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연금공공성이다
“국민연금 폐지론과 정부개악안 맞서 연금 공공성 강화투쟁 나서야”
인터넷에서 시작된 ‘국민연금 8대비밀’이 촛불집회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보류된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6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벼른다. 한쪽은 헌법적 저항권이라며 국민연금 폐지를 주장하고, 다른 쪽은 연금급여를 내리고 보험료를 올리지 않으면 국민연금이 위험하다고 아우성이다. 나는 양자 모두 공적 국민연금을 죽이는 주장이기에 동의할수 없다.
‘8대 비밀’을 우선보자. 8대 비밀이 지니는 문제점은 공적 보험에 대한 연대 철학의 부재, 다시 말하면 전면화된 시장논리이다. 국민연금에 모두 가입한 맞벌이 부부 중 한 사람이 사망할 경우 유족은 자신의 노령연금이나 자신에게 념겨진 유족연금 중 유리한 연금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이를 두고 8대 비밀은 국민연금이 사망자의 보험료 원금을 삼켜버렸다고 비판한다.
노령연금과 유족연금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사례는 지금까지 3,800건 생겨났다. 나는 이 경우 현행처럼 배우자가 하나의 연금만을 수령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유족연금은 원래 노령연금 수급권을 가진 가입자를 위한 연금이 아니라 가입자의 사망으로 생계가 막막한 유족을 위한 연금이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에 교묘히 들이대는 ‘낸 만큼은 받아야겠다’는 시장논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노령연금을 받고 있으므로 유족연금은 양보하겠다는 사회연대는 진정 우리사회에서 불가능한 일인가?
‘8대 비밀’은 전면화된 시장 논리
8대 비밀이 제기하는 연금보험료 상한선 문제는 의미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보험료 상한선 문제는 반드시 급여 상한선과 결합해서 다뤄져야 한다. 보험료를 많이 낼수록 연금액도 많이 타가기 때문이다. 정부가 8대 비밀 대책으로 발표한 상한선 인상방안(보험료산정 소득상한액을 360만원에서 435만원으로 상향)도 현행제도에서는 오히려 부자에게 더 많은 연금액을 지급하는 개악안이다. 연금 보험료는 소득비례로 전환하여 상한선을 없애고 대신 연금급여액에는 상한선을 두는 방안이 옳은 길이다.
8대비밀이 제기한 긍정적 알맹이는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관련 형평성 문제이다. 국민연금은 소득 기준이 임의적이고, 보험료징수가 권위적이다. 이 문제의 근원은 자영자 소득파악에서 비롯된다. 지금 조건에선 업종, 지역, 소득자료, 재산 등을 고려한 복합적 기준을 활용할 수 밖에 없다. 대신 억울한 가입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집행의 민주화가 필수적이다. 이의신청 절차를 간소화하고, 가입자의 소명을 전폭 수용해야 한다. 강제 처분도 파렴치한 체납자라는 사실이 분명한 경우에만 이루어져야 한다. 반면 의무가입은 공적보험의 필수적 요건이다. 문제는 보험료납부가 부담스러운 저소득계층에 대한 지원책이 없다는 점에 있다. 소득 인프라구축 운동에 박차를 가하고 저소득계층 연금 보험료를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 해답이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심각하다.
핵심내용은 두가지이다. 장기적으로 연금재정이 불안하니 미리 연금급여를 깎고 보험료는 대폭 올리는 급여/보험료 조정화 국민연금기금운용과정에 가입참여를 축소시키는 기금운용위원회 구성 개편이 골자이다. 공적 국민연금을 축소하여 기업연금과 개인연금을 활성화시키고, 국민연금 운용과정에 정부권한을 강화하여 연금기금을 관치화하려는 사전포석이다.
조세에 기반한 기초연금 도입 필요
현행 국민연금제도를 그대로 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전체 인구 중 절반 이상이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미 양대 노총과 참여연대는 조세에 기반한 기초연금 도입을 제안한 상태이다.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는 가입자의 호주머니를 털 것이 아니라 부유세, 주식양도차익과세등 직접세 확대를 통한 재원으로 지원하면 된다. 그 방식도 저소득계층의 연금보험료 보조방식으로 행해지면 당장 보험료 내기가 어려운 저소득계층을 국민연금제도로 포괄할 수 있어 일석이조이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도 가입자가 실질적 주인이 되도록 위원구성이 민주화되어야 한다.
8대 비밀 논란과 정부 개정안을 흐믓하게 바라보는 이는 부유층과 사적 자본이다. 만약 공적연금이 줄어들거나 폐지되면, 부유층은 높은 보험료를 면할 수 있고, 최근 보듯이 금융회사들은 연금보험상품을 날개 단 듯 팔 수 있다. 반면 공적연금의 재분배효과를 누려야 할 저소득계층은 소득재분배 기능이 없는 개인연금에 무리하게 가입하든지 아니면 별 도리 없이 노후빈곤으로 떨어져야 한다. 안티국민연금은 국가에 대한 저항인 듯하지만, 계급적으로는 보수적인 운동이고, 정부 개정안 역시 연금시장화를 재촉하는 세계은행의 권고를 충실히 따른 신자유주의 방안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6월 국회에 상정될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저지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조속히 기초연금 도입과 공공재원 마련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제출해야 한다. 올해 134조, 내년 159조 등 급속히 쌓이는 국민연금기금 운용도 진보운동의 과제이다. 연기금의 진보적 운용방안은 더 미룰 수 없는 의제이다. 6월 국민연금투쟁 이중전선이 진보운동 앞에 놓여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연금공공성강화의 힘으로 모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