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무엇으로 과로를 판단할까
1주일 사이 업무증가량만 따지는 법적기준, 문제는 없나
박영만 변호사ㆍ산업의학전문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04년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천354시간이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2천시간을 넘겼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OECD 평균 노동시간(1천701시간)보다 679시간, 과로사의 원조인 일본(1천816시간)보다 538시간 더 일했고,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1천312시간)와 비교하면 1.8배를 더 일했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5년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8.5%로 비교대상인 16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그만큼 업무강도가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래저래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일 하나만큼은 세계에서 제일 많이 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법정노동시간은 주 40시간(단계별 시행)이고 추가로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법에서 정한 기준일 뿐, 현실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에서도 주당 70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가 많다. 운수업ㆍ의료업 등 특례사업장은 합법적으로 주 56시간 이상 일할 수 있다.
특히 법에는 교대근무에 대한 규정이 없다. 2조 2교대, 24시간 맞교대근무도 흔하다. 교대근무나 야간근무는 생체리듬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과중한 노동이고 피로축적의 원인이 되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
피로축적이 과로사 유발
과로를 ‘과중한 노동(overwork)’으로 볼 것인지 ’피로가 축적된 상태(exhaustion)’로 볼 것인지에 따라 과로사 인정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과로의 의미를 단순한 ‘업무과중’으로만 본다면 과로사의 범위를 좁히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과로란 단순히 장시간 노동 또는 과중한 노동이 아니라 피로가 회복되기 전에 다시 피로가 겹쳐지고 이것이 반복돼 피로가 축적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과중한 노동, 법적 근거는?
장시간 또는 과중한 노동은 피로축적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일 뿐이다. 물론 과중한 노동은 피로축적을 일으키는 흔하고 중요한 원인이므로 과중한 노동을 했다면 피로축적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과중한 노동뿐만 아니라 교대근무ㆍ업무스트레스 등도 피로축적을 일으켜 과로사를 유발할 수 있다.
무엇을 과로로 보는지에 따라 과로사도 “과중한 노동 때문에 악화된 뇌심혈관질환에 의한 사망” 혹은 “과중한 정신적ㆍ신체적 부담에 따른 피로축적이 유발한 사망”과 같이 달리 정의할 수 있다. 전자로 볼 경우 당연히 사망 전 과중한 노동이 있었는지가 문제가 되고 사망 직전에 평상시보다 그리고 동료노동자보다 과중한 노동을 한점이 증명돼야 과로사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나 야간업무ㆍ운전업무 등 업무스트레스가 높은 작업은 일상업무 자체가 과로사 유발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사망 직전 평상시보다 과중한 노동을 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한편 후자를 과로사로 볼 경우 뇌심혈관질환뿐만 아니라 간질활을 포함해 과로가 영향을 미치는 모든 질환을 과로사로 포괄할 수 있다. 때문에 과로사는 급ㆍ만성과로가 노동자의 기존질환을 악화시켜 사망한 경우로 봐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은 과로를 ‘과중한 노동’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르면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와 만성적인 과로로 발생한 뇌심혈관질환은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여기서 ‘급격한 작업환경의 변화’는 돌발사건 등으로 인한 갑작스런 긴장이나 업무과중을 뜻한다. ‘만성적인 과로’는 업무량과 업무시간이 발병 전 3일 이상 연속적으로 일상업무보다 30% 이상 증가되거나 발병 전 1주일 이내에 업무량 등이 일반인이 적응하기 어려운 정도로 바뀐 경우다.
현행 시행규칙은 과로의 범위를 지나치게 축소했을 뿐 아니라 1주일 사이에 업무량이 증가한 경우만을 만성적인 과로로 보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6개월 이상 장기간 업무과중이 지속된 경우도 당연히 뇌심혈관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또한 12시간 교대제 근무를 하는 택시운전자 등은 평소에 만성과로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과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한편 업무과중뿐만 아니라 작업성질ㆍ작업속도ㆍ작업시간ㆍ작업환경 유해요인ㆍ고용 안정성과 보수ㆍ업무상 지위와 역할ㆍ대인관계ㆍ조직 문화 등 업무스트레스 관련요소도 과로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업무에 대한 재량은 적은 데 비해 높은 숙련도와 고도의 주의를 요하는 경우 업무스트레스가 심하다. 따라서 업무과중 여부를 판단할 때는 단순히 업무량과 업무시간만 볼 것이 아니라 업무난이도ㆍ업무강도ㆍ업무상 책임 및 권한의 변화ㆍ작업환경의 변화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한편 판례는 과거에는 노동자 개인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업무과중 여부를 판단했는데, 최근 들어 ‘업무과중이라 함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통상적인 업무시간 및 업무내용에 비하여 과중한 업무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해동 노동자 개인이 아닌 일반노동자를 기준으로 한다.
일보다 건강 우선하는 인식 필요
최근 법원은 과로사한 노동자의 업무과중 여부를 동료나 같은 업종 노동자들의 업무량과 비교해 판단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일반노동자에게는 과중한 업무가 아니더라도 기존질환이 있는 노동자에게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과중한 업무가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업무과중 여부는 노동자의 △평상시 업무특성 △과로사 발생 당시의 업무변화 등을 함께 고려해 일반노동자 입장이 아니라 해당 노동자의 신체 상태에 비춰 판단돼야 할 것이다.
과로사는 사회 전반적으로 장시간 노동이 보편적이고 직장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해야 하는 근무풍토를 가진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사회현상이다. 같은 동양이지만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나 몽골에서는 과로사가 문제되지 않는다고 한다.
과로사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우에하타 박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과로사한 노동자들은 주 60시간 이상 노동, 월 50시간 이상 잔업을 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따라서 과로사를 없애려면 우선 사회적으로 만연한 장시간 근무를 줄여야 한다.
운전ㆍ감시ㆍ위험작업 및 잦은 장기출장을 하는 작업 등은 과로사를 일으킬 수 있는 고위험작업으로 분류된다. 업무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용규 가톨릭대 교수에 따르면 실제 경비직종 같은 감시작업에서 과로사 발생비율이 매우 높다고 한다. 감시작업 자체의 높은 업무스트레스뿐만 아니라 퇴직 후에도 일자리를 찾는 노년층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숙박ㆍ경비ㆍ건설업 등에서 임금이 낮은 노년층 고용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노년층은 기존질환을 가진 경우가 많고 젊은 사람들보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기 때문에 과로사가 발생할 위험이 높다. 특히 24시간 맞교대근무를 하는 아파트 경비원들은 1주일 평균 84시간의 장시간 노동과 야간근무를 하므로 생체리듬이 교란돼 심각한 생리적 부담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경비원을 비롯한 노년층 노동자들에 대한 뇌심혈관질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고온ㆍ다습ㆍ소음ㆍ진동 등 작업환경도 뇌심혈관질환 발생의 위험을 높인다. 전반적인 작업환경에 대한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
특히 사람의 생체리듬에 반하는 교대제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는 완벽한 교대제는 아직 없다고 하므로 교대제로 인한 건강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은 4조3교대제일 것이다. 그러나 기업은 여유인력을 확보하기보다는 최소인력만 유지하면서 연장근로를 하는 방법으로 인건비를 줄이려 한다. 노동자들도 여가시간이 많은 3교대제보다 초과근로수당을 받을 수 있는 2교대제를 더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4조3교대제를 도입할 경우 노동시간이 줄어든 데 따른 임금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일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어떤 연구자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조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대부분 첫째가 자신의 건강이고, 그 다음이 가정의 평안이고, 마지막이 돈이나 명예 등 사회적 성공을 꼽았다. 그런데 응답자들의 실제생활을 조사했더니, 오히려 사회적 성공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그 다음이 가족, 그 다음이 건강이었다고 한다. 바로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