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원진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레이버투데이 2006-04-04 11:47]

지난달 29일 한 원진환자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고 정현산(58)씨. 원진레이온 직업병노동자와 가족으로 구성된 최초의 직업병노동자단체인 원진직업병가족협의회(원가협) 초대회장이었던 그는 누구보다도 원진레이온 노동자의 직업병 인정을 위해 최선전에서 뜨겁게 투쟁했던 원진레이온 노동자였다.

원진레이온 사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조견을 생산하던 원진레이온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이 이황화탄소 집단중독에 노출된 사건이다. 엄혹한 군재독재 시절이던 80년대 초반부터 원진노동자들은 시름시름 고통 받고 죽어가다가 88년에 이르러 원가협을 구성하면서 본격적 직업병 인정 투쟁을 시작했고 93년 원진레이온 폐업 뒤 원진 산재환자들이 110억원의 기금을 모아 97년 산재전문병원인 녹색병원을 세우기도 한 ‘결사적인’ 투쟁을 해왔다. 이때 고 정현산 전 회장은 88년 올림픽 당시 원진레이온 직업병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확산시킨 성화봉송로 투쟁을 주도하고 91년 원진노동자 고 김봉환 장례투쟁 등에 참여해 적극적인 산재투쟁을 해왔다.

▲ 원진레이온 작업장면 <자료사진>

하지만 그런 그도 이황화탄소 중독의 고통을 빠져나올 수 없었다. 이황화탄소는 독성이 강한 용매제로 만성중독시 뇌 위축으로 생기는 뇌경색증, 팔다리가 아프고 저리는 다발성 신경염,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켜 협심증과 관상동맥질환, 이밖에도 심부전증, 간기능 및 성기능 장애 등 신체의 전 기능 저하라는 심각한 직업병을 수반한다.

고 정현산씨 역시 이 고통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2000년 이후 우울증, 가슴통증 등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올해 심장수술도 한차례 받았던 그는 지난달 29일 마침내 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한창길 원진산업재해자협회 회장은 “원진노동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싸웠던 분이었는데 너무도 안타깝다”며 “고인처럼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하는 원진환자들이 많다”고 밝혔다.
실제 원진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 끝에 2006년 현재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원진노동자는 총 902명이고 생존자는 812명이다. 90명이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사망자 중 우울증을 앓다가 자살한 이가 10여명이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원진노동자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남양주 선산에 고이 잠든 고 정현산씨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산재환자들에 대한 정부와 우리 사회의 관심일 것이다.

연윤정 yo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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