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는 재정위기 운운하는 언론플레이로 산재보험 개혁을 더럽히지 말라
–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은 책임준비금이 과다하게 필요하지 않다 –
– 철학적 준비 없는 산재보험 손질은 제도개악일 뿐이다 –

민주노총과 노동자건강권 단체가 함께 하는 노동과건강포럼은 지난 1월 19일에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다 – 산재보험개혁과제 정립을 위하여”라는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물론 이 자리에는 노동부 산재보험혁신팀장과 근로복지공단의 보험관리이사가 참석하여 산재보험 개혁 논의를 진행하였다. 당시 토론과정에서 노동부는 산재보험 제도 개혁안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아 구체적 토론을 진행하기 곤란하다면서도 사회보험적 성격으로 산재보험이 개혁되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재정적 상황 등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한 개혁안을 만들자고 노동부 입장을 밝힌 바 있었다. 이에 대하여 산재환자의 단체대표, 특수고용직노동자대표, 민주노총, 보건의료인 대표 등은 사회보험으로서의 산재보험에는 책임준비금이 과다하게 필요하지 않으므로 재정위기라는 허구적 논쟁을 펼치지 말자고 당부했고, 산재보험 개혁 논의를 노동부 내부에서만 진행할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알리고 공론화함으로써 제대로 된 개혁안을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하였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검토하겠다고 답변한 바 있다.

노동부는 지난 2월 9일 보도자료를 통하여 산재보험제도개선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용역결과는 이미 지난 2004년 말과 2005년 말에 두 번에 걸쳐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으로,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관련된 책임연구자만도 13명이 되는 등 다양한 입장이 실려 있는 연구결과가 2년에 걸쳐 노동부에 제출된 것에 불구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부 보수언론에서는 “산재보험금 5년 내 바닥난다”는 등 특정 연구자의 잘못된 주장을 그대로 보도함으로써 사회여론을 특정방향으로 호도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다양한 연구결과들이 다양한 철학과 입장에 근거하여 생산된 것이므로, 연구결과의 신뢰성과 활용성에 대한 검증이 추후 필요한 것임을 밝히지 않은 노동부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경총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수언론의 여론호도는 언론사에게 별도의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노동과건강포럼은 이미 1월 19일 토론회를 통하여 노동부에게 책임준비금과 관련한 논쟁의 허구성을 제기한 바 있다. 책임준비금이란 민간보험회사가 파산할 것을 고려하여 보험가입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할 자금을 준비하여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보험에서는 안정적인 보험료 징수가 가능하므로 최소한의 책임준비금만을 준비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마치 사회보험인 산재보험에서 책임준비금이 향후 5년 이내에 고갈됨으로써 큰 위기가 닥칠 것처럼 얘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이 지급하는 비용이 과다하게 지출된다는 결론을 끌어내기 위함일 뿐이다. 즉, 향후 우리나라 산재보험의 재정이 위기가 올 것이냐 아니냐는 산재보험에 대한 관점과 보험료 부담방식에 대한 논의 속에서 고민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보험료 고갈 위기를 강조함으로써 산재보험 개혁이 노동자들의 산재급여 축소로 이어지도록 하려는 악의적 음모가 담겨있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나라 산재보험료는 건강보험료 인상률보다 낮으며, 보험료를 감소시킨 적도 있음을 상기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또한 그 밖의 연구결과들에서 요양 2년 후 휴업급여 제한 등의 대안이 제기된 것은 산재보험 재정위기론에 근거한 것으로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 이미 이러한 내용은 원진산업재해자협회 등 산재환자들의 분노를 샀으며 노동부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촉발시키기도 하였다. 산재환자들이 장기적으로 요양을 받게 되는 이유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재정위기를 운운하며 휴업치료 권리를 2년으로 제한한다는 것은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의 대표적 사례였기 때문이다.

2005년 산재보험 40년을 맞이하여 노동부는 산재보험제도개선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 어떠한 주제가 산재보험 개혁을 위해 필요한지에 대한 공론화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노동과건강포럼은 이와 관련하여 산재보험제도개혁의 중요 과제를 제시하여 공식적 논의 확대에 기여하고자 한다.

첫째, 노동부는 약속대로 특수고용직노동자 산재보험 재적용을 즉각 시행하라.
– 레미콘, 학습지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노동자들은 과거 산재보험을 적용받던 노동자들이다. 이들에 대해 정부는 산재보험은 적용하겠다고 노사정위원회 등을 통해 수차례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노동부는 노동자성을 부정하고 자기 돈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임의가입을 시도하고 있다. 정부는 애초 약속대로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 재적용을 즉각 시행하라.

둘째, 책임준비금 등 민간보험적 성격을 강조하지 말고,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의 철학을 세우자.
– 책임준비금은 완전적립방식과 같은 민간보험 방식이 아니라 현행의 부분적립방식을 유지하자.
– 산재보험 요율을 산재율이 높은 사업장에게 높게 부과하는 방식보다는 규모가 큰 사업장에 더 부과함으로써 연대와 평등의 이념을 강화하자.

셋째, 산재보험을 가장 필요로 하는 영세비정규노동자를 위한 산재보험 개혁을 실시하자.
– 산재신청을 하고 싶어도 휴업급여가 너무 작아서 생계를 위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영세비정규노동자를 위해서는 일정 소득 미만의 노동자에게는 휴업급여를 100 % 지급하는 식으로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 산재신청을 위해 MRI를 찍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진료를 포기하는 노동자를 위해 산재판정 받기 이전의 비용을 보험에서 부담하는 선치료 후평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 아프고 다쳐도 자신이 산업재해인지를 모르는 노동자를 위해 병원에서 의사가 직접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동되어야 한다.

넷째, 산재환자 등 이해당사자가 모두 참여하는 산재보험제도개선협의회를 설치하여 산재보험개혁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자.
– 노동부에서 지난 2월 9일에 발표한 자료에서 노사단체 및 관계전문가들과 산재보험제도개선협의회를 운영한다고 한 것을 환영하며, 지난 1월 19일 포럼에서 우리가 요구하였듯이 산재환자들까지 포함하는 협의회 구성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2006년 2월 10일

노동과건강포럼2006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노동건강연대, 산재노협,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원진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