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성재해 희생자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를 다녀와서②
자본의 이동을 따라 노동자의 희생도 국경을 넘는다

지난 9월21일부터 25일까지 홍콩에서는 ANROAV(Asian Network for the Rights Of Occupational Accident Victims, 작업성재해 희생자의 권리를 위한 아시아 네트워크)가 열렸다. ANROAV는 아시아 각 국의 산재추방 NGO들의 네트워크로 해마다 주제를 정해 보고대회를 갖는다. 올해는 석면과 진폐증, 건설노동자의 추락사, 화공약품으로 인한 중독 등을 주요하게 다뤘다. 한국에선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들이 참석했다. 2회에 걸쳐 이를 소개한다.

우리가 보았던 사진 중에는 남자들이 예닐곱명이 서 있는 사진이 있었다. 모두 한 마을 사람으로 마을에 있는 같은 공장에 다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진을 찍은 후 몇 달 내에 모두 죽었다고 한다. 이어서 본 사진은 여성들이 서있는 사진이었다.

인도이야기 – 남편이 일하다 죽은 자리는 아내가 채운다

▲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대책사업단장.

이들은 아까 본 사람들의 부인들인데,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돈을 벌기 위해 같은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역시 몇 달 후 상당수가 사망하였다. 다음으로 본 사진은 한 할머니가 어린 손자손녀를 데리고 있는 사진이다. 부모가 모두 병으로 죽은 후 남겨진 아이들은 할머니가 키우게 되는데 대부분 빈민의 생활로 전락한다고. 이것이 인도의 시골마을에서 일어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인도의 NGO들은 무엇보다 사태의 심각성을 노동자들이 알아야 한다는 점을 주목하고 알리기에 나섰다. 낡은 트럭에 먼지제거기를 몇 대 싣고 지방으로 돌아다니며 마을회관 앞에서 거리 퍼포먼스 등을 펼쳤다. 모여든 사람들에게 공기정화기가 작업장에 왜 필요한지를 설명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공장 앞을 찾아다니면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에게 비슷한 교육을 했다. 의사를 데리고 가서 정문 앞에서 바로 검진을 하고 직업병 유무를 그 자리에서 판정, 이후 보상까지 함께 하였다. 이런 활동의 결과로 한 공장에서는 220명중에서 40여명의 진폐증 환자를 찾아내기도 했고, 다른 공장에서는 300여명이 직업병 판정을 받기도 했다.

먼지와 관련한 진폐증 외에도 크롬 등의 화공약품으로 인한 피부병도 심각하다. 파이프라인의 결함을 찾기 위해 X-Ray촬영을 하던 노동자는 방사능 노출로 혈관이 좁아지는 직업병을 갖기도 한다. 사업주는 작업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건강검진시 의사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힘들게 법정 싸움 끝에 직업병 판정을 받았지만 사업주가 인정하지 않아 몇 년을 끄는 사례도 많다.

인도의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하여 사업주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고 있다.

▲ 사고로 죽은 노동자의 아내가 죽은 남편을 생각하며 그린 모습.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 때 보았던 남편의 모습이다. 가슴부위가 피로 물들어 있다. 산재노동자나 유가족들은 너무 아픈 기억에 대해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럴 땐 이렇게 그림으로 표현한다.

홍콩이야기 – 정부가 건설회사로부터 기금을 걷어

앞서 언급된 대로 홍콩의 NGO들은 중국 내 노동자들과 연계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홍콩 내에서는 건설노동자의 안전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홍콩 NGO의 재정이었다. 이번 행사를 비롯하여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홍콩의 NGO는 사업비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홍콩은 큰 공사를 할 때마다 정부에서 공사액의 일정비율을 회사측으로부터 의무적으로 걷어서 독립된 기관에 넘긴다. 그러면 그곳에서 매년 산업안전에 관련된 활동을 하는 NGO에게 배분하는데 이 액수가 상당하다고 한다. 각종 정책생산과 예방활동, 국제교류가 활발한 것은 이 기금의 역할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건설공사에 ‘표준안전관리비’라는 것이 법으로 있어 공사액의 일부를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는데 쓰도록 되어있지만 공사계획서상의 숫자로 존재하는 이 돈이 현장에서는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건설노동자들의 이야기다. 홍콩은 한국과 달리 정부가 이 돈을 실제로 걷어서 기금으로 적립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세계를 뒤덮는 석면의 공포, 그리고 캐나다의 이중성

▲ 손이 절단된 노동자의 사진. 16살 때 전기감전으로 인한 쇼크로 두 손을 못 쓰게 되었고 왼손은 절단해야 했다. 손이 없는 자리에는 쇠로된 의수를 달고 있다.

각 나라의 사례들에는 공통주제가 있었다. 바로 ‘석면’. 머리카락의 몇 천 분의 일이라는 가는 유리섬유가 폐에 쌓여 진폐증으로 사망하게 되는데 잠복기가 20~30년에 이른다.
석면은 일본에서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올 상반기 일본은 ‘석면공포’에 전국이 떠들썩하였다. 그러나 한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아직 석면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한 상태.

선진국에서는 이미 석면의 위험성을 알고 자국 내 사용을 금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99년부터 석면사용을 금지하였는데 향후 20년간 1만5천명이 석면으로 인한 병으로 사망할 것이라는 통계가 나온 후 정부가 심각성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연합도 석면으로 인한 사망이 산재사망의 1위가 될 것이라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문제는 캐나다. 캐나다 정부는 이미 99년부터 석면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캐나다는 석면 생산 세계 1위이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석면제조회사를 위해 보조금도 지급하고 아시아를 비롯한 제3세계에 대한 석면 판매에 나섰다. 지금 캐나다 회사의 석면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석면이 위험한 이유는 잠복기가 길고 본인이 석면에 노출되는지를 알기 힘들다는 것과 석면이 작업장안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지역의 주민들에게 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영국 등의 선진국에서는 과거 석면을 다룬 경력이 있는 모든 노동자들의 건강을 꾸준히 체크하는 한편 석면을 사용한 건물이나 공장소유주들에게 법적인 의무를 강하게 부여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영국 등의 사례를 들으며 ‘우리 정부의 정책을 어떻게 변화시킬까’를 고민하는 한편 캐나다 정부의 이중성에 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는데 의기투합, 공동행동을 하기로 결의하였다.

일본에서 석면 수입과 사용을 금지하자 동남아시아의 석면 수입이 늘어난 것을 보면서 한 국가만의 석면 금지는 결국 다른 나라의 석면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을 절감하였고 우리는 오후 내내 석면에 관하여 머리를 맞대어 토론하였다.

홍콩에서 아시아가 보였다

▲ 아들을 산재로 잃은 부모. 이렇게 영정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서면서 얼마나 슬펐을까.

숙소에서 나는 대만의 활동가와 방을 같이 썼다. 그녀는 내게 대만의 NGO에서 만든 사진책자를 선물로 주었다. 산재를 죽거나 다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사진과 그림이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낯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스에 손이 절단된 노동자의 사진이나 의족을 달고 있는 노동자, 죽은 아들의 영정을 들고 있는 노부부의 모습은 산재추방운동을 하는 활동가라면 수 백 번도 더 보았을 비슷한 모습들일게다.

결국 ‘이윤’을 위해 희생되는 노동자의 고통은 같은 것이다. 잘 사는 나라든 못 사는 나라든 차이가 있겠는가.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살인기업’에 대항할 조직력이 얼마나 성장하고 있는가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겠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 이동하고 있고 그에 따른 문제도 같이 이동하고 있다. 모든 아시아 참가국들의 공통의 주제들은 재해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안전한 작업을 위해 어떻게 관심을 모아낼 것인가를 비롯하여 다양하였다. 서로 할 말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 자리였다. 밥 먹다가 숟가락 든 채로 열변을 토하기도 여러 번.

아직까지 재해 예방보다는 보상과 치료를 위한 활동에 머무르는 수준이라는 한 활동가의 고민부터 ‘보상’의 개념에 ‘재활’을 포함시켜 노동자들이 다시 직장으로 복귀하도록 해야 한다는 또 다른 활동가의 주장을 들으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한국 작업장의 모습을 떠올렸다.

나는 홍콩에서 아시아를 볼 수 있었다.

이서치경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대책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