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불길 어른” 꺼지지 않는 악몽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 그후 50일…
임춘월씨의 힘겨운 사투
생사 넘나들며 6차례 피부수술 남편 죽음은 아직 알지도 못해
부상자 보상 문제도 해결 안돼
박원기 기자 one@hk.co.kr
“지금도 꿈에 불길이 어른거려 한밤 중에 자다가도 벌떡 깨곤 해요.”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서울 강남 화상치료 전문병원에 입원해 있는 임춘월(45ㆍ여)씨는 22일 힘겹게 입을 열었다. 생사를 넘나 들며 6차례나 피부이식 수술을 받은 임씨는 지난달 7일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변을 당했다. 25일은 화재사고가 일어난 지 50일째가 된다.
사고 직전 임씨는 창고 안에서 남편 이성복(45ㆍ사망)씨와 함께 우레탄폼 발포작업을 하고 있었다. 오전 11시께,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쳤다. 모두 어리둥절해 하는 순간 ‘펑’소리와 함께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고, 고온의 폭풍에 임씨의 몸은 창고 바깥 벽쪽으로 튕겨 나갔다. 밀려 드는 유독가스를 마시지 않기 위해 숨을 꾹 참고 간신히 기어서 창고 밖으로 빠져 나왔다. 창고 밖에 있던 직원들은 임씨 몸에 붙은 불을 끈 뒤 병원으로 후송했다.
임씨는 요즘 하루 한 번 붕대를 풀고 전신에 화상치료 연고를 바른다. 임씨보다 임씨를 돌보는 주변 사람들이 더 힘들어 하는 순간이다. 둘째 언니 임춘화씨는 “동생이 아픔에 못 이겨 신음소리를 내는데,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래도 임씨는 놀라운 의지로 버텨내고 있다.
임씨는 “처음엔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울화가 생겨 진정제 없이 버티기가 어려웠다”며 “스스로 ‘세상에 아픈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니 스트레스 받지 말자’는 다짐을 수없이 한다”고 했다. 23일에는 엉덩이와 허벅지 부위에 피부를 이식하는 여섯번째 수술을 받았다. 수술 부위가 아물 때까지 천장을 향해 제대로 눕지도 못한다. 안정을 위한 정신과 치료나, 화기(火氣)에 손상을 입은 각막 치료는 아직 먼 얘기다.
그러나 사망자와 달리 부상자 보상 합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산업재해보험 적용도 받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절차 때문이다. ‘중국동포의 집’같은 지원단체의 도움이 없다면 사는 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보증금 300만원짜리 월셋방도 병원비로 이미 날아갔다. 언니 임씨는 “보상금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서는 병원을 나가도 있을 곳이 없다”고 말했다.
24일 오후에는 희생자 40명을 기리는 49재가 유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호법면 유산리 사고 현장에서 열렸다. 언론은 사고 당시 임씨 남편을 포함한 사망자 전원의 명단을 보도했지만, 임씨는 아직 남편의 사망 소식을 모르고 있다. 가족들이 ‘몸과 마음이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당분간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