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엔 이들이 보였던가

[한겨레21 2006-05-16 08:06]

[한겨레] 좁고 쾌쾌한 쉼터에서 고약한 하루하루 보내는 경인선의 투명인간 청소부들… 왜 그들은 일반 노동자들이 너무 평범하게 누리는 걸 간절히 바라고 있을까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우리는 투명인간이야. 아무도 우리 존재를 모르지.”

경인선 인천역의 청소용역 노동자 김재철(68)씨. 켄 로치의 영화 <빵과 장미>에 나오는 한 노동자의 말처럼, 김씨는 넥타이를 맨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다. 일반인들의 시야에서 습관적으로 제외되는 김재철씨는 새벽 6시에 출근해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순간 투명인간 청소부가 된다. 더 이상 경로우대 대상인 예순의 할아버지가 아니다.

넥타이 맨 사람들은 그들의 거처 또한 살펴보지 않는다.

정식 명칭으로 ‘용역 대기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매서운 추위에 몸을 녹이고,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야간 근무 뒤 칼잠을 자는 곳이다. 용역대기실은 출퇴근길 직장인들이 밟고 다니는 계단 아래 창고나, 냄새가 채 가시지 않는 공중화장실 옆에 좀팽이처럼 붙어 있다.

역무시설 2029평, 용역대기실 2~3평

4월 중순 찾은 인천역 용역대기실은 얇은 벽을 사이에 두고 화장실과 붙어 있었다. 문을 열자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퀴퀴한 냄새가 훈풍처럼 몰려왔다. 곰팡이가 슨 벽에는 신문지가 다닥다닥 붙여 있었다. 김재철씨는 재활용 분리작업을 마친 낮 12시, 쪽방 같은 용역대기실에서 쪼그려 라면을 끓여먹었다.

“우리를 사람 취급도 안 해? 지난 겨울에는 얼어죽을 뻔했어. 보일러가 고장나서 덜덜 떨었잖아.”

고장난 보일러를 수리해달라고 인천역 직원들에게 부탁해도 하세월. 옆에서 라면 끓여먹는 것을 지켜보던 동료 노동자 이병환(67)씨가 한숨을 토했다. 그나마 주명녀(62)씨가 드나드는 여성 용역대기실은 지난 2월 전기패널이 깔렸다. 감기를 몇 차례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고 난 늦은 겨울이었지만.

“오죽하면 기름 보일러 고치러 온 직원이 이러다가 얼어죽겠다고 하면서 전기패널이라도 깔아줘야 한다고 말했잖아요.”

남성 용역대기실은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끝내 난방장치 없이 겨울을 났다. 김씨는 결국 동료 2명 등 3명이 2만원씩을 갹출해 손수 전기패널을 사다가 깔았다고 말했다. “올여름이 걱정이야. 겨울에는 그래도 버틸 만한데, 여름은 도저히 더워서 버틸 수가 없어.”

인천역에서 동쪽으로 9개 역을 지나면 부평역이다. 인천지하철 환승역이라 인천 관내에서 두 번째로 유동인구가 많은 역이다. 고령 노동자 6명이 3교대로 부평역을 쓸고 닦는다. “부평역은 너무 커서 계단이 13개예요. 빗자루 들고 이 계단 저 계단 오르내리다 보면 허리가 부서질 듯이 아프죠.”

밤 근무조 심순자(66)씨가 그렇게 일하다 쉬러 들어간 용역대기실은 철로 난간을 타고 계단 아래에 파묻혀 있다. 크기는 2~3평. 이에 비해 역무시설은 2029평이고, 상업시설을 포함한 총 역사 면적은 1만6900여 평. 문을 열자 풍겨온 습한 냄새는 5초 만에 후각을 마비시켰다. 벽에는 거리에서 주워온 로커가 서 있었다. 두 명이 누우면 가득 찰 정도의 크기. 심씨는 이곳을 남자들과 함께 써야 한다.

“밤 10시에 출근하면 마땅히 옷 갈아입을 곳도 없고, 다른 역에선 서로 의식 않고 옷을 갈아입는다고 하던데….”

부평역에서 동쪽으로 두 역을 지나면 나오는 송내역의 용역대기실도 역시 계단 아래에 있었다. 여성 용역대기실은 따로 없었다. 올해 예순이 된 여성노동자 김하례씨는 사무실을 개조한 2~3평짜리 청소도구 창고 안에 쉴 곳을 마련해놨다.

“종점에서 4년 동안 전동차를 쓸고 닦았어요. 그러다가 허리 디스크 때문에 1년 반을 쉬었는데, 마침 팔이 아파서 그만둔 아주머니 때문에 빈자리가 생겼다고 들어서 이곳에 들어왔지요.”

남녀구분도 안되고 수도시설도 없고…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아직 허리가 쑤시는 김씨는 점심 시간 20~30분 틈을 내 차디찬 바닥에 드러눕는다. 빈 상자로 자리를 잡은 뒤, 그 위에 전기장판을 깔아놓았다. 세제를 짙게 탄 물걸레에서 풍기는 락스 냄새가 코에 거슬렸지만, 그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소 할아버지·할머니들의 휴게실로 쓸 빈 방을 지상층 플랫폼 쪽에 하나 마련하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전철 구간이라 전기·수도 빼는 게 쉽지 않더군요.” 김재철 송내역장은 그래도 올해 역사 증축공사가 완공되면 좀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여성연맹이 4월6일 실시한 경인선 용역대기실 실태조사를 봐도 열악한 환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경인선 20개 역 가운데 남녀 구분이 없는 대기실은 17곳, 수도시설이 없는 역은 도화·역곡역 등 10곳, 환풍시설이 없는 역은 인천역 등 3곳이었다.

이찬배 여성연맹 위원장은 “전국 지하철·전철 가운데 경인선 청소용역 노동자의 작업환경이 최악”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2002년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뒤, 각 지하철역의 용역대기실에 전기온돌을 깔아줬는데, 경인선만 이 ‘수혜’를 비켜나갔다. 경인선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전기온돌만 깔려 있어도 ‘호텔방’이라고 말한다. 인천지하철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투쟁 끝에 용역대기실에 정수기를 들여놓는 데도 성공했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이 이런 작업 환경을 갖는 이유는 뭘까. 이 위원장은 “한국철도에서 최저가낙찰제로 용역업체를 선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입찰가 외에도 기술적 요인, 수주 실적, 재무구조도 평가되지만, 입찰가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한국철도의 2004~2006년 경인선 20개 역의 청소용역업체 입찰에서는 (주)SDK가 선정됐다. 한국철도가 3년 동안 (주)SDK에 주는 액수는 86억6900만원. 낙찰 예정가인 128억원의 67.6% 수준이다.

한국철도는 용역수주업체들의 저가 경쟁으로 약 41억원을 절감할 수 있었지만, 용역업체로선 쥐꼬리만 한 비용으로 이윤을 남기려니 씀씀이가 적어지게 마련이고, 부득불 최저임금만 지급하면 끝이라는 태도가 나타난다. 노동자들의 건강이나 복지는 뒷전에 밀리게 되는 것이다.

(주)SDK 관계자는 “한국철도에서 받는 돈은 거의 다 인건비로 들어간다”며 “매년 최저임금이 인상돼, 인건비와 4대보험, 청소도구 비용을 치르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한국철도의 담당 실무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심사하는데 저가로 입찰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어요. 용역업체가 수주를 받으려고 과한 욕심을 부리다 보니 입찰가는 계속 낮아지고, 용역업체는 싼값에 낙찰받아 비용의 대부분을 임금 지급하는 데 쓰죠. 일종의 도덕적 해이죠.”

한국철도의 최저가낙찰제가 문제다

한국철도는 용역대기실의 장소와 시설을 제공해줘야 하고, (주)SDK는 이에 들어가는 비품을 제공하거나 기타 관리를 책임진다. 어쨌든 용역대기실의 열악한 환경은 양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경인선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소원은 별것이 아니었다. 일반인들의 시선에서 습관적으로 배제돼왔던 청소용역 노동자들을 응시해달라는 외침이었다. 그러므로 일반 노동자들이 너무 평범하게 누리는 것,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것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정수기를 설치해달라는 것, 그것도 안 되면 수도라도 넣어달라는 것, 샤워장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탈의 공간을 마련해달라는 것, 환풍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반드시 화물엘리베이터를 타라”

부당해고와 최저임금 문제로 지친 KT 고양전화국의 청소용역 노동자들

최저임금 언저리를 헤매는 이들에게 노동환경권은 배부른 소리일까. 열악한 임금과 위태로운 고용상태는 노동자들이 불결하고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미처 대항할 겨를조차 주지 않는다. 지난 4월12일 한국통신(KT) 고양전화국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부당해고와 최저임금 문제로도 이미 지쳐 있었다.

“매일 7~8시간 일해서 버는 한 달 임금이 60만원대예요. 그나마 70만원 넘었던 게 줄었어요. 사람도 줄어 일은 늘어나는데, 임금까지 줄이다니….”

용역업체가 바뀌면서 해고됐다가 최근 복직한 함춘자(54)씨의 말이다. 지난해 말 한국통신 고양전화국은 청소용역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용역업체를 굿모닝F에서 KTM으로 바꾸었다.

“계약서 몇 시간 늦게 냈다고 해고되는 법이 어디 있어요? 새로 바뀐 근로계약서를 보니 임금이 줄어 있어서 좀 머뭇거렸거든요. 그런데 마감 시한까지 내지 않았다고 일언반구 없이 자르다니….”

새 업체인 KTM은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를 약속했지만, 함춘자씨 등 6명은 해고됐다. 공교롭게도 해고된 함씨 등 6명은 그때까지 회사가 요구한 노조 탈퇴서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수원지방노동청에 구제신청을 하는 한편 1월부터 회사 앞에서 복직을 위한 피켓 시위를 벌여 4월 초 복직됐다.

대기업이나 대규모 신축 건물의 노동환경은 그나마 낫다. 하지만 경인선의 그것에 견줘 비교 우위에 있을 뿐이지 절대적으로 좋진 않다. 캄캄한 건물 지하에 있는 이 회사의 용역대기실은 6~7평으로 다소 컸지만, 20여 명이 나눠쓰기엔 넉넉지 않아 보였다.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또 정규직 직원들에게 철저히 안 보이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 이들은 출퇴근 때도 일반 엘리베이터가 아닌 복도 뒤쪽 화물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교육받았다. 함씨는 “용역업체에서 직원들을 만나면 인사하라고 교육했지만, 인사를 받아주는 직원들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어깨 통증에 눈도 따갑다”

거대한 간접고용 파고 겪는 청소노동자들의 건강문제 심각

박순남 ‘건강한 노동세상’ 사무처장은 “최저임금 수준에 허덕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권은 그동안 주요한 문제로 취급되지 못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의 건강 문제는 정규직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말한다.

청소용역노동자에 대한 유일한 건강 통계라면 2004년 건강한 노동세상이 서울 도시철도공사 노조, 여성연맹과 함께 한 청소용역 노동자 건강조사 정도다. 이마저도 예비조사 단계에서 더 이상 진척되지 않았지만, 노동자들은 △안전사고 △근골격계 질환 △유기세제 독성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팀의 면담 과정에서 서울지하철 5~8호선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무가지의 증가로 노동 강도가 심해졌다” “어깨 통증으로 일하기 힘들다” “세제를 사용할 때 눈이 따갑고 피부에 닿으면 쓰리다” “작업복 세탁을 위한 가루비누조차 지급하지 않는다”는 등의 반응을 쏟아냈다.

비정규직의 건강관리는 정규직보다 훨씬 뒤진다. 정진주 여성개발원 연구위원이 ‘직장여성의 건강 관련 실태조사’(2001)의 설문 결과를 토대로 쓴 ‘비정규직 여성근로자 건강증진 방안 연구’(2005)라는 논문을 보면, 회사 내 보건교육은 정규직 여성의 41.7%에 실시되는 데 견줘, 비정규직 여성에게는 13%만이 실시됐다. 정기 건강검진의 경우, 정규직 여성은 76%가 받는 데 비해 비정규직 여성은 41%에 지나지 않았다. 현재 질병이 있는 사람 중 치료 중인 사람은 정규직 여성의 27.4%, 비정규직 여성의 20.9%가 현재 치료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비정규직 내에서 일용직과 수습직은 50% 이상이 치료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몰아닥친 뒤, 가장 거대한 간접고용의 파고를 겪은 게 바로 청소노동자들이다. 1990년대 이전 청소노동자는 대부분 직고용 형태를 띠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용역직으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소자본의 용역업체가 난립하게 됐고,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그해 용역계약 단가에 의해 한 해 살림살이가 휘둘리는 처지가 됐다. 청소노동자들은 고용 여부, 임금 조건, 노동환경이 용역 단가에 의해 결정되는 저비용 구조의 희생양이다. ‘덤핑계약’일수록 한 달 월급은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하고, 노동자들의 건강은 뒷전에 처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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