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7/1] 일터의 건강나침반
‘15살 노동자의 죽음’ 그후 20년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건강연구공동체 상임연구원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회든지 어두운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그것에서 눈을 돌려 밝은 면만 보려는 사회가 있고, 반면 그늘진 곳에 더 빛을 비춰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회가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년 전 7월은 서울 올림픽 개최 열기로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었다. 세계 무대에 역량 있는 국가로 발돋움할 것이라는 기대가 국민을 흥분시켰다. 그런데 이 즈음 양식 있는 이들을 충격에 빠뜨린 사건 하나가 발생했다. 15살밖에 안 된 어린 노동자가 공장에서 일하다가 수은 중독으로 숨진 일이다. 그는 그 공장에서 단 두 달 일했을 뿐이었다. 그가 바로 문송면이다.
이 사건의 파장은 컸다. 한국의 심각한 청소년 노동 현실이 폭로된 것이다. 일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중금속 중독으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열악한 공장 환경 문제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노동자 건강 문제가 사회문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그사이 한국은 많이 발전했다. 중간에 외환위기(IMF) 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그 충격을 잘 이겨내고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경제 수준으로는 세계 10위권이라는 자부심도 생겼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발전하면 노동 환경도 좋아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사회에 20년 전 문송면군과 같은 이들은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년 전에 견줘 노동조건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비정규직 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 이주 노동자, 청소년 노동자 등은 오늘날의 문송면이다.
2007년 이뤄진 한 연구 결과를 보면 상용 노동자에 견줘 일용 노동자는 6배, 파견 노동자는 4배나 더 많이 다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른바 ‘협력업체’ 노동자로 불리는 도급(하청)업체 노동자 문제도 심각하다. 하청 노동자들은 원청 노동자보다 3배나 더 많이 다친다.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 환경은 아직도 열악한 곳이 많다. 그래서 있을 것 같지 않은 화학물질 중독 환자가 해마다 발생하고 있다. 이런 데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라는 사실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청소년 노동 문제도 적지 않다. 많은 청소년들이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을 하는데 이들이 사고를 겪는 일도 흔하다.
오는 2일은 20주기를 맞은 문송면군의 기일이다. 어두운 이면을 감추거나 그로부터 고개를 돌린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늘진 곳에 더욱 빛을 비춰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우리 사회에 더는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