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안전망, 울고 싶은 산재노동자
매일 247명이 다치는 나라… 지난해 산재 손실액이면 노동자 80만명 고용할 수 있어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오재현 박인희 조현미 기자 08-03-31

연간 산업재해로 인한 근로손실일수가 파업으로 인한 손실규모의 122배에 달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액은 16조2천113억원. 연봉 2천만원을 받는 노동자 80만명을 신규 고용할 수 있는 액수와 맞먹는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9만147명으로, 이 가운데 2천406명이 사망했다는 얘기다. 이마저도 전체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재해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난 88년 15살 소년 문송면군이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수은중독으로 사망한지 20년이 흘렀다. 그러나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부실한 안전관리로 인해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은 구멍 뚫인 사회안전망 속에서 허덕이다 결국 자살을 택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40년만에 전면개정됐다. 이 법이 시행되는 오는 7월이면, 산재노동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을까.

산재노동자 “차라리 죽고 싶다”

지난 24일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역본부 보상2부 사무실. 산재노동자 김아무개(43)씨가 농약을 마시고 중태에 빠졌다. 경찰 조사결과 김씨는 공사현장에서 일하다 2004년 8월 허리 디스크로 산재요양을 받았다. 김씨는 최근 우울증마저 겹쳐 추가 보상을 신청했고, 공단이 승인을 미루자 음독자살을 기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산재노동자의 자살시도는 김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3월28일 새벽 부천의 한 아파트 방안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표아무개(당시 47세)씨.

그는 2000년 5월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졌고, 두달 뒤 공단으로부터 산재승인을 받았다. 표씨는 이후 6년 동안 우울증, 간질, 당뇨합병증으로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공단은 2006년 9월 치료종결을 통보했다. 그는 치료종결 당시 심리평가에서 “내가 늘 원하는 것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계는 치료종결제도와 자문의사제도가 산재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한다. 실제로 공단은 2006년 8월 표씨가 장기환자라는 이유로 자문의사협의회를 소집한 뒤 치료종결을 결정했다. 주치의는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표씨는 자문의사들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표씨의 유족들은 “상태가 악화돼 요양연기 신청을 했는데, 자문의사협의회에 참석해 ‘예’ 한마디 대답하고 나오니 치료종결 결정이 내려졌다”며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무슨 치료를 받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공단에서 제출한 서류만 보고 치료종결을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월 부산지방법원은 산재요양승인과 관련해 “근로복지공단 자문의사보다 환자를 직접 수술한 주치의의 임상적 소견을 우선 존중해야 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공단은 자문의사협의회를 비롯한 산재심사 제도에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자 개정법에 업무상질병 판정위원회를 신설했다. 공단은 “위원회의 위원 3분의1을 노사가 추천하고, 의사와 변호사 등 각계 전문가로 구성해 자문의사협의회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보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무상판정위원회의 역할이 미흡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정용식 건강한노동세상 사무처장은 “판정위원회가 공단의 산하기구이기 때문에 산업재해 판단의 독립성을 가지기 어렵고, 노동자들이 추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적어 공정성 또한 미흡하다”고 말했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2005년 공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산재요양 중 자살하는 노동자는 매년 40여명에 이른다. 산재노동자들이 육체적 피해는 물론이고 정신적으로도 불안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가. 영국과 스웨덴에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은 산재환자를 위해 당국이 정신심리상담사를 고용하는 것과 비교된다.

공단은 이에 따라 2005년 10월 ‘찾아가는 서비스’라는 제도를 도입, 공단 직원들이 직접 산재환자들을 살피도록 했다. 그런데 본래의 취지와 목적과 다르게 제도가 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공단의 찾아가는 서비스가 이른바 ‘꾀병환자’인지 아닌지를 감시하는 방향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에게 산업재해는 일자리 박탈을 의미한다. 13년 간 신길운수에서 버스운전사로 일한 박한용(42)씨. 그는 2004년 10월 버스요금통을 옮기던 중 허리를 삐끗했다. 공단으로부터 업무상재해로 인정받아 1년2개월간 요양했다. 2005년 12월 업무에 복귀하려 했지만 회사는 운전사인 그를 차고지로 발령했다. 박씨는 복귀 45일만에 해고를 통보받았다. 요양 후 30일 간 해고를 하지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을 교묘히 피해 간 것이다.

박씨는 지리한 법정소송 끝에 지난해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복직판결을 받았다. 그는 “3년 동안 마음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데, 일자리마저 빼앗기는 현실이다.

‘패자부활전’은 없다

공단에 따르면 매년 3만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장해판정을 받는다. 이 중 직업을 다시 구한 노동자는 절반도 안 된다. 2005년 장해판정자 3만1천7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42.3%만 직업을 구했고, 원직복귀 노동자는 27.3%에 불과했다. 일하다 다친 10명 가운데 6명이 실직자로 전락사는 셈이다.

그런 가운데 개정된 산재보험법에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한 직업재활급여가 도입돼 주목된다. 산재노동자가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을 받을 경우 최장 1년까지 최저임금의 100%에 해당하는 훈련수당을 지원한다. 요양종결 이후 원직장에 복귀한 산재노동자를 고용한 사업주에게 직장복귀지원금, 직장적응훈련비, 재활운동비를 지급한다.

그러나 장애인 고용률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사업주에게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서 원직복귀율이 올라 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장애인 고용률이 2006년 현재 1.63%(6만3천422명)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산재노동자가 원래 직장에서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캐나다와 프랑스는 산재노동자의 원직복귀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도 산재노동자의 원직복귀를 위해 직무를 변경할 경우 갖가지 지원을 한다. 박수경 대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산재노동자의 직업유지와 직장복귀 서비스에 드는 비용은 재취업을 위한 훈련비용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산재노동자의 원직복귀를 우선적인 정책목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 노동자에게 산재는 두려움 그 자체다. 해고가 무서운 그들에게 산재요양은 ‘그림의 떡’이다. 지하철 청소하청 노동자인 박아무개(60)씨. 그는 지난해 5월 새벽 철로 물청소를 하다 감전사고를 당해 오른쪽 어깨 인대가 파열됐다. 박씨는 사고 다음날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받았다.

비정규직, 산재요양은 ‘그림의 떡’

산재보상 통계를 보면 비정규직보다 정규직의 비중이 월등히 높다.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 완성차기업의 2005년 재해율을 분석한 결과 정규직 노동자의 재해율은 2.94%인데 반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재해율은 0.75%로 정규직의 4분의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규모가 영세하고 위험부담이 큰 작업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재해율이 더 높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며 “사내하청 노동자의 낮은 재해율은 재해위험의 전가가 제도의 지체로 은폐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정규직-사내하청의 직무배치 과정에서 권력관계를 통해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기고 있는데다, 원청에 대한 하청업체의 종속성으로 인해 산재은폐가 합리화되고 있다는 섧명이다.

정작 보호가 필요한 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산재보상에서 배제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와 공사금액 2천만원 미만의 현장노동자, 5인 미만 농림어업, 수렵업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가입대상이 아니다.

오는 7월부터 레미콘운전사, 학습지교사 등 4개 직군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만, 일부일 뿐이다. 전체 90만 특수고용노동자 가운데 3분의 1인 38만여명에게만 부분적으로 적용된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노동자 9만147명 중 3만4천117명(38%)이 제조업 노동자였다. 제조업 노동자들은 소음, 분진, 유기용제로 인한 전통적 문제에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과정에서 노동시간과 노동강도가 높아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안영태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자동차공장에서는 한 시간에 차를 몇 대 만들어야 하고, 조선업에서는 매일 용접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정하고 있다”며 “생산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작업량을 맞추기 위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고 말했다. 안 실장은 “사회적 분위기가 일자리 창출에만 집중하니 사용자들도 노동자 안전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환기시설이나 보호구 없이 일하다 어처구니없이 산업재해를 당하기도 한다. 전남 광주의 비닐세척공장에서 일하던 이아무개(20)씨는 지난해 9월 입사 한 달만에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았다가, 트리클로로에틸렌(TCE) 중독인 것을 알았다. TCE는 간 질환 등을 일으키는 발암물질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유독물질로 분류돼 있다. 사고가 난 사업장 노동자들은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은 채 TCE를 취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생산성에 목매는 기업구조가 문제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 발생건수 가운데 91.5%(사망 59.5%)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났다. 노동계가 기본적인 보호장구를 지급하기 어려운 여건의 영세사업장에 대해 사업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산업재해가 중소, 영세사업장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것과 관련, 산업안전보건법이 정규직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산재보험볍이 ‘공장’이라는 작업공간을 설정한 상태에서, 정규직을 전제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금속노조가 지난해 발표한 ‘노동안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금속노조 소속 98개 지회 중 62개 지회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보다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정규 노동자가 원청노동자에 비해 더 위험하게 일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무응답자를 빼면 90명의 응답자 중 62명(63.3%)이 ‘그렇다’고 답했다.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은 “산재예방을 위해 작업환경을 개선하려고 해도 하청사업주가 원청사업장에 관여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원청 사용자가 산업재해 예방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재발생률은 제조업이 가장 높지만 사망률은 건설업이 높다. 지난해 건설업 산재사망자수는 630명. 공사현장에서 매일 한 명 이상(1.7명)이 숨지고 있는 셈이다. 건설재해 발생원인을 보면 대부분 ‘아차’하는 순간 발생하는 재래형 재해다. 2005년 1만3천192명, 2006년 1만5천14명의 건설노동자가 협착(감김, 끼임), 전도(넘어짐), 추락, 충돌, 낙하, 비래 등의 사고를 당했다.

중요한 것은 재래형 재해가 충분히 예방가능한 사고라는 점이다. 지난해 잇단 산재사고로 닷새 간 공사중지명령을 받은 하이닉스반도체 청주공장 증설공사현장에서 짐을 지고 이동하던 건설노동자가 개구부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몇 달 뒤 자재를 정리하던 노동자가 또다시 개구부에 빠져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첫번째 사고 이후 시공업체인 현대건설은 추락, 낙하 등의 사고위험에 대해 조취를 취해야 한다는 안전진단까지 내렸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도 문제다.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의 합동조사에 따르면 2006년 중대재해 972건 중 53.3%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대형사고 발생시기도 주목해야 한다. 정성운 산업안전공단 건설안전실장은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대형사고의 43.8%가 휴일에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시공사(원청) 직원들은 주말에 쉬는 반면 협력업체(하청) 노동자들은 휴일에도 일을 한다. 결과적으로 주말에 현장을 관리, 감독할 인원이 부족해졌고, 이것이 대형사고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건설현장의 재해분제를 단순히 안전불감증 측면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생산성이 노동자의 생명을 옭아매고 있기 때문이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국장은 “최저가낙찰로 공사를 따낸 업체들이 부족한 자금을 만회하기 위해 공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해 인건비를 줄이려고 한다”며 “공사를 서두르다보면 안저눈제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리하게 낮은 입찰가로 공사를 낙찰받은 하청업체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산업안전관리 비용을 지출하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다.

‘아차’하는 순간 사망하는 노동자

최근 롯데건설 의정부 신축공사현장에서 하청업체인 누리산업개발이 가장 기본적인 보호장구인 안전화, 안전모, 안전대를 지급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졌다. 허위서명까지 강요했다. 건설현장의 다단계하도급이 산업재해로 직결되고 있는 것이다. 박 국장은 “적정공기와 적정단가, 적정인원 등 세 가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건설현장에서 산재가 근절되기는 어렵다”고 우려했다.

2006년 노동부 산재 통계를 분섟해보면 공사금액 20억원 미만의 소규모 공사가 전체 재해의 68.46%를 차지한다. 개인주택공사나 근린생활시설공사, 전기, 정보통신공사 등 소규모 공사의 안전관리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2천만원 미만의 공사현장에서는 산재보험이 아예 적용되지 않는다. 국민소득 2만달러의 대한민국이 ‘산재왕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어떤 문제부터 개선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