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에서 사람이 미쳐가고 있어요!”
청구성심병원, 노조 탄압으로 조합원 절반이 정신질환
2008-04-18 오전 9:37:14
사람이 죽어가는 병원이 있다. 그것도 절반 이상이 심각한 정신질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우울증을 견디다 못해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사람도 있다. 바로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청구성심병원의 얘기다.
청구성심병원은 노조 활동에 대한 병원 측의 방해와 괴롭힘, 감시 등으로 이미 지난 2003년 8명의 노동자가 집단으로 우울증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던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막힌’ 일들은 끝나지 않았다.
5년이 지나도록 변함없는 병원 측의 감시와 일상적인 폭언, 부당한 업무지시 및 배치 등은 결국 산재 요양 후 복직한 한 여성 노동자가 지난 1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자살을 시도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이 조합원은 한 번은 염화칼슘 정맥주사를 자기 팔에 놓았고, 또 한 번은 유리병으로 손목을 그었다.
이 병원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청구성심병원 경영진은 환자 치료에는 관심이 없다”
17일 서울 중구 무교동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청구성심병원 인권침해 진상조사 발표회’에는 “정말일까” 싶은 증언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이날 발표회는 올해 초 이 병원 노동자가 두 차례나 자살을 시도하면서, 37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벌인 실태조사의 결과물이었다. 이들은 지난 3월 28일부터 4월 11일까지 청구성심병원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수거된 60부를 토대로 분석 작업을 벌였다. 설문에 응한 60명 가운데 18명은 비조합원이었다.
발표회 참석자들과 연구 조사자들의 진술은 모두 “이 병원 경영진의 주된 관심사는 환자 치료가 아니라 노무 관리”라는 점에서 일치했다.
“간호사들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이 아무개 기획조정실장은 수간호사들에게 ‘첫째도, 둘째도 노동조합을 없애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이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허윤희 씨의 말이다. 허 씨는 “우리 병원에서 노조 조합원은 무조건 인사고과 평가가 최하위로 나온다”며 이 같이 말했다. 허 씨는 “경영진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고과 평가를 다시 돌려보내곤 했다”고 덧붙였다.
“노조원과는 말도 섞지 말라”
인사고과에서 뿐 아니라 조합원과 비조합원은 승진이나 업무에서는 물론이고 일상에서도 철저하게 분리돼 차별대우를 받았다. 지난 2006년 뒤늦게 노동조합에 가입한 수간호사들은 병원 측으로부터 “노조 조합원과 말도 섞지 말고 밥도 함께 먹지 말아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일관되게 증언했다.
진상조사팀이 병원 노동자 6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서면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80.7%가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에 차별이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는 헌법 11조에 보장된 평등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특히 “조합원에게 집중된 의도적 차별과 따돌림은 비조합원들의 정신적 스트레스로도 작용했다”고 이들은 밝혔다. 설문조사 결과 비조합원 응답자 18명 가운데 7명이 정신질환이 의심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따돌리라는 명령은 받는 사람도 스트레스로 인해 결코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지부장 죽으면 기분 좋게 조의금 낼 텐데!”
조합원이라서 받는 각종 차별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병원 노동자들은 “일거수 일투족이 모조리 감시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간호사 오 아무개 씨는 “간호감독과의 면담 내용을 다른 간호사와 회사 전화로 얘기하고 있는 중에 전화기에서 ‘오 아무개 간호사, 당장 올라와’라고 소리치는 간호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했다.
폭언과 폭력도 일상적으로 존재했다. 허윤희 씨는 “병원장이 응급실로 들어와 손에 칼을 쥔 시늉을 하며 이선우 조합원에게 ‘배때기를 쑤셔버려’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 조합원은 임신 중이었다. 폭언에 따른 충격으로 이 조합원은 절박 유산증 진단을 받고 일주일간 병가를 내야 했다.
폭력배에게서나 나올 법한 험상궂은 욕을 조합원들은 일상적으로 견뎌내야 했던 것이다. 허 씨는 또 “고(故) 이정미 지부장이 위암 투병 중일 때 병원 측 이 아무개 실장은 ‘얘가 죽어야 노조를 깰 수 있다. 걔가 죽으면 기분 좋게 조의금 100만 원을 내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폭행 위협도 잦았다. 현재 청구성심병원노조 분회장인 권기한 씨는 “검진실 밖 복도에 서너 명의 남자직원들이 대기하고 있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신변보호 요청을 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권 씨는 병원의 해고 위협으로 우울증을 얻어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인권단체연석회의는 “이처럼 조합원에 대한 인권침해는 한 가지 유형이 아니라 상당히 복합적으로 이뤄졌다”며 “폭언과 폭력에 차별과 감시가 뒤따르고 저임금과 나쁜 노동조건까지 강제해 정신건강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것”이라고 밝혔다.
“거의 모든 사람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 응한 60명 가운데 35명이 정신질환이 의심된다는 것이 진상조사팀의 결론이었다. 산업의학 전문의인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이 조사를 하면 정신질환 유병률이 10% 초·중반대”라며 “그와 비교했을 때 이 병원 노동자들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와의 면담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도 “현재 청구성심병원은 내부에 있는 모든 사람을 정신병자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며 “범죄행위나 다름없는 일이 저질러지고 있어 단순히 ‘인권침해’로 다룰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청구성심병원 경영진이 범죄집단이나 다름없다는 말이다.
권 변호사는 “노동자의 당연한 기본권에 대한 혐오감을 보이는 것은 곧 우리 헌법에 대해 혐오감을 보이는 것”이라며 “이런 사태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자본이나 사용자에 대해 관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1세기에도 버젓이 기막힌 ‘범죄집단’ 수준의 노조 탄압이 벌어지는 청구성심병원의 홈페이지 첫 화면에는 오늘도 “가족 중심의 병원”이라고 쓰여 있다.
이대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