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논평 (2010년 6월9일자)
보팔참사와 공해수출
Bhopal Disaster and Pollution Export
2만5천명 사망한 최악의 환경참사, 26년 지나 징역형 2년 최저형량
20세기에 발생한 세계 3대[1] 환경참사의 하나로 평가되는 인도 보팔참사와 관련하여 인도법원이 지난 6월 7일 사고책임자인 미국 유니온 카바이드사의 피고 7명에 대해 2년 징역형과 벌금 10만루피(약 260만원)을 선고했다. 사건의 주범인 워런 앤더슨 유니언 카바이드 회장은 미국으로 도주하여 판결문에 그의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았다. 이에 인도 현지는 물론이고 세계 주요 언론으로부터 ‘최악참사에 최저형량’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인도 보팔참사는 1986년 12월3일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주의 인구 100만 도시인 보팔시에서 가동중인 미국의 농약회사 유니언카바이드 공장에서 맹독성농약원료인 메틸이소시아네이트(MIC) 40톤이 누출되어 보팔시 인구 절반인 50만명이 이에 노출되어 사고발생 3일만에 3,500명(인도정부발표)이 1994년까지 2만5천여명(인도 지역의료연구협의회)이 사망한 인류최악의 산업재해 및 환경오염사고다. 새벽에 누출된 맹독성가스는 성인어른은 물론이고 생물학적 약자인 어린이와 노인들을 무차별로 쓰러뜨렸다. 사고후유증으로 지금까지 2만5천명이 사망했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피해자가 15만여명에 이른다. 매일 한 명씩 사망자가 나오는 셈이다. 사고피해는 세대를 넘어 2세 피해를 낳고 있다.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성장지연, 사지뒤틀림, 구순구개열(일명 언청이) 등의 선천성 장애증상을 보이고 있다(삼바브니 트러스트).
사고 이후 25년이 넘는 동안 인도 시민사회와 피해주민의 책임규명요구가 지속되었지만 당사자인 미국의 유니언카바이드 농약회사(1999년에 다우 케미컬로 합병)와 인도정부는 이를 철저히 외면해 왔다. 1989년 인도정부가 유니언카바이드사와 4억7천만달러에 합의 한 것이 전부다. 이 금액은 피해사망자 일인당 1,300달러, 부상자 일인당 550달러에 불과한 액수고 그나마 못 받은 사람도 많고 수령을 거부하는 피해자도 많다.
보팔시 피해주민들은 지난 26년간 치열한 책임규명운동을 전개해왔다. 보팔에서 인도 수도인 뉴델리까지 수 천 km를 도보로 행진하는 시위를 수도 없이 진행했고 국제시민사회와의 연대활동도 활발하게 전개하여 피해자대표가 골드만환경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지 환경운동가들은 영국시민들의 모금지원으로 주민병원인 삼바브나 트러스트(Sambhavna Trust)를 세워 전통의학과 요가 등으로 체계적인 피해자치료와 재활을 돕고 있다.
지난 2007년 5월 환경운동연합이 보팔현지를 방문했을 때 사고현장은 아무런 안전조치와 환경정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사고직후 상태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삼바브나 트러스트의 활동가는 “사고현장 지역에 오염물질이 지하로 흘러들어 지하수를 오염시켜 주민들이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오염된 물을 마신 주민들은 여러가지 건강피해증상을 호소하고 있다고도 했다. 농약공장 담에는 사고당시 주민들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구호 등으로 가득차 있었다. Lancet 등 저명한 국제학술지 들은 보팔참사로 인한 건강피해와 환경오염 연구결과를 여러 차례 소개해오고 있다. 피해자를 위한 주민병원인 삼바브나 트러스트에는 십여명의 의사와 재활 및 약재 전문가 들이 피해주민을 돕고 있었다. 그 중 한 미국인 청년이 눈에 띄었는데 그는 의과대학생으로 1년간 이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인도법원의 솜방망이 판결에 인도 시민사회와 피해주민들이 분노하는 가운데 미국정부는 ‘더 이상 사고관련 요구가 나오지 않기 바란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유니언 카바이드사는 이마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2년 징역형을 받은 사람들은 판결 2시간만에 보석으로 모두 석방되었다. 수 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엄청난 사고가 났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이다. 앞으로 인도의 상급법원은 사고책임을 명확이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중 문책하여 환경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보팔참사는 공해수출문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작업환경 안전규제와 환경기준이 강화되자 이를 피하기 위해 규제가 없거나 느슨한 제3세계로 공장을 이전하는 소위 공해수출(pollution export)로 인해 제3세계 노동자와 주민들이 생명을 위협받고 환경오염이 가중되고 대형사고로 이어지는데 보팔참사는 그 대표적인 사례인 것이다.
공해수출은 서구에서 아시아로만 행해진 것은 아니다. 아시아 내부에서도 이루어지는데 일본과 한국의 석면공장들이 인도네시아, 인도, 중국 등으로 이전한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2004년부터 한국은 2007년부터 단계적으로 석면사용을 금지하여 지금은 완전금지하고 있지만 이들 두 나라에서 가동되는 석면공장들이 공해수출된 아시아 이웃나라들에서는 1급 발암물질인 석면사용이 증가추세에 있다. 보팔참사는 공해물질 폭발사고였지만 석면공장가동은 20년 이후부터 터지기 시작하는 ‘시한폭탄’의 뇌관을 눌러버린 것과 같다.
오는 7월14일부터 16일까지 제주도에서 제2회 아시아환경보건장관포럼이 열린다.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몽고 동북아 4개국이 참가하는 정부간회의로 각 나라의 환경장관과 보건장관이 함께 참석하여 환경오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회의참가자들은 보팔참사와 석면공장 및 전자폐기물 공해수출 문제 등 실질적으로 아시아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를 의제로 다루어야 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과거 공해공장의 해외수출로 인해 벌어지는 각종 산업재해와 환경공해문제에 대해 피해조사 및 대책을 제시하는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관련기업과 국가들이 환경보건피해기금’을 기금을 조성하여 체계적으로 문제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보팔참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2010년 6월9일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 환경보건시민센터
환경보건시민센터 공동대표
구요비 (프라도사제회 한국지부 대표신부)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