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공방>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
“업무상 재해 + 통근재해 = 산업재해”
업무시작, 집 떠나면? 회사 와야?…출퇴근하다 발생한 사고, 산업재해인가
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사건을, 사람들의 모든 행위를 법의 규율로 재단할 수는 없다. 그만큼 법은, 문구로 정리된 것보다 더 많은 해석론을 낳기도 한다. 수많은 학설과 학설이 부딪히면서 새로운 통합 학설을 만들고, 그것이 또 사법부에 반영돼 법 해석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노동법 영역에서도 그렇다. <매일노동뉴스>는 매달 한 차례씩 각각 진행되는 한국노동연구원 노동법·법경제포럼과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정기세미나에서 발표되는 논문들과 토론내용을 지상 중계하는 ‘노동법 공방’ 꼭지를 신설한다. <편집자주>
H사에 근무하는 노동자 김아무개씨. 평소 회사가 제공하는 통근버스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던 김씨는, 어느 날 늦잠을 자 급히 택시로 출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경우, 김씨는 산재보상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현행 판례를 엄격히 적용하자면 김씨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왜, 그 이유는 뭘까.
산재보험제도는 사용자가 재해보상 책임을 담보한다는 것을 전제한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행위가 업무상 행위이고, 이 업무상 행위로 인해 발생된 재해에 해당하느냐 여부에 따라 산재보험제도의 적용이 결정된다.
여기서 질문. ‘업무상 행위로 인한 재해’라는 것은 무엇으로 판단하는 걸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서는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재해를 그 요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 번만 질문을 더 하자. ‘업무상의 사유’는 또 뭔가.
‘업무상의 사유’에 대해 학설과 판례는 △업무와 재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근거로 △‘업무기인성’과 ‘업무수행성’을 판단의 중심에 놓고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인 것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 있지 않은 여타의 행위는 ‘업무성’이 부인되고 업무상 사유에 해당하지 않게 돼 결과적으로 업무상 재해가 되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 김씨의 경우를 보자. 이 경우를 산재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 고유의 사정과 판단으로 택시를 타고 출근한 것을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에서 있었던 행위’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례는 통근하는 행위 그 자체와 업무 간의 밀접불가분성은 인정하지만 사용자의 지배·관리라는 ‘업무상 사유’를 전제로 할 경우 사용자의 지배·관리 하로 ‘들어가기’ 위한 출근, 또는 지배·관리에서 ‘벗어나’ 주거지로 퇴근하는 행위는 업무상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통근행위 그 자체는 업무성이 없고 사용자의 재해예방의무가 미치지 않는 것이어서 통근재해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며, 따라서 산재보상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원칙론이 판례에서 확립돼 있다.
그런데 뭔가 석연찮다. 통근행위 자체가 업무성이 없다하더라도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근행위를 해야 하지 않은가. 재택근무자가 아닌 한 통근 없는 업무는 없다. 최소한 통근을 위한 시간에는 사적 용무를 볼 수 없으니까 사실상 업무에 전속돼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기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집을 떠나는 것이 곧바로 ‘(사실상의) 업무 시작’일 테고, 회사 입장에서는 공장(또는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이 그 시작일 테다. 그러면 그 중간지대를 어떻게 봐야 하나. <그림>
그렇기 때문에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학설은, 최소한 통근행위를 하는 도중에 발생한 재해에 대해서도 업무와의 연관성 내지 관련성은 업무수행의 경우에 준할 정도의 동등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상헌 전남대 교수(법학)는 지난달 15일 열린 서울대 노동법연구회 정기세미나에서 ‘통근재해에 관한 판례법리와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에 대한 검토’ 논문을 발표했다. 노상헌 교수는 이 논문에서 통근재해를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라는 ‘업무성’에 천착하고 있는 기존 판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통근재해를 판단한 판례를 소재로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의 의미를 검토했다.
어떤 경우의 통근재해가 업무상 재해일까
노 교수에 따르면, 통근재해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따지는 판례 입장은 대체로 같다. 판례는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경우 △사업주가 이에 준하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하는 경우 △그 밖에 통근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한하여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회사가 묵시적으로 이용하도록 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던 중 발생한 사고인 경우(대판 99다24744), 다른 출근방법과 다른 경로를 선택하리라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그 출근방법이 업무의 준비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경우(대판 2005두4458), 업무상 집결장소가 지정돼 있고 그 장소까지 가는데 다른 대체교통수단이 없는 경우(서울행판 2000구31409) 등이, 판례가 ‘업무성’을 인정하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된다.
통근재해에 대한 법 규정은 산재보험법 시행규칙 제35조(작업시간외 사고)가 거의 유일한데, 이 조항에서는 근로자가 출퇴근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사상한 경우로서 △사업주가 소속 근로자들의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교통수단의 이용 중에 발생한 사고일 것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에 대한 관리·이용권이 근로자 측에 전담돼 있지 아니할 것 등의 요건을 충족할 때만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된다고 쓰고 있다. 다만, 이 경우도 업무와 사고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없으면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노 교수는 “종래 대법원 판결은 산재보험법 시행규칙(제35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통근재해인정과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 교수는 “다만 하급심에서는 최근 들어 종래부터 일관되게 제시해 오던 법리를 유지하되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그 적용범위를 넓히고자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2001년 12월13일에 선고된 서울행정법원의 판례(2001구29373)를 소개했다.
사건은 이렇다. 쓰레기처리 용역작업을 하는 청소차량운전사인 근로자 갑이 다음날 평상시보다 1시간 일찍 출근(오전 5시)하라는 비상지시를 듣지 못한 상태에서 술을 마셨고, 밤 10시께 귀가해서야 집 근처 사는 동료로부터 비상지시사항을 전달받았다. 이에 갑은 다음날 새벽 3시30분께 자신의 승용차로 회사로 가던 중 도로 빙판에 미끄러지면서 약 2m 높이 다리 밑으로 추락해 상병을 입었고 이를 이유로 산재 요양승인신청을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갑의 사고인 통근 중 재해는 음주운전(운전 당시 혈중알콜농도 0.087%)이며, 업무와 무관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의 업무상 사유에 의한 재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승인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법은 음주운전이 통상 운전업무의 위험성과는 별개로 오로지 갑의 음주가 원인이 돼 교통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볼만한 뚜렷한 자료가 없고, 사용자의 비상지시사항 이행을 위해 사고 당일 평상시보다 일찍 출근하는 과정에서 교통여건상 자가용승용차를 운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사고 당일의 출근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서 업무수행 중 그에 기인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에 대해 노상헌 교수는 “기존 판례의 판단 틀, 즉 출퇴근 중 ‘사업주의 지배·관리’라는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산재보험법 입법취지와 출퇴근이 갖는 사회적 의미, (통근재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공무원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결론을 냈다는 점에서 특징”이라며 “이는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산재보험의 보호범위를 확대하고자 하는 견해로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매일노동뉴스 정기훈 객원사진기자
“‘업무상 재해’ 아닌 ‘산재’로 인정할 수도”
다수의 학설은 통근행위가 업무와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데 중점을 두고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포섭하려고 한다. 즉, 학설은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배·관리 아래 있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산재보상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중시하고 도시화와 교통환경의 열악화에 따른 통근재해의 증가, 그리고 통근재해가 개인의 생활상의 위험을 넘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례는 통근경로와 수단의 선택은 노동자 사적 영역에 속한다는 이유로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 있었는지 여부에 따라 통근재해의 업무성을 달리 판단한다.
노상헌 교수는 “통근행위는 업무밀접성과 사적영역이 교착한다는 점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며 통근재해를 △기존 판례법리에 의해 인정되는 업무상 통근재해(즉 사용자의 지배·관리 아래에서의 통근재해)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인정될 수 있는 통근재해 △생활상의 위험으로 노동자가 부담해야 할 통근재해 등 3가지 영역으로 나눴다. 이어 그는 “두 번째, 세 번째의 경우는 업무상 재해는 아니다 하더라도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통근행위에 대한 위험을 ‘업무상 재해’가 아닌 ‘산업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부분과 노동자의 사적 영역에서 부담해야 할 부분으로 구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지적에는 이런 고민이 깔려있다. 학설에서 얘기하듯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포섭한다면, 바로 통근 중에 있는 노동자는 ‘업무수행 중’이라는 주장도 펼 수 있게 돼 △통근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부담 의무 여부 △통근비용 사용자 부담 여부 △통근 중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업무수행 명령 가능 여부 등의 문제가 혼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산업재해에서 업무상 재해가 아닌 입법적으로 ‘통근재해’의 개념을 만들어 이를 산재보험법에서 보호하자”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업무상 재해 + 통근재해 = 산업재해’라는 개념을 만들자는 것이다.
물론 이 제안에 대해서도 산재보험법에 포섭할 것이 아니라 특별법 형태로 제정하자는 반론을 펼 수도 있다. 기존의 업무상(이라고 인정되는) 통근재해를 제외한 통근재해, 즉 현재 보호받지 못하는 통근재해에 대한 새로운 사회보험을 만들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새로운 사회보험에는 사용자를 참여시킬 수 있는 근거가 미약하다”고 일축했다. 이어 “통근재해는 근로생활이 수반하는 사회적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어서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며 “또한 산재보험법에서 ‘업무상’의 개념은 책임을 사용자에게 귀속시키기 위한 근거가 아닌 산재보험의 보호범위를 획정하는 기준으로 역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 재해보상보다 넓게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 가능한가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는 곧잘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 주장과 동일시되기도 하는데, 사회보장화에 대해 사용자쪽은 현실적으로 ‘시기상조’라며 반대하고 있다. 사용자쪽은 통근재해를 산재보험으로 포괄하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곧,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재정부담 문제 등을 감안하면서 사회보장제도로서 산재보험의 역할을 높이기 위해 업무상 재해 인정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는 것과, 중장기적으로 통근재해를 보상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이라고 발표했지만 아직 ‘계획’일 뿐이다.
노상헌 교수는 일본의 사회보장화 논의를 토대로, ‘사회보장적 관점’은 산재보험의 보호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견해일 뿐 사용자쪽이 우려하는 ‘사회보장화’와는 관점을 달리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물론 일본에서의 논의도 ‘종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2가지 점에서는 성과가 있었다고 학계에서는 동의하고 있다.
우선은 산재보험이 사용자의 책임보험 성격이 있다는 것과 다른 사회보험급여와 생활보호보다도 산재보험급여의 수준은 높게 설정돼야 한다는 급여의 우위성을 분명히 확인시켰다는 점이다. 또한 산재보험의 이 같은 기본 성격이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론에 부정적 견해를 보이게 했다는 것이 제2의 성과라는 것이다.
학계의 다수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가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 등 다른 사회보험과의 관계에서 산재보험급여 수준의 하향화라고 이해하면서 반대했다. 또한 보험재정에서 사회보장화의 논리적 귀결인 국고부담의 확대는 사용자의 재정부담 책임을 모호하게 하는 것으로 안이하게 도입해서는 안 되고, 하물며 근로자의 보험료 부담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노상헌 교수는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는 변화하는 사회·노동환경에 산재보험이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함이지, 이것이 사용자쪽이 주장하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를 의미하는 것은 나리”라고 말했다. 사용자가 주장하는 전통적 의미의 업무상 개념에 통근행위가 포함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업무상 재해와 구별, 통근재해로 보호하는 것이지 이를 갖고 산재보험의 성격이 변질됐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 교수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가 사용자의 책임을 전환시키거나 희석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경계하는 일본의 다수학설의 태도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노 교수는 “근로기준법의 재해보상책임 담보라는 산재보험의 입법취지에 엄격하게 구속될 필요 없이 산재보험의 현대적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를 위한 제도설계는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가 결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혹시 사용자 주장과 같이 통근재해의 산재보험화가 산재보험의 사회보장화를 의미한다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국고부담을 확대하거나 근로자에게 일부 부담을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상자기사①> ‘산업재해’가 뭐지? 법전에도 없네
‘노동재해’라고도 불리는 ‘산업재해’(industrial accident)의 사전적 정의는 ‘노동과정에서 작업환경 또는 작업행동 등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하는 노동자의 신체적·정신적 피해’이다. 줄여서 ‘산재’라고도 한다. 그러면, 어떤 노동자가 사고를 당하거나 질병을 앓게 됐을 때 그것이 산재인지 여부는 그 사고나 질병이 ‘업무’에서 기인하느냐를 따져 가리게 된다.
그런데 현행 노동법에는 ‘산재’에 대한 정의규정이 없다. 법상 ‘어떠어떠한 것이 산재다’라는 규정이 없는데 어떻게 산재인지를 따질 수 있는 걸까.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는 ‘산재’에 대한 정의규정 대신 ‘업무상의 재해’에 대한 규정을 적고 있다. 산재보험법(제4조)에는 ‘업무상의 재해’를 “업무상의 사유에 의한 근로자의 부상?질병?신체장해 또는 사망을 말한다”고 하면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에 관하여는 노동부령으로 정한다”고 돼 있다.
<상자기사②> 업무상 재해이거나, 그에 준하거나
외국의 경우…통근재해의 산재인정에 적극적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것으로 보고 이에 상응하는 적정한 보상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병태 한양대 명예교수(법학)에 따르면, 서구의 경우 1920년대부터 출퇴근 중의 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 시작했고, 국제노동기구(ILO)는 1964년 업무상 재해급여 협약 및 권고(Employment Injury Benefits Convention)를 통해 출퇴근 중의 재해를 업무상 재해와 동일시하거나 동일하게 처리할 것을 결정했다. 또한 독일, 프랑스 등 유럽대륙국가는 통근재해를 사회보장시스템에 포함해 보호하고 있고, 미국 등 영미법계는 형평의 원칙에 입각해 판례를 통해 보호하고 있다. 우리와 노동법 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에는 출퇴근 중의 재해를 노동기준법에서 특별히 보호통근제도로 보호하고 있다.
다만 이인재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각 국별로 통근재해 비용부담 방식은 차이가 있다. 일본의 경우 통근재해 비용 일부를 노동자가 부담하고, 모든 기업에 일률적으로 1/1000의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각 개별 사업장의 보험료 산정 시 통근재해로 인한 재해빈도는 고려하지 않으며, 프랑스의 경우 일반적인 산재에 대한 보험료율과 통근재해에 대한 보험료율을 이원화해 모든 기업에 동일한 통근재해 보험료를 설정하고 있다.
<상자기사③> “통근 없으면 업무도, 재해도 없다”
출근 중 교통사고, 업무상 재해로 본 사례 – 서울행정법원
부산에 있는 D섬유회사 노동자 박아무개씨는 지난해 2월 어느 날, 야간 근무를 위해 동료 노동자인 정아무개씨를 태우고 출근하던 중 마주 오던 차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정씨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박씨는 경추 및 늑골 골절 등의 상해를 입었다. 그 뒤 박씨는 이 사고로 입은 상해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요양을 신청했으나 근로복지공단은 불승인처분을 내렸다. 사고 차량이 회사가 제공한 출퇴근용 교통수단이 아닌 박씨 소유이고, 회사 쪽이 박씨의 출퇴근 수단, 방법 및 그 경로 선택에 대해 전혀 관계한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재판장 박상훈 부장판사)은 지난 6월, 근로복지공단의 요양불승인처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사고로 인한 상병을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법원은 2가지 사실에 주목했는데, 하나는 통근재해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는지 여부이고 또 하나는 설사 기존 판례에 의한다하더라도 이 사건의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 관리 아래 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먼저 통근재해가 업무상 재해인가, 하는 점부터 보자. 재판부는 “통근이 없으면 재해도 없다”는 명제를 제시하며 통근은 업무수행을 위한 필요불가결의 행위이고, 따라서 통근재해는 업무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 공무원에 대해서는 통근재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제14조)에서는 공무원이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의해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로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에 이를 공무상 부상 또는 사망으로 보고 있다. 통근을 공무를 위한 준비행위 또는 연장행위라고 봐서 통근 중 발생한 재해 중 통상의 경로 또는 방법에 의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것이다. 재판부는 “사립학교 교원, 군인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규정을 두고 있는데, 사립학교 교원이 ‘근로자’임은 분명하고 헌법에서도 ‘공무원인 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근본적으로 공무원도 근로자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따라서 일반 근로자의 경우에도 공무원이나 사립학교 교원 등과 마찬가지로 개념상 통근재해의 업무관련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보는 경우, 공무원연금법 시행규칙(제14조)과의 법체계, 공무원과 일반 근로자의 형평 등을 고려, 적어도 노동자가 통상적인 경로와 방법에 의해 통근 중 발생한 사고로 인해 부상 또는 사망한 경우를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100% 사용자 부담인 산재보험과 달리 공무원연금은 공무원들의 기여분이 있다는 점을 들어 동등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재판부는 “기여분이 있지만 공무상 재해에 대한 비용은 국가 또는 지자체가 전적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공무원의 기여금제도를 들어 양자의 차이를 설명할 수는 없다”고 봤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비용부담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해석’으로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기보다는 입법적 해결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제시된다. 예를 들어 근로복지공단은 2003년도 공무원을 제외한 통근 중 교통사고 피해자 3만9,431명에 대해 각종 급여명목으로 6,416억원이 지급됐는데, 이를 모두 산재보험에서 감당할 경우 재정에 큰 부담을 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단은 통근 중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거나 사망한 근로자 모두를 산재보험금 산정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이는 각종 구상권 행사 등을 통해 회수 가능한 금액 등을 전혀 고려치 않은 것”이라며 “약 6,400억원의 재정적자 주장은 도저히 현실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산재보험법의 예방적 기능에 비춰 노동자의 통근과정이 사업주의 지배, 관리 아래 있는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산재보험법의 목적(제1조)에서 재해예방을 등을 위한 사업을 시행한다는 부분은 그야말로 재해예방사업을 의미하기 때문에 통근재해를 업무상 재해에서 제외해야만 ‘예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재판부는 같은 법 제4조 ‘업무상의 재해’ 정의에서도 사업주의 지배, 관리 아래 있는 경우에만 업무상 재해로 본다고 쓰고 있지 않은 점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사용자가 제공한 안전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을 이용한 근로자의 교통사고는 사업주의 지배, 관리 아래 있는 경우로 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데 반해 불안전하고 불편한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통근하는 근로자의 교통사고는 그렇지 않은 경우로 봐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바로 산재보상제를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산재보상제도는 무과실책임의 특수한 손해배상제도라는 성격 외에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보장적 성격도 갖고 있다”며 “사회보장적 관점에서 볼 때에도 일정한 범위의 통근재해를 산업재해의 하나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했다.
덧붙여 재판부는 기존의 판례에 의하더라도 이 사건 재해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는 이렇다. 박씨가 운전한 승용차가 자신의 것이긴 하지만 이 승용차를 동료 직원들의 출퇴근용으로 제공한 것은 회사가 시행한 카풀권장책에 호응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통근버스 운행 중단으로 카풀 필요성을 절감한 회사가 카풀 참가 노동자들에게만 유류비를 지원하고 그와 더불어 카풀을 하는 노동자들을 같은 근무조에 편성함으로써 카풀을 실제 회사의 근로조건과 연계시켰기 때문에 박씨는 정해진 시간과 경로에 따라 동료 노동자들을 출퇴근시켜야 했다. 출퇴근 시간이나 경로 선택의 자율성이 박씨에게는 없었다.
따라서 재판부는 “원고(박씨)의 승용차는 적어도 출퇴근 시에는 사업주에 의해 근로자들의 출퇴근에 제공된 차량에 ‘준’하는 교통수단으로서 출퇴근 시 승용차에 대한 사용·관리권은 사업주인 회사에 속해 있었으므로 원고의 출퇴근이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업무상 재해임을 인정했다.
이정희 기자 goforit@labor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