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법’ 개정 놓고 노정 갈등 재점화

[프레시안 2006-07-04 20:05]

[프레시안 송호균/기자] 정부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데 대해 노동계가 제동을 걸고 나섰다.

민주노총 김지희 부위원장은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는 산재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산재법의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며 “산재법 개악 시도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김지희 부위원장은 “현재의 산재보험도 벽이 너무 높아 전체 산재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있지 못하다”며 “그럼에도 당국은 재정이 불안하다는 이유로 보험급여를 축소하려고 하는 등 사회보험의 취지에 역행하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한국사회보험연구소와 함께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보고서 ‘산재보험 급여체계의 합리적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를 통해 “산재보험의 재정이 보험의 무리한 적용과 선심성 보상행정, 장기요양 환자의 증가 등으로 인해 불안해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보험급여는 최근 3년 동안 연평균 17.9% 증가한 데 비해 보험료율은 계속 인하됐다”며 “2003년과 2004년에는 지출이 수입보다 많아 적립금이 감소하는 현상도 나타났다”고 말했다.

노동부가 산재보험 재정 불안의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휴업급여 지출이다. 2004년 휴업급여 지출액은 산재보험 지출 총액의 33.4%에 해당하는 9546억 원에 이르렀다.

▲ ‘한국 재가 진폐재해자 협회’의 주응환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장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진폐환자들에게 산재법의 개악은 죽음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프레시안

“재정 안정화 노력” 설명에 “무자비한 개악” 반박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의 김신범 위원은 “정부는 휴업급여의 지급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고 장해연금을 감액하는 등의 개악을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신범 위원은 “이러한 개악은 산재 환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현재 지출되는 비용을 갑자기 줄이겠다는 무지막지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산업재해 전문의인 임형준 박사는 “논의되고 있는 개정안의 내용은 주로 산재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이나 보상, 실질적인 혜택 제공에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산재기금의 재정 악화를 막기 위해 보상을 줄이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산재보험 개정을 논의하고 있는 노사정위원회의 입장은 다르다.

노사정위원회 ‘산업재해보상보험 발전위원회’의 이호근 박사는 “재정 문제를 고민하다 보면 불필요한 지출이 있는지 검토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수입과 지출을 맞춰 재정을 안정화시키려는 노력으로 이해해달라”고 해명했다.

이 박사는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에 대한 논의에 비해 산재보험의 발전에 대한 논의는 지난 40여 년동안 지지부진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당장 수혜 당사자들에게 손해를 입힐 만한 내용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모든 논의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는 만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산재법이 개정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환자의 혜택을 줄여 재정문제를 해결하겠다니…”

▲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위원회의 김신범 위원이 노동부의 산재법 개정 추진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프레시안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지희 부위원장은 “산업재해로 인해 매일 7명이 사망하고 100명이 장애를 얻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산재 피해자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논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신범 위원은 “먼저 국가재정을 투여하는 노력도 하지 않고 기업들로부터 보험료를 추가로 징수하겠다는 의지도 없으면서 환자들의 혜택을 줄여 재정의 안정화를 꾀하는 것이 어디 사회보험 정책인가”라고 반문했다.

산재 피해자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진레이온 산업재해자협회’의 한창길 위원장은 “결국 이번 개악 시도는 정부가 야기한 재정문제의 책임을 산재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며 “산재법이 개악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산재 노동자들 사이에서 ‘앓다가 죽느니 싸워다 죽는 것이 낫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재가 진폐재해자협회’의 주응환 회장도 “수만 명에 이르는 진폐증 환자들은 직업병이라는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며 “아무런 대책도 없이 혜택을 갑자기 줄이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라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오는 5일 국회 앞에서 ‘산재법 개악 저지와 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투쟁 선포식’을 열겠다고 밝혀, 산재법 개정을 둘러싼 노동계와 정부 간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송호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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