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노숙인 의료구호비 중단방침을 즉각 철회하라!

서울시는 노숙인 지원업무 민간위탁기관에 발송한 지난 4월 26일자 공문에서 “중증질환 노숙인의 무분별한 의료구호비 사용으로” 의료구호비가 고갈되어 입원치료가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노숙자 의료구호비’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의 거의 대부분이 일사분기에 지출되어 입원치료에 대해서는 의료급여 수급자 지정이나 거리진료소 이용,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지원 등의 방편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만성질환과 중증징환에 시달리고, 응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특성을 알면서도 내린 서울시의 지침은 만성·중증·응급 노숙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첫째, 서울시는 의료구호비 예산이 거의 바닥난 이유를 “무분별한 의료구호비 사용”으로 들고 있다. 의료이용에서 노숙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의료구호비 고갈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진단의 근거는 분명치 않다. 오히려 지난 3년간 노숙인을 위한 의료구호비 예산이 감축 내지 동결되어왔다는 사실은, 무분별한 의료비 지출보다는 현실을 무시한 서울시의 부족한 예산 책정이 최근 사태를 야기한 주범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01년에도 의료구호비 조기 소진으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던 서울시가 과거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2002년 1436백만원, 2003년 1245백만원, 2004년 1245백만원)

둘째, 서울시가 내놓은 대안들의 행정편의주의와 비현실성이다. 노숙인들이 건강보험 가입자 자격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현행법상 거리노숙인은 의료급여 수급자 지정에서 제외되고 지정 절차가 완료되는 데 적어도 14일의 시간이 소요되며 주민등록 말소 등 급여 신청에 난점이 많다는 점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 민간단체에 따르면 수술 날짜가 잡혔으나 입원을 거부 당하거나 시가 안내한 거리노숙인 의료지원 경로를 따라 갔으나 진료를 거부당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실제 의료이용을 해야 하는 노숙인들의 처지에 서지 않은 비현실적 탁상행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인 셈이다.

셋째, 1998년 이후 노숙인 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 특히 의료대책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왔으나, 지금까지 중앙정부는 의료구호비 지원이라는 단기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예산 규모도 매우 작다. 정부 차원에서 장기 대책으로 제시되었던 의료부조 제도이나 의료급여 수급권자 확대에 관한 진지한 논의나 실천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최근 사태는 관계당국이 단기 대책을 장기화함으로써 발생한 문제일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 중앙정부의 맹성(猛省)이 필요하다.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서울시가 이전의 방침을 스스로 철회하고 신속하게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보완 조치를 취하는 일이다. 내년에 같은 사태가 반복하여 일어나지 않도록 중앙정부와 서울시 모두 예산 편성에 임하는 이즈음에 과거보다 대폭 늘어난, 현실적 규모의 의료구호비 예산 책정도 중요하다. 신빈곤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관련제도의 개선을 계속하여 장기 과제로 밀어둘 수는 없다. 정부는 새 국회 개원을 맞이하여 의료부조 시행이나 의료급여 확대 등 제도 개선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정책과정 전반이 국민들에게 공개되고 합리적인 전문가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전제조건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최근 사태에 대한 시당국의 책임있는 설명과 수습을 요구하며, 서울시와 정부가 문제 해결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임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한다. 관계당국이 과거 수 년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면피성 조치로 일관한다면, 더 이상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한다.

빈곤해결을 위한 사회연대(준)
관악주민연대, 광진주민연대, 노동자의힘,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민중복지연대, 민중의료연합, 사회당, 사회진보연대, 성동희망나눔,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실업극복여수시민운동본부, 위례복지센터,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실직노숙인종교시민단체협의회,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천주교빈민사목위원회,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빈곤문제연구소,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 한국자활후견기관노동조합, 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200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