자의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투자, 노동자의 경영참여 등을 통해 자본축적을 수행한다. 이해관계자 (stakeholder)란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고받는 모든 개인이나 집단을 의미한다. 이처럼 기업 활동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기업 활동에 영향을 주는 모든 이해관계자를 고려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대 자본주의는 그 유형적 특성에 관계없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경영자, 채권자, 노동자와 노동조합 및 주주까지도 이해관계자로 보고 있다. 나아가 소비자, 지역주민, NGO, 정부 또한 이해관계자의 범주에 포괄된다.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기업들이 이러한 넓은 범주의 이해관계자와 의사소통을 함으로써 사회적 성과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부과하려는 노력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회운동으로서의 의미와 한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기업이 경제적 성과 이외에 바람직한 사회적 성과를 내도록 하기 위한 노력은 각국의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 그리고 기업 스스로에 의해서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초국적 거대기업의 전횡과 광폭한 금융세계화에 의한 자본주의적 모순이 첨예화되고 인권과 환경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활동은 사회운동의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운동은 주로 NGO들의 기업 감시 활동과 사회적 책임보고서를 제도화하는 활동으로 요약된다.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지표들을 개발하고, 이러한 평가지표를 활용하여 중립적인 기관에 의해 기업을 평가하도록 하며, 기업들이 그 결과를 공개하도록 하는 보고제도의 도입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이나 NGO들이 참여하도록 하는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3)
사회적 책임 투자(SRI)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사회투자포럼(Social Investment Forum)이나 지속가능보고서의 가이드라인을 작성하여 관철시키고 있는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의 활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실련, 기업책임시민연대, 여성노동자협의회, 여성민우회, 함께하는 시민행동, 환경운동연합, 환경정의 등의 단체들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운동의 일환으로 「사회적책임법안」을 작성하여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기업의 맹목적인 이윤극대화 행동을 제어하고 공익적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투명한 경영과 회계를 강제하고, 기업의 내부 정보를 공개하여 사회구성원의 참여를 촉진하고, 인권과 환경 같은 분야에 재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사회적 성과를 내는 기업 쪽으로 금융시장의 투자를 유도하며 사회적 책임보고서가 거래와 계약 과정에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도록 하는 등,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여 기업의 자발성을 이끌어낸다는 측면에서 더욱 유효하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첫째, 가치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운동이 일반적 법칙인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얼마나 많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각성하겠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는 기업은 2005년 현재 7개에 불과하다.4)
둘째,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란 근본적으로 ‘건전한 시장 질서’를 형성하기 위한 조건이다. 사회적 책임을 주장하는 사회운동은 결코 기업의 일차적 목표가 이윤추구임을 부인하지 않으며, 다만 건전한 방식으로 이것을 수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결과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운동은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를 결코 넘어설 수 없다. 인권, 노동권, 환경, 윤리 등을 고려하면서 기업 활동을 지속하라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주장에 담겨진 뜻이다. 사회적 책임운동을 대표하는 슬로건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속가능성’은 기업들에게 ‘가치증식과 자본축적의 지속가능성’으로 이해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안전보건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평가

비록 명백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운동은 단기적인 전략으로서 충분한 유효성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최근 우리나라의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가 파업 과정에서 사회공헌기금 조성을 요구하였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들은 실제로 단체협상 과정에서 사측에 사회적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흔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측정하는 지표들은 회계와 경영의 투명성, 소비자에 대한 책임, 환경에 대한 인식, 협력업체와의 공정한 거래, 사회적 기부나 지역에 대한 공헌 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실제로 기업의 사회적 성과를 측정하는 각종 지표들에는 반드시 노동권의 문제 ― 고용, 근로시간, 임금, 복리후생, 산업안전보건, 노사관계 등이 핵심적인 판단 기준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사회보고서 제도인 Bilan Social은 ① 고용, ② 임금, ③ 산업안전보건, ④ 기타근로조건, ⑤ 교육훈련, ⑥ 노사관계, ⑦ 기타조건 등으로 지표를 구분하여 기업을 평가한다. 따라서 노동조합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지표와 보고서 제도를 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유의미한 운동의 방식일 것이다.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와 보고서 제도 또한 체계화되어 있다. OECD에서는 환경과 산업안전보건 분야가 통합된 ‘EHS(Environmental Health and Safety) 보고서’가 작성되었다. 그리고 1999년에 국제 인증기관들의 합의에 의해서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을 확보하고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국제 규격으로 ‘OHSAS 18001 인증제’가 마련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안전보건 영역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련된 산업안전보건법 등의 많은 법률이 존재하며, 산업안전공단에는 기업주가 안전보건계획을 수립하고 평가하여 개선하도록 하는 ‘KOSHA 18001 인증제’를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5) 더욱 현실적인 예로, 중대재해의 발생 빈도를 공영 건설 공사의 입찰시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는 PQ제도 또한 노동안전보건 분야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형태로 볼 수 있다.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은 가능한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 성과를 측정하는 제도들은 일정 정도 구비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그 실효성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발생 건수는 이러한 제도들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전혀 줄어들고 있지 않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중대재해를 되풀이하고 있는 대기업들이 뻔뻔스럽게 OHSAS 18001 인증을 받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는 현실이다.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이 무시되고 있는 현실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단순한 홍보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 기업들의 태도가 1차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운동에 의한 기업 활동의 감시가 제대로 되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은 기업이 현장에서 노동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노동안전보건운동에서 이러한 활동은 미약했다. 산재왕국이라는 이 땅의 조건 속에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산재를 인정받는 투쟁에 주로 복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보다 근본적으로 노동재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산업안전공단과 기업의 활동을 감시하고, 기업의 안전조치를 평가하기 위한 각종 지표들을 개발하여 현장에 적용하는 시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기업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과 현장 노동자들이다. 기업이 내부 정보를 차단하면, 안전보건과 관련된 조치들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외부에서는 알 수 없다. 때문에 그 어느 영역보다도 노동안전보건에서 기업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의 활동이 중요하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 중심적 주체, 그것은 역시 현장의 노동자이다.

1)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이러한 위상을 ‘건전한 기업시민'(good corporate citizen) 또는 ‘기업시민의식’(Corporate Citizenship)이라고 한다.

2) 사실상 이 두 가지 현대 자본주의의 유형은 도식적으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서 시대적으로 어느 유형이 우세한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듯 하다. 일반적으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자본의 황금기로 불리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는 유럽형이 우세하였고, 오일쇼크와 198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신자유주의를 대두로 미국식 자본주의가 우세하다고 할 수 있다.

3) OECD, UNEP, UN 등의 국제기구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한 국제협약을 출범시키거나 기업의 사회보고제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는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1977년 프랑스는 최초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사회보고서인 Bilan Social을 법제화했다. 덴마크와 네덜라드는 1996년과 1999년에 각각 환경보고서를 법제화하였으며, 영국은 5백만파운드 이상의 기업에 대해 사회적 책임보고서인 CORE를 제정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환경부가 주관하는 「환경보고서 가이드라인 2002」가 대표적이다.

4) 삼성SDI,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토지공사, POSCO, 신한은행, 브리티시 아메리카 TBA코리아,

5) 한국산업안전공단의 현황 자료에 따르면, KOSHA 18001 인증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은 273개 사업장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