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에 실리는 이상윤 정책국장의 글입니다.
한국의 산재문제에 대해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함께 읽을 수있는
개괄적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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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한국의 노동자 건강 실태
– 기업과 정부는 언제쯤 안전과 건강에 대한 국제기준을 충족시킬 것인가?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이상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발생한 것은 15세이 어린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문 송면 군의 죽음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88올림픽의 열기로 더욱더 뜨겁던 1988년 여름, 15세의 어린 나이로 수은에 중독되어 생을 달리해야 했던 그가 우리에게 던진 충격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었다. 15세의 어린 나이로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삶을 꾸려가야만 했던 삶의 조건뿐 아니라, 입사한지 단지 2개월만에 사망에 이를 정도로 수은에 과다노출될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노동환경까지, 그것은 올림픽의 열기에 들떠있던 ‘대한민국’의 또다른 단면이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오늘, 과연 우리 노동자들의 건강은 나아졌는가?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시야가 닿지 않는 저편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으로 인해 고통 받고 죽어간 우리의 이웃은 과연 없는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위의 질문에 선뜻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물론 17년 전에 비하여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이 일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남아있고, 더불어 새로운 문제가 더해지고 있다. 노동부가 발표한 ‘공식’ 통계에 잡힌 것만으로도 2004년 한 해 동안 2825명의 노동자가 사망하였다. 이는 하루에 8명꼴이다. 공식 부문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더 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고려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부끄럽게도 2004년 ILO에서 발표한 ‘노동안전지수(Work Security Index)’에 의하면 한국은 평가대상 97개국 중 47위로서 OECD 가입국 중 최하위일 뿐 아니라,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등 중앙아시아의 신흥공업국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여전히 오래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다만 그 문제를 지고 있는 대상이 약간 바뀌었을 뿐이다. 87년 이후 들불처럼 번진 노동자들의 요구로 대공장들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은 많은 부분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영세사업장의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은 아직까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영세사업장 노동자뿐 아니라 날로 그 규모가 늘어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 노동자들 또한 17년전 문송면 군이 처하였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조건에서 노동하며 건강을 저당잡히고 있다. 이들의 노동 및 건강 실태는 17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많은 부분이 베일 속에 가려져 있지만, 산발적으로 발표되어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그 문제의 심각성을 짐작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12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않는 임금, 작업환경 측정 자체가 무의미한 노동환경이라는 조건 속에서, 예방가능한 사고와 화학물질 및 중금속 중독 등 ‘고전적’인 형태로 자신의 건강을 희생당하고 있다.
이전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문제들의 규모와 심각성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의 산업 구조 개편, 적시생산 체계 등 유연화된 생산방식의 도입, 노동유연성을 증가시키기 위한 비정규직의 광범위한 사용 등, 최근 들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경제 및 고용 구조는 이전의 건강 문제와는 다른 형태의 건강 문제를 광범위하게 야기하고 있다. 제조업 중심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개편됨에 따라 주요한 건강 문제 자체도 변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이전에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였던 스트레스성 질환, 근골격계 질환 등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그에 대한 해결책이 점점 더 절실해지고 있다. 또 여러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도입되고 있는 유연화된 생산방식은 한 명의 노동자가 여러 기능을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등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형태로 경영 방식을 바꾸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당연히 이전보다 더 적은 수의 인원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 노동강도 강화, 노동시간 연장에 따른 건강 영향을 고스란히 노동자가 짊어지고 있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그러한 양상이 폭발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한편, 비정규직 증가로 인한 노동자 건강 문제의 악화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심각한 건강상의 위해 조건 속에서 노동을 영위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전형적으로 여러 가지 압력에 시달린다. 직업을 얻기 위한 계약 경쟁 속에서의 경제적 압박, 일단 직업을 얻은 후에는 계약을 지속하여야 한다는 압박, 최저생계비를 벌어야 한다는 압박 등이 그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많은 수가 성과급으로 보수를 받는 구조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조는 스트레스를 증가시킨다. 이러한 구조는 또한 장시간 노동의 도입 등 노동강도를 강화시키는 경향으로 흐르게 한다. 심지어 비정규직 노동자가 성과급으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닐지라도, 고용주의 전반적 경제 상태가 위험스러울 때에 그는 과도한 노동을 하도록 강요당할 수 있다. 영세사업장 노동자, 하청노동자, 임시노동자 등은 큰 사업장이나 정규직 노동자가 거부한 일을 하도록 강제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명확하다. 이들은 ‘현대판 노예’와도 같이 자신의 건강을 저당 잡힌 대가로 근근히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있다.
이와 같이 오래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고, 새로운 문제가 더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정부의 무대책과 근시안적인 정책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특별히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상황이 이렇게 점점 나빠져 가고 있는데도 정부는 이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기는커녕, 사업주의 눈치만 살피며 미봉책 마련과 현실 가리기에 주력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야기되어져 오고 있는 산재보험 제도 개혁과 관련된 문제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전시성 행정에만 급급한 채 근본적 대책 마련에 대한 요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규제개혁위원회라는 초법적 기구를 통하여 그나마 있던 보호 장치를 해제하고, 노동자 건강을 지키기 위한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건강과 안전에 대한 규제는 규제 완화의 물결 속에서도 끝까지 보존하거나 강화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참혹한 현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멀리 있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다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요즘 한국의 기업들도 ‘사회적 책임’ 혹은 ‘국제 기준’을 많이 떠들고 있다. 그들이 떠드는 것이 한낱 구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평가하는 항목에 고용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얼마나 잘 보장하는가를 살필 수 있는 지표를 넣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를 위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은 기업에 막대한 벌칙을 주는 제도도 강구되어야 한다. 실제로 호주, 캐나다 등에서는 사업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아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업주에게 징역형을 처하고, 징벌적 배상에 해당하는 막대한 액수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된 바 있다.
작업장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들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참여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안전보건 선진국의 경우 예외 없이 작업장에 노동자들이 선출한 노동자 안전보건대표위원을 두고 있다. 이들은 사업주가 보장한 시간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그 지식으로 사업장을 순회하며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할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 그리고 노사 동수로 이루어진 직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하여 안전과 보건에 대한 결정에 노동자를 참여시키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선진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노동부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현재와 같이 전시 행정 위주의 지도, 감독으로는 현실을 바꾸어내기 힘들다.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감시, 감독, 제제의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
“모든 직업성 질환과 사고는 예방가능하다.” 이는 대표적인 직업의학 교과서에 나와 있는 말이다. 이것이 다소 선언적인 표현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의 직업성 질환과 사고가 예방가능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직업성 질환은 어느 정도 윤리적인 문제와도 연관된다. 피할 수 있는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치하거나 동조함으로써 사람을 병들게 하거나 죽게 만든다면, 그 또한 윤리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억울하고 서러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