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상식도/인륜도/저버린 세상이
한 가정을 처참히 무너지게 하고있습니다

8년 해고세월 1,2심 승소사건
해방이후 최장기 3년4개월 대법원계류

자유/평등/정의/ 대법원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


▲17년 동안 남편과 함께 다닌 조합원들은 남편이 경비에게 폭행을 당해도
감시하고 있는 노무관리자들이 두려워 보고도 못 본체 지나갑니다

아내 한미선입니다.

회사의 모진 탄압, 산을 넘고 또 넘어, 대법원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이, 또 다시 태산이 되어 첩첩산중으로 변했습니다
처벌을 받아야 할 대상은 부당노동행위를 한 회사인데
모든 것이 뒤집혀 있다며 남편은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합니다

회사는 1,2심에서 패소하자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대법원 행정처와 대법관을 지낸 거물급 변호사를 고용했습니다

회사는 최근 7-8개월 전 관리자들을 동원하여 남편과 함께 활동했던
노조대의원 92% 서명을 받은 진정서를 대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남편이 복직되면 8년 전통의 무 분규가 깨질 우려가 있어 복직을 반대한다는 내용)

서명한 노조대의원 중에는 저의 친정 올케 오빠도 있었습니다.
그분도 회사에 찍히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음을 이해는 하지만.
이런 일이 있은 후 친정 올케 오빠(사돈)과의 관계에 있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남편과 함께 대의원 활동했던 분들과의 관계도 갈라놓고
저희 가족 관계까지도 갈라놓은 회사의 이러한 행위는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라 생각합니다

남편 해고의 우연의 일치일까 시어머니는 수시로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결국은 쓰러져 3년7개월 동안 식물인간으로 계시다가 한을 품고 떠났습니다

남편은 불효의 죄의식에 병원의 중고의료기구를 구입해서
시어머니 목에 구멍을 뚫어 저와 함께 주, 야간 30분마다 한번씩
기계로 가래를 뽑고 미음을 갈아 주사기와 호스를 이용해 생명을 연장하며
대, 소변을 받아내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저는 3년7개월 동안 시어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지금 남편은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단식의 후유증으로
장시간 서있기가 불편하고 여름이면 몸이 무기력해지는 등
수면장애로 힘들어 하고있습니다


▲가족을 지키겠다고 회사정문 180일 철야노숙과 43일간 단식
키182 몸무게 83킬로- 단식 후 63킬로 휠체어를 탔습니다

또 생활보호 대상자이면서 5년째 병원에 있는 바로 위 형님의 보호자인 남편은
매달 약을 타서 형님을 찾아가서 어렵지만 간식비도 넣어주어야 합니다

회사는 남편의 복직투쟁을 감시하고 방해하기위해 CCTV를 설치하고,
고성능 스피커 두 대도 설치하였습니다.
법원도 회사정문 앞에서 어떠한 복직투쟁도 할 수 없도록 한
금지가처분이라는 명령문의 표지판을 두개나 설치했습니다

회사 정문 밖에서 조합원들을 태워 출, 퇴근시키던 통근 버스를
1년 전부터는 회사 안에 통근버스를 대기하기 때문에
남편은 회사정문 앞에서 조합원들을 만날 수 없습니다

1,2심 복직판결은 받았지만 회사 앞에서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습니다.
남편은 철저히 조합원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남편의 꿈은 전 세계 기능올림픽 나가서 금메달을 따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경상남도 전체 학생기능대회에서 배관부문(금) 1등을 수상했습니다
회사에 입사 후 노조대위원 활동하기 전 모범사원 표창도 받았습니다
심지어 회사 시설물을 개선하는 분임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최근까지 대법원의 조속한 판결을 호소하기 위해
울산지역 노조간부, 시민사회단체 명의의 탄원서를
고충처리위원회,인권위원회, 대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오로지 재판중인 사항이라 어떠한 답변도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탄원서를 보낸 남편이 법을 잘 몰라서 그러니
법무사 같은 곳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8년의 해고세월 회사의 모진 탄압, 대법원의 판결지연으로
한 가정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철저히 무너져 가고있습니다

남편이 해고되자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 이상인 1261명의 현장조합원들이 탄압을 무릅쓰고
회사가 남편을 해고한 것은 불법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며 복직탄원서에 서명도 하였습니다.

또 500여명의 조합원들은 꼭 이겨서 일터로 돌아오라고 투쟁기금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도 몇 년이 지난 지금 남편은 덩그러니 혼자가 되어 있습니다

시어머님이 세상을 뜬 후 저는 화장품 외판원을 시작했습니다
하루종일 버스 타고 걸으면서 온가족의 운명을 대법원에 맡겨놓은 저로서는
하루 하루가 피를 말리는 심정입니다

8년의 해고세월은 지옥이고 몸서리쳐집니다
해고자 아내로서 무너져 가는 가족을 잡고자 몸부림 치고있지만
세월의 무게가 저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혹독합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녔던 저와 내동생 승연이 입니다
8년이 지난 지금은 중2, 초등5학년입니다

대법원 재판장님께 드립니다.

저는 울산 현대미포조선에서 97년 해고되어
8년째 복직투쟁을 하고있는 김석진 해고노동자의
큰딸 김소연(중2.15세)입니다.

8년 전 저와 동생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닐 때
아버지는 해고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회사정문에서 180여 일간 철야노숙과 43일간
단식을 할 때 저는 엄마와 동생과 함께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과 저는
농성 장에 찾아오는 아저씨들이 주는 용돈과 과자가 좋아서 함께 있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중학교 2학년이고 동생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몇 개월 전 간단하게 쓰여진 전태일 아저씨 관련 책을 읽고 난 후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전태일 평전을 구하여 읽어보았습니다.
그 당시 전태일 아저씨가 왜!! 분신을 하셨는지
왜!! 2005년 지금도 전태일 아저씨가 존경을 받고 있는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울산과 부산법원에서(1,2심) 복직판결이 났는데
대법원에서 3년 3개월 째 판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버지 말씀대로 굉장히 어려운 정치관련 사건이 아닌
생계 사건은 1년 정도면 다 판결이 난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한 달이 지나면 한달 만 더 기다려보자 했고
계속 3년 동안 동생과 저에게 똑같은 말씀만 하여왔습니다.

3년 동안 동생과 저는 가지고 싶은 것 하고싶은 것 꾹 참고 한달 한달
아버지 말씀대로 기다려 왔습니다.
동생이 투정을 부리면 아버지께서 힘들어 하실까봐 동생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합니까.

아버지께서 복직투쟁하는 모습을 보고, 전태일 평전도 읽어보고,
대법원의 판결이 왜!! 늦어지는지 들으면서
법은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는 가끔 친구분들과 전화할 때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대법원판결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될지 모르지만
8년을 해고가족으로 살아온 저희 가족에게는
가족 전체의 희망과 절망이 걸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경하는 대법원 재판장님.
하루빨리 판결을 받아 아버지가 회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005. 5. 29.
큰딸 김소연

아내 한미선 016-9304-9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