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와 노동자 건강

 

최승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삶)

 
최승현
공인노무사

 

지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경제위기가 발생했던 즈음이었다. 언제나처럼 전화상담을 하는데, 그 이전과 조금 달랐다. 자살·과로사 상담이 유독 많았다. 그중에도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각의 사연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은행에서 일하던 분은 대출해 준 건설회사가 부도나자,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그 충격으로 그 은행 노동자는 뇌출혈이 발생했다.

한 노동자는 경제위기 때문에 구조조정 1순위에 들어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가 가족의 반대로 반려신청을 했다. 반려신청은 받아들여졌지만 지방으로 전직 발령을 받았다. 보복성이 짙었다. 결국 그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자살했다.

지점 확장 일을 하는 한 영업직 노동자는 경제위기로 업무실적이 안 좋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국의 주가변동을 주시하며 대책을 세우는 일을 했던 한 노동자가 경제위기에 따른 과로와 스트레스로 뇌출혈을 일으키는 등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사례만 이 정도다.

자살 상담을 하다 나 스스로도 너무 우울해져서 도저히 참기 어려웠던 적도 있었다. 과로사 상담을 하고, 사건을 진행하다 근로복지공단 질병인정기준에 분통을 터뜨린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경제위기가 노동자들의 건강에 이 정도로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기업은 경제위기 발생시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를 강화시킨다. 노동에 대한 긴장감을 고조시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한다. 그리고 명예퇴직·정리해고 등으로 노동자 스스로 모멸감을 느끼게 하고, 생존의 위협에 시달리게 한다. 자살·과로질환이 발생하게 한다.(쌍용자동차의 여러 노동자들이 이렇게 죽어 갔다!)

특별히 금융권 노동자들의 상담이 많았던 것은 나로서는 의외였다. 육체 노동자들이 오히려 과로질환이 많을 것 같았는데, 내가 경험했던 당시의 모습은 상식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내 돈도 아닌 큰돈을 빌려 주고, 되돌려 받고, 뻥튀기된 주식에 대해 분석하고 투자하는 것에 따른 위험은 컸다. 그것은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 돼 버렸기 때문에 더 큰 스트레스를 받고, 더 과로해 스스로를 혹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미 금융부문이 실물경제보다 더 커진 이상한 비대칭이 금융부문 노동자들에게 더 큰 부담을 주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세계 경제위기가 미국을 지나 유럽 곳곳을 덮치고 있지만 아직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또다시 불어닥칠, 아니 아직 헤어나지 못한 경제위기에서 노동자 건강은 더욱 취약해지고, 노동권은 더 상실되고 있다.

경제위기 시대에 노동자 건강을 지키려면 노동강도와 스트레스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그것을 만들어 내려면 희망버스처럼 노동자·국민들의 단결과 연대의 힘이 필요할 것 같다.

또한 경제위기 시대에 손상된 노동자 건강에 대해 보상하려면, 입증책임 전환 등이 이뤄져 업무상재해에 대해 폭넓게 인정해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의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지금의 불행한 현실이 계속될 것이다. 경제위기 시대, 노동자의 건강권을 다시 생각해 본다.

* 최승현 노무사는 노동건강연대 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