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증가하고 있는 산재 예방을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입법 예고에 부쳐 –

노동부는 지난 10월 17일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였다. 개정안의 이유는 산업재해 다수 발생 사업장 등에 대한 명단 공개 등을 통하여 사업주의 경각심을 제고시킴으로써 산업재해 예방을 도모하고, 종전에 행정형벌 부과대상이었던 안전관리자 미선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미설치 등 경미한 법 위반 사항을 과태료 부과대상으로 전환하여 법 집행의 실효성을 제고하는 한편, 그간 제도 운영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문제점을 개선·보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1. 이번 개정안은 부분적으로 발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예방에 대한 근본적 요구에는 못 미치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을 살펴보면 ‘보건상의 조치에 근골격계질환에 관한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근골격계질환 예방의 최소한 법적 근거를 확보한 것’이나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사용내역을 작성하고 보관하는 것을 의무화한 것’ 등 부분적으로 발전적 내용을 담은 항목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산안법의 개정에 대한 요구는 이러한 몇몇 내용을 부분적으로 고치는 수준의 것이 아니다. 우리가 꾸준히 이야기한 바와 같이 현재의 산안법은 산업재해에 대하여 가장 중요한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와 사용자의 권리, 의무 관계가 명확히 설정되어 있지 않고 그에 따른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여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적절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안법의 구조 자체를 개혁하는 것을 통하여 뿌리깊은 산업안전보건 문제의 해결을 위한 비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간의 이러한 우리의 주장에 비추어본다면 이번 노동부의 개정안은 실망스러운 것이다. 특히 이번 개정안이 증가하는 산재율, 산재은폐율, 중대재해율에 비하여 사업주 처벌이 미약한 현실에 대한 노동자들의 여론이 증대되어 가는 시점에 입법 예고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현실을 타개해 나갈 뾰족한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문제가 더욱 크다. 그리고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따라 문제가 되고 있는 일용, 하청, 파견 노동 등의 다양한 고용 형태의 변화에 따른 산업안전보건의 문제에 전향적으로 대처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심각한 문제이다.

2. 늘 언제나 노동자들의 참여가 문제이다.
어쩌면 식상한 주장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이번 개정안의 수립 과정에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 위에서 지적한 문제들의 발생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산업안전보건 문제의 당사자인 노동자들이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정부 주도로 이루어진 입법은 이와 같이 정부와 사업주와의 관계가 주된 축을 형성하고 노동자들은 단지 기술적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태생적으로 사업주의 책임과 노동자의 권리에 대한 부분이 명확히 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산안법 개정의 과정에 노동자들의 적극적이고도 실질적인 참여를 보장하지 않은 노동부의 태도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OECD 각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산업안전보건 정책 심의를 노사정의 동등한 참여가 보장되는 가운데 진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사업장 내 안전보건 관련 사업 추진 시 노동자의 참여 권리, 노동자들이 사업장 내 불안전요인에 대해 사업주에게 개선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행정기관에 대한 점검 요청 권리, 점검시의 동행 권리, 개선대책 수립시의 참여 권리 등 산재예방을 위한 핵심적인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부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3. 일부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개정안들도 과연 실질적 효과를 낼 것인지 의문이다.
산재다발 사업장 명단 공개의 경우, 과연 그러한 명단 공개로 사업주들의 자발적인 산재예방 의지를 진작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고, 매우 불투명하게 진행되기 일쑤인 각 사업장의 산재 처리 절차, 산재 관련 정보의 차단 등의 현실을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명단 공개, 즉 행정법 상의 공표는 법률 상의 명확한 근거 규정 없이도 허용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대단히 새롭고 효과를 낼 수는 있는 정책인 양 발표하는 것은, 겉만 번지르르 한 ‘포장’으로 알맹이 없음을 가리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기조차 한다. 명단 공개는 사실상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없는 피상적 제재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하고자 한다면 보다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고 이와 같은 수단의 법적 명문규정화가 필요하다.

산재 사고에 대한 벌칙 강화나 과태료 부과 방침 등도 그것이 상한선만 제시되어 있고 하한선이 제시되어 있지 않아 선언적인 의미만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또한 개정안에 의하면 많은 부분 위반에 대한 제재가 과태료 부과로 개정되었는데, 이는 산안법을 위반한 사업주의 책임을 경감시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정형벌과 과태료의 법적 차이점은 실로 엄청난 바, 과태료는 사회공익을 침해하는 정도가 미약한 경우 단순한 의무 위반에 대해 부과하는 경제적 제재로서 과하여지는 것이다. 개정 이전엔 의무 위반하면 행정형벌이므로 전과자가 되는 것이지만, 이젠 과태료만 내면 되므로 노동부에서 산안법 위반에 대한 면죄부를 팔고자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것이다. 노동부에 의하면 현행 행정형벌 중 근로자의 안전·보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 위반에 대한 것을 행정질서벌로 전환하였다고 하지만 과연 과태료 부과로 전환된 산안법 내용들이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안인지 되묻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연하게도 산안법 구절 몇 개의 기술적 변화보다도 정책 집행 기관의 정책 집행 의지 및 행정력의 효과적 사용 여부 등이므로 이러한 점에 있어 노동부의 전향적 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개정된 산안법의 다소 개선적인 조항들도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2001. 10. 20

노동건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