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노가 한번 해보지” 사무실에 있는 안변이 서류를 던져 주며 말했던 것은 지난 2004. 10월 정도였다. 법률원에 와서 두 번째 사건이었으며,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과제였다.

“무슨 사건인데요?”, “1심에서 강변이 하다가 나한테 줬는데 내가 잘못해서 진 것 같아.” 사무실에서는 변호사의 준말은 “변”이고, 노무사의 준말은 “노”라고 하는데, 어찌 “변”과 “노”는 찜찜한 준말임은 틀림이 없다. 물론 “변”이 더한 말이지만… 사실 노무사 일만 하다가 각종 법원용 서면을 작성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었고 그것은 단순한 형식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실질적 진행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스트레스였다.

1심 판결(서울행정법원 2004. 9. 21. 선고 2003구단7487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원고가 직무 수행 중 사고를 당하여 목과 어깨에 심한 통증이 발생하였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원고는 2002년 2월 14일 강남베드로병원에서 목 통증을 호소하며 진료를 받으면서 5~6년 전부터 제5~6 경추 디스크 증상이 있었다고 말하였고, 위 병원에서 경추 추간판탈출증, 경추부협착증의 진단을 받고는 수술은 받지 않은 채 그 후 같은 해 6월 8일까지 13차례에 걸쳐 경추부 근육조직 이완요법을 시행 받은 사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원고의 2002년 2월 14일자 MRI검사자료와 2003년 2월 3일자 MRI검사자료를 검토한 결과 2003년에 수핵 탈출의 정도가 더 심화되었는데, 퇴행성변화에 기인한 것인지 외부 충격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는 감정의견을 밝힌 사실이 인정되는 바, 이에 비추어 보면 이 상병은 결국 종전에 보존적 치료를 받았으나 완치되지 않았던 상병이 재발․악화된 것으로 보일 뿐이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항소이유서는 굉장한 형식을 요하는 줄 알았던 나에게 항소이유서라는 말 자체가 부담이었다. 1심의 기록철을 살펴보니, 원고의 소장 및 감정촉탁신청서, 피고의 답변서, 강남베드로병원의 사실조회회신서, 서울대병원의 감정촉탁회신서, 피고의 참고준비서면이 철해져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기록을 몇 번이나 본 이후, 사무실에 있는 “변”들에게 항소이유서를 쓴 게 있으면 달라고 하여 그 형식을 살펴보았다. 물론 산재관련 항소이유서는 아니라서 크게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항소이유서는 1심 판결의 위법 부당성을 다투는 것이 초점이라 1심 판결문의 정확한 분석 및 비판이 선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었다. 이 밖에 민사소송법 책을 참조하여 항소이유의 간명한 게제방식 및 상고이유의 제한 사유 등을 공부하였다.

첫 번째로, 원고의 상병발생경위를 면밀히 살펴보았다. 물론 피고는 “원고에게는 이미 5~6년 전부터 목 부위의 통증이 간헐적으로 있어 왔고, 그 이후 2002. 2. 14. 경추간판탈출증과 경추부협착증 등의 진단을 받았으며, 2. 20부터 6. 8.까지 15번 정도의 치료를 받았으므로, 2002. 12. 26. 이후 진단된 상병 또한 기존 질병의 자연적 악화”라는 주장을 하였고 이것이 어쩌면 맞을 수도 있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철도검수업무를 한번도 유심히 보지 못한 나로서는 기존의 문헌조사 작업을 통해서 이를 찾아보려고 하였으나, 마땅한 자료가 없었다. 다시 원고를 불러와 당시 검수중 출입문 입구에 머리 부위를 부딪쳤을 때의 상황과 느낌 및 검수업무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들고 다양한 각도로 질문을 한 뒤, 노조 산안차장를 통해 2004. 9월에 발간된 “근골격계 조사보고서”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다시 상병발생경위에 대한 입장을 크게 두 부분으로 정리하였다. 원고와 같은 검수업무 종사자는 원래 목 부위를 구부려 열차 아래를 검수해야함으로 목 부위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과 “당시 출발검수로 인해 촉박한 시간에 맞추기 위해 열차 통로를 뛰어가면서 출입문 상단에 정수리 부위를 부딪쳐 욱하는 통증과 동시에 주저앉았다”라고 사실경위를 확정하여 주장하였다. 이는 산재서면 작성에 있어, 1차 분석방법인 “사실경위에 있어 상병발생 경위의 적합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원고의 상병명이였던 “목디스크”, 정확히는 “경추간판탈출증”에 대한 조사와 연구 작업을 시작하였다. 서적조사(정형외과학 등)는 기본이고 각종 인터넷사이트(특히 우리들병원 홈페이지) 자료 등이 유용하였다. 의학적 상병명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끝마친 이후, 상병명에 대한 논리전개의 방식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정하였다.

일단, 원고가 2002. 2. 14. 경추간판탈출증으로 진단받은 것은 “연성 경추간판탈출증”이고, 후에 2002. 12. 26. 근무 중 머리에 충격을 받은 이후에 진단된 것은 “경성 경추간판탈출증”이라고 정의한 이후, 전자의 치료방법은 주로 보전적 치료에 국한되는 것이며, 후자의 치료방법은 직접적 수술방법이 사용됨을 각종의 자료를 구비하여 주장하였다. 이는 산재서면 작성에 있어서, 2차 분석방법인 “의학적인 면에 있어 상병발생 경위의 적합성”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로, 법리적 측면에서 원고의 상병발생 가능성을 고찰하였다. 각종 판례를 뒤져서 기왕증에 대한 대법원의 입장을 간략히 제시하면서 논리를 전개하였다. 즉, “재해의 원인이 된 상병에는 평소에 정상적인 근무가 가능한 기초질병이나 기존질병이 직무의 과중 또는 사고로 인하여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된 경우까지 포함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고, 그 상병과 업무수행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 조건을 기준으로 판단”(대법원 2002. 11. 26. 선고 2002두6811 판결, 대법원 2002. 5. 28. 선고 2002두1014 판결, 대법원 1996. 9. 6. 선고 96누6103 판결, 1992. 2. 25. 선고 91누8586 판결 등 참조)하여야 하며, “업무상 재해라 함은 근로자가 업무수행에 기인하여 입은 재해를 뜻하는 것이어서 업무와 재해발생과의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그 재해가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존의 질병이더라도 그것이 업무와 관련하여 발생한 사고 등으로 말미암아 더욱 악화되거나 그 증상이 비로소 발현된 것이라면 업무와의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라는 것이다.(대법원 1999. 12. 10. 선고 99두10360 판결, 대법원 1989. 11. 14. 선고 89누2318 판결 참조)

또한, “노화에 따라 나타나는 퇴행성병변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사건 사고로 인하여 평소에 통증을 전혀 느끼지 못하던 기존 질병의 증상이 발현된 것이거나 적어도 급격히 악화된 것이라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 (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2두2242 판결 참조)라는 것이 인용․정리한 판례의 요지이다. 이밖에 하급심 판결을 정리하여 제출하였으며, 이는 산재서면에 있어 3차 분석방법인 “법리적인 면에 있어 상병발생 경위의 적합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왕증… 물론 과로사 케이스에 있어서 위험인자가 있을 경우 법원에서는 위험인자가 과로성 질환을 유발하였다고 판단함과 동시에 기존 위험인자가 과로․스트레스와 겹쳐서 유발․악화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를 법률적 용어로 말하자면, 소위 상당인과관계설에 있어 “공동원인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판사들이 보기에는 자기 멋대로 판단의 유력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1심 행정법원 판사는 기왕증의 단순한 재발 수준이라고 본 것이었다.

2심에서 치열한 사실, 법률, 의학적 공방 끝에 고등법원 판사는 우리의 손을 들어주었다. 즉, “원고가 이 사건 사고 이전에 경추 추간판탈출증으로 치료를 받은 바 있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사고 이전에는 원고가 목이나 어깨에 별다른 통증을 느끼지 않고 정상근무를 하여 왔는데, 위 사고 이후 원고의 경추 부위에서 디스크의 신선한 파편이 발견되어 이것이 신경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관찰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 사건 상병은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직접 입은 공무상 부상이거나, 적어도 원고의 기존의 질병이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자연스런 진행 속도 이상으로 급격히 악화되어 발생한 것으로 그 인과관계가 있는 공무상 질병이다” (서울고등법원 2005. 6. 22. 선고 2004누21304판결) 라고 판단하여 준 것이다. 이 항소심 판결이 대법원(대법원 2005. 9. 28. 선고 2005두8764판결)에 그대로 유지되어 또 하나의 판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 덧붙이는 말 : 혹, 2004년 여름호에 실렸던 “젊은 국어교사의 불치병”이 생각나시나요. 선고일 전날 새벽녘에 지는 꿈을 꿀 정도로 잔득 긴장하고 있던 저에게 2004. 11. 30. 오전 10시 15분 그녀의 아버지로부터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이겼습니다..지난 2년 동안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여러 사건을 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12. 21.까지 공단에서 항소 안 하길 기도(?)하고 있답니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