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노동부는 공공복지 제도 확충에 보다 관심을 가지기를 바란다
– 노동부의 선택적 복리후생제도 도입 논의에 부쳐
노동부는 지난 12월 1일, 종업원이 다양한 사내 후생복지제도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복리후생제도(일명 카페테리아 플랜)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택적 복리후생제도는 마치 카페테리아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듯이 노동자로 하여금 각자의 필요에 따라 복리후생 항목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전통적인 복리후생제도가 노동자 개개인이 그것을 이용하든 이용하지 않든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일률적으로 똑 같은 복리후생제도를 적용하는 것이라면, 카페테리아 플랜의 기본적인 골격은 다양한 복리후생제도의 종류 가운데 노동자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1970년대 미국에서 소개된 이래로 독일, 일본 등에서 점차 도입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부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도입의 필요성에 대하여 “기업의 복지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근로자의 만족도는 이에 맞게 높아지지 않고 있어 복지의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며, “과거에는 자녀학자금이나 주택자금과 같이 복지욕구가 단순했으나 이제는 근로자들의 복지욕구가 다양화되고 있는 만큼 선택적 근로자복지제도의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우리는 기업복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자로 하여금 사내의 복지 항목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에 대하여 기를 쓰고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것이 다양화되고 있는 노동자들의 복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까지 말한다면 그것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러나 노동부와 사용자측의 의도가 과연 그러한 것만인가? 우리는 말해지지 않는 사실에 대하여 그것이 왜 말해지지 않는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선택적 복리후생제도는 미국에서 처음 고안될 때에 기업측의 기업복지 비용 절감 및 비용 통제를 위하여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로 인해 노동자의 기업복지에 대한 만족도가 제고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없지 않지만 그것은 총액으로서의 기업복지 투자가 절감되지 않은 경우에 한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 사용자측과 노동부는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더 심각하게는 혹시 이들이 기업복지를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복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파편화시키고, 이로 인해 복지에 대한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요구를 불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에 더하여 이러한 ‘선진국형’ 기업복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깜짝쇼’를 벌이는 것 자체가 더욱 문제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사회보장 및 복지를 위하여 지금 현재 절실한 것이 과연 ‘기업복지의 효율성 제고’인가? 누누이 지적되었던 바와 같이 기업복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국가복지 혹은 공공복지의 확충이 더욱 절실한 문제가 아닌가? 지금 현재도 기업의 규모나 노동자 개개인의 고용 형태에 따라 차등이 많은 기업복지의 효율화만을 외친다면 그 안에서 소외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기 실업자 등의 사회보장이나 복지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에게는 과연 ‘선택’의 가능성이라도 있는가? 과연 그들이 갈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있는 것인가?
노동부는 근로자복지기본법을 2002년부터 시행하여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왔던 국가복지 혹은 공공복지를 확충하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정작 재정 규모나 준비된 전문 인력 등을 고려하였을 때, 그러한 정책이 또 하나의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많다고 이야기되고 있다. 공공복지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정책을 마련하기에도 시간과 노력이 부족한 이 때에 왠 ‘기업복지의 효율화’ 타령인가? 우리는 노동부가 진정으로 노동자들의 복지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정작 중요한 문제에 돈과 시간을 들이기를 바란다. 현재 기업복지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장기 실업자 등에 대한 공공서비스의 실질적 제공 방안을 강구하기 바라고, 육아나 간병서비스 제공 등의 새로운 사회적 수요에 대한 발빠른 대처를 보여주기 바란다. 노동부는 ‘진짜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 그것을 잘하기 바란다.
2001년 12월 3일
노동건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