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보건, 전문가 아니라고 못할쏘냐”
금속노조 1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안전 지원활동 현장
기초교육부터 현장실습까지…영세사업장 안전보건, “산별노조가 책임진다”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전북 익산시 제2공단에 위치한 태형산업. 전체 종업원수가 52명(생산직 36명)으로, 자동차 범퍼를 생산하는 조그마한 회사다. 지난 16일, 이 회사에서는 금속노조가 실시하는 ‘10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활동 지원프로그램’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인근에 있는 만도지부 익산공장뿐만 아니라 군산 신진에스엠지회, 화섬연맹 한국세큐리티노조에서도 참여했다.
“전북지역에서는 노조간부를 대상으로 한 안전보건교육이나 활동이 드물기 때문에 많이들 찾아왔다”고 이민수 금속노조 전북지부장이 말했다. 교육장소는 구내식당. 서른여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다.

안전보건 기초부터 소음측정법까지

“소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제일 심각한 것이 소음성 난청인데, 고혈압을 생기게 하거나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집에서 드라마를 볼 때 나는 안 들린다고 TV볼륨을 올리고, 부인은 시끄럽다고 내리면서 언쟁이 생기기도 하지요. 그뿐입니까. 회사에 출근해 동료들로부터 ‘사오정’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지요. 예, 그렇습니다. 소음은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작업장의 소음’을 주제로 강의한 우지훈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태형산업의 경우 플라스틱 사출작업이 주된 업무이기 때문에 소음문제가 심각하다. 우 연구원은 소음측정기를 이용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이것(소음측정기)으로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를 잡으면 10데시벨(dB) 정도가 나옵니다. 현행법상 작업장 소음 법정기준은 90dB인데 태형산업에서 얼마나 나올까 이후에 확인해봅시다.”
금속노조의 10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 지원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이 사업장 노동안전 취약점을 발견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소규모 사업장 노조간부 스스로가 일상적인 노동안전보건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사업이다. 15만 거대산별노조의 틀이 잡힌 올해 처음 시작됐다.
사업의 도입 배경은 단순하지만 아주 중요한 지점이기도 하다. 노동안전보건 시스템이 비교적 잘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중소·영세사업장은 소음·분진·유기용제 등 작업장 위험요인이 많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노동안전보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노조간부가 없어 사고가 터질 때마다 발만 동동 구르기 일쑤다.
실제로 지난해 노조가 실시한 노동안전보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50인 이하 사업장 지회의 절반(53%)이 산재발생시 보상신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고 있고, 43%는 산재발생 이후 작업공정을 개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와 공상 등 재해발생자료가 수집 가능한 79개 지회 4만4천132명의 조합원 재해율을 조사한 것으로, 금속노조 조합원 100당 6명이 산업재해를 당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프로그램은 근골격계질환·유해물질 등 위험요인 파악과 개선대책 마련 그리고 특수건강검진 활용방안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 연구원의 말처럼 직접 현장에서 실습을 하며 소음측정이나 유해물질 확인 등에 대한 기초지식을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문가들만의 전유물로 치부되던 안전보건활동의 문턱을 낮추는 데 목적이 있다. 윤종선 금속노조 노동안전보건부장은 “작업장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지원프로그램은 지역별로 진행되는데, 지난 3일 경주지부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노조는 이 사업에 총 1천만원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작업환경측정에서는 ‘정상’ 그러나…

오후 3시부터 태형산업 공장에서 현장실습이 이뤄졌다. 이민철 금속노조 태형산업지회장이 먼저 공장구조를 설명하고 지난해 실시된 작업환경측정 조사결과서를 확인했다. 건강관리협회 전북지부에서 작성한 작업환경측정 조사결과에 따르면 분쇄기에서 발생한 소음은 하루 평균 87dB. 사출작업 80.9~84.9dB, 조립라인 83.1~87.5dB로 모두 법정 기준치(90dB) 미만으로 정상이다. 유해 화학물질은 ‘해당 없음’으로 아예 측정조차 하지 않았다.
현장실습에서는 우선 소음측정이 이뤄졌다.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엄청난 소음 때문에 바로 옆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다. 특히 사출기에서 원료를 빨아 당기는 부분(코퍼)의 모터소리는 5분마다 지독한 굉음을 냈다. 소음측정 결과 100dB을 훌쩍 넘었다.
강의를 했던 우지훈 연구원은 “작업환경측정에서 소음이 기준치 이하로 나온 것은 하루 평균치를 내면서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을 포함시켜 저평가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업자들이 귀마개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장기적으로 소음성난청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소음방지용 장치를 기계에 부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소음 외에도 문제가 있었다.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ABS수지에 높은 열이 가해지면서 발생하는 흄(증기)에서도 유해인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날 ‘작업장의 유해물질’을 강의한 곽현석 연구원은 “ABS수지에는 아크릴로니트릴과 1, 3 부타디엔, 스티렌 등이 포함돼 있는데 모두 인체에 유해하다”며 “아크릴로니트릴의 경우 세포 자체에서 산소 이용을 못하게 하는 작용을 해 연탄가스보다 위험하고 1, 3부타디엔은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으며 스티렌의 경우 천식을 유발하고 기형아 출산율을 높인다”고 말했다.
곽 연구원은 화학물질의 노출정도를 측정하는 기계 사용법과 배기장치 설비에 대해 설명했다. 공장에서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지만 작업자들은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민철 지회장은 “예전에는 도장공정이 없어진 이후 유해물질에 대한 우려도 없는 줄 알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새롭게 인식하게 됐다”며 “앞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할 때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산별노조의 첫 시도, 그 결과는?

참가자들은 1시간여간의 현장실습을 마치고 다시 식당에 모였다. 앞으로 현장으로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이다. 이시원 영화기업지회 노동안전담당자는 “그동안 작업환경측정 결과가 법정기준치 미만으로 나오면 모든 것이 정상이라고 믿었는데 이날 교육을 통해 생각이 달라졌다”며 “앞으로 작업환경측정 결과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해보겠다”고 말했다. 영화기업의 원청회사인 만도지부는 “영화지회 조합원들이 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국소배기장치와 관련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교육을 주관한 김신범 원진노동환경건강연구소 교육실장은 “3개월 후 전북지부 노동안전 담당자회의에서 작업장 환경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무엇을 실천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산업재해의 90%는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특히 5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산재의 70%가 집중돼 있다. 정부는 영세사업장의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데 연간 1척언원이 넘는 예산을 투자하고 있지만 재해발생률은 크게 줄지 않고 있다.
금속노조의 ‘100인 미만 사업장 안전보건 지원 프로그램’은 영세사업장의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산별노조의 첫 움직임이다. 정부 예산의 40분의 1에 불과한 사업이지만 노동자 스스로가 주체로 나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