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권리보장 놓고 노사정 ‘격론’
[민노당-민노총 공동토론회] 핵심 4대 쟁점 논쟁
2004-06-03 오후 2:13:12
17대 국회 개원 이틀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이 공동보조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민노당과 민주노총은 2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 개선방안’이란 주제로 합동토론회를 연 것.
토론회에 앞서 이수호 민주노총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은 책임있는 정치세력으로 활동하고, 민주노총은 대중조직으로써 국회 밖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원할 것”이라며 “이번 토론회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이 이 시대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개최했다는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말했다.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도 “원내진입 후 민주노총과 첫 공동사업이다”면서 “향후 비정규직 문제 이외에도 각 종 현안에 대해 양측이 긴밀한 협조 아래 공조를 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날 토론회는 조진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의 사회로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의 발제아래, 장화익 노동부 비정규대책과장,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 김선수 변호사, 강성태 한양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해 3시간여 동안 열띤 격론을 벌였다.
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민주노동당-민주노총은 공동으로 ‘비정규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법개선방안’이란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다음은 이날 토론회 내용을 쟁점별로 재구성했다.
쟁점1. 비정규직 규모
단병호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프레시안
비정규직 규모에 대해 노동계와 정부-재계의 주장이 다르다. 노동계는 현재 비정규직노동자를 2003년 현재 7백82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55.4%로 파악하고 있는 반면, 노동부는 4백61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32.6%라고 주장하고 있다. 약 3백만명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노-정이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실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란 말 그대로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노동자”라고 설명한다. 즉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노동자의 잔여범주로 파악하는 셈이다. 반면 노동부는 지난 2002년 7월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비정규직 노동자 범주를 받아들이고 있다.
2002년 7월 노사정 합의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한시적 근로자 또는 기간제 근로자 ▲단시간 근로자 ▲파견, 용역, 호출 등의 형태로 종사하는 근로자로 정의하고 있다.
문제의 발단은 2002년 노사정위에 민주노총이 불참해, 사실상 노-정 ‘합의’로 보기 힘들다는 점과 근로계약 형태가 매우 복잡해 져 노사정위 안이 포괄하지 못하는 취약한 노동계층이 매우 많다는 현실이다.
장화익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장은 이에 대해 “노사정 합의에 따른 비정규직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은 고용이 불안정하고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근로자 계층을 ‘취약근로자’로 별도 파악해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계는 노동부 정의에 따르고 있다.
쟁점 2. 상시업무 정규직화-비정규직 사용제한 vs 정규직 해고요건 완화
주진우 민주노총 비정규사업실장 ⓒ프레시안
노동계는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시발점으로 상시업무의 정규직화와 비정규직 사용제한을 주장하고 있다. 즉 기업측은 비정규직을 고용할만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경우에만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재계는 정규직의 고임금과 과보호 해소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고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진우 실장은 “현재 비정규직의 규모는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는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비정규직 사용하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 실장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출산, 육아 또는 질병, 부상 등으로 발생한 결원을 대체할 경우 ▲계절적 사업의 경우 ▲일시적, 임시적 고용의 필요성이 있어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얻은 경우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은 “비정규직이 확대되는 이유는 정규직의 고임금과 까다로운 해고요건”이라고 지적했다. 비정규직 문제해결도 역시 여기서 시작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최 본부장은 “OECD는 ‘한국은 정규직에 대한 고용보호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면서 “고도하게 경직적인 정규직 보호규정을 가진 우리나라 노동관계법 개선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비정규직 보호의 방향이 정규직화에만 맞추어질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현장에서의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노조가 진정으로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한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면 과보호되고 있는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에 대한 양보가 필요하다”며 “비정규직 형태의 인력활용은 고용의 유연성을 확보하여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실업률 감소에 기여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쟁점 3. 동일노동동일임금 vs 직무급제 도입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 ⓒ프레시안
노동계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단지 ‘비정규직’이란 이유 만으로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정규직에 비해 임금-노동조건상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근로기준법에 명문화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진우 실장은 “동일한 사업장에서 함께 일하면서도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며 “이런 부당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법적으로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줒아했다. 그는 균등처우등을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5조에 ▲근로형태의 차이를 이유로 고용 및 근로조건상 차별대우 금지, ▲동일 사업장 내의동일 가치노동에 대하여 동일임금 지급 등 명문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은 “동일노동에 따라 동일임금을 보장한다면 기업은 인건비가중은 물론 고용유연성 확보 또한 보장되지 못할 것”이라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또 그는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하여 채용하고, 대우에 있어 차이를 두는 것은 ‘차별’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자질에 의한 합리적 차이를 인정하는 것일뿐이다”고 덧붙였다.
최 본부장은 동일노동동일임금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직무급 체계’의 도입을 주장했다. 그는 “우리 기업은 연공서열에 따라 임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근속년수만 높으면 높은 임금을 받는다”면서 “직무급 체계를 도입해 정확한 직무능력과 기여도에 따라 임금과 노동조건을 결정해야 하지만, 정규직 노조가 극렬 반대해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장화익 노동부 비정규직대책과장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동일노동동일임금은 올바르다”고 지적한 뒤 “이를 도입하더라도, 기업은 단순 업무변경을 통해 비껴나가는 전략을 취할 것이기 때문에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차별금지문제는 단순히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관점보다도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동일한 노동을 하는데 단순히 고용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임금과 근로조건에서 차별을 받아야한다는 것은 어떠한 논리로도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쟁점 4. 파견법 폐지 vs 파견 허용 업무 확대
장화익 노동부 비정규대책과장 ⓒ프레시안
노동계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급속히 양산하고 있는 파견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1998년에 도입된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로 인해 그동안 불법이었던 파견용역업체나 도급업체 등에 대한 중간착취를 합법화 하고 도급, 사내하청 등으로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진우 실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있어 중요한 사항 중 하나는 불법파견을 양산하고, 이에 대한 사용자 책임을 면제하고 있는 파견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파견법 폐지 이외에도 ▲불법파견 시 해당 노동자 직접고용 ▲파견과 도급의 구분 기준 강화 ▲사용사업자의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 명시 등을 개선사항으로 제시했다.
최재황 경총 정책본부장은 이에 대해 “불법파견시 행정 및 사법적 제재 이외에 개별근로관계의 형성에까지 법률이 직접 관여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인 계약자유의 원칙을 훼손하고 고용시장을 경직시킬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나아가 “파견근로제도를 두는 것은 사용자에게는 고용부담을 최소화하고 근로자에게는 다양한 취업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며 “현행 파견제도는 26개 업종에 한정되 있어 파견근로제도의 목적과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만큼, 파견대상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선수변호사는 파견근로에 대한 정부방안에 대해 “파견근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더라도 현재보다는 파견근로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개선되야 하는데도, 정부 방안은 파견근로자보호방안이 아니라 파견근로활성화방안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파견근로의 사용에 있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고, 상용직 업무에 대한 파견근로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