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들은 미쳐가고 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숙농성장까지 CCTV로 일상적 감시
매일노동뉴스 오재현 기자
“폐쇄회로(CC) TV만 보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요. 올해 2월 노숙농성을 시작했더니 회사측에서 CCTV를 두 대 더 설치하더라고요. 죽을 때까지 감시카메라가 저희를 따라다닐 거라는 생각까지 하면….”
7년 전 13명의 노동자를 정신질환으로 내몰았던 감시의 눈은 아직도 돌아가고 있었다. 는 지난 11일 충북 청원군 오창읍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위치한 하이텍알씨디코리아를 찾았다. 산업단지 안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이 회사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CCTV였다.
회사 건물 옥상 위 대형CCTV를 비롯해 정문·관리사무소 등에 모두 5개의 CCTV가 한곳을 향했다. 금속노조 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지회장 김혜진) 소속 노동자 4명이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회사 앞 노숙농성장이었다. 지회 조합원들은 지난 2월26일부터 서울에서 충북 오창까지 내려와 1주일에 2박3일 동안 4~5명씩 조를 짜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측이 조합원들 모르게 지난 2006년 공장을 이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불안·공포·공황장애로 내몰린 이들=회사측은 2002년에도 지회 파업 이후 조합원들을 이른바 ‘왕따라인’에 별도로 배치한 뒤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CCTV를 공장 안에 설치했다.
“화장실을 갔다오면 ‘어디 갔다오냐’고 갑자기 관리자가 나타나 호통을 쳤어요. 화장실에 몇 분 동안 갔다왔냐, 몇 번이나 화장실을 갔다왔냐고 묻기도 했어요. 옆에 있는 사람과 업무상 얘기를 해도 갑자기 관리자가 나타나 버럭 소리를 질렀죠.” 정은주(35) 부지회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날 노숙농성장 한 쪽에서 점심식사를 준비하던 조합원 임옥(47)씨는 자신을 원래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이었다고 소개했다.
“지금은 성격이 많이 날카로워졌다는 말을 자주 들어요. 원래 아이들에게도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집에서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제가 나중에 생각해도 심했다고 생각할 만큼 버럭 화를 내고 있더라고요.”
우해순(52)씨는 공포증과 공황장애의 고통까지 겪었다. 그는 2002년 이후 자주 잠을 설쳤고, 새벽에 일어나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서야 다시 잠을 잘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평생 싸움이란 걸 별로 해보지 않았죠. 그래서 회사 관리자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소리지르고, 왕따시키는 것에 분해서 항의를 하고나면 가슴이 너무 뛰었어요. 지금도 칼에 손이 베어 피를 계속 흘리는 꿈을 자주 꿔요.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여기서 뛰어내리면 죽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법원에서 승소했지만=지회 조합원 13명은 2004년 불안·우울 증상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라는 정신질환 판정을 받았다. 조합원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승인 신청을 냈다. 공단은 그러나 2005년 지회가 공단 관악지사와 서울지사에 두 차례에 걸쳐 낸 산재승인 신청에 대해 “차별·감시 행위는 인정되지만 쟁의행위 기간 중 사용자의 지배 아래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상재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리한 법정소송이 계속됐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4일 지회 조합원 12명의 ‘불안증을 수반한 만성적응장애’와 관련, “공단은 요양불승인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의 노동자 감시는 정신질환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이들을 계속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