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0시간 시행하기도 전에 연장근로수당 문의전화 빗발

박종국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국장

건설현장의 대다수 노동자들은 척추ㆍ근육ㆍ호흡기계ㆍ심혈관계질환 등 한두 가지 직업병은 달고 산다. 건설현장은 우리나라 직업병의 백화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만성피로와 이에 따른 근골격계질환이다. 건설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은 어떠한 의미일까.

노동시간 단축, 법대로 지켜질까

건설현장 노동자들에게 출ㆍ퇴근시간(근무시간)이라는 법률상 용어는 사실 소용이 없다. 옥외 작업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아침 해가 뜨기 전 출근해 일몰시간에 퇴근한다. 또한 공사기간을 맞춰야 하므로 항상 현장은 서두르는 것이 관행화돼 있다. 오는 7월1일 이후부터 주 40시간제가 20인 이상 사업장으로 전면 확대된다. 건설현장은 20억원 이상 공사현장에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법의 맹점이 있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이므로 공사금액의 65%에 낙찰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작업자들을 재촉할 수밖에 없고 법은 무시되기 십상이다. 또한 일일단기계약이 대부분이므로 하루 10시간 작업을 거부하면 곧바로 다음날부터 근로계약이 해지되는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제정된 특수건강검진제도 역시 상용직이 아닌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채용거부 등 고용불안으로 이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 노동조합 영향력이 큰 플랜트건설 사업장은 이미 주 40시간제를 적용하고 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실질적 노동시간단축 효과가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건설산업은 여러 공정이 맞물려 이뤄지는 공정이므로 현장(원청사)에서 정문을 닫지 않으면(Shutdown) 노동시간단축의 효과가 전혀 없다. 주 40시간제가 도입돼도 현장노동자들을 새로 채용해 고용을 증대시키기보다, 기존 기능인력을 활용해 일정정도 연장근무수당을 제공하는 건설업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비용면에서 신규 채용보다 낫기 때문이다. 물론 건설현장 노동자들 또한 지난 97년 외환위기 당시 혹독한 후유증을 겪어 자발적으로 연장근무를 선택할 개연성이 높다. 생계유지를 위한 ‘강요된 선택’인 셈이다. 이러한 모든 인과관계들이 건설노동자들을 과로사회로 몰아가고 있다.

추가 연장수당 전화문의 벌써부터 빗발

건설업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건설업이 대표적 3D 업종으로 인식돼 젊은 연령의 건설업종 유입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건설 일용노동자의 연령이 점차 고령화된다는 사실이다. 건설업을 평생직업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장기적 직업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현 상황에서는 젊은 노동자들의 건설업 유입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건설노동자의 고령화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 비중이 높은 건설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이제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체념적 심정으로 일한다. 노동시간단축 등 적극적인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토요일 오전근무’를 주장하며 61일간 파업을 했다. 반만년 건설현장에 획을 긋는 역사적인 성과물이다.

그렇지만 노동안전보건을 담당하는 필자는 최근 고민에 휩싸였다. 벌써부터 7월부터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이후 발생되는 연장근무수당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치기 때문이다. 시행도 하기 전에 본래 의미가 퇴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열린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전국확대간부수련회에서는‘삶의 질 향상을 위한 8시간근무기조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그런데 조합원들은 8시간 근무 안착 투쟁을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푸념한다.

공사비 이유로 일당 삭감 우려

노동계가 기간제법이나 파견법, 근로기준법 개정투쟁을 할 때마다 건설노동자들은 머나 먼 남의 이야기처럼 느끼곤 한다. 사실 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라 건설노동자들이 8시간만 일한다면 건설업체들은 공사비를 이유로 일당을 깎으려 할 것이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결성된 지역조직은 피 터지는 투쟁으로 단협을 체결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건설수주 발주단계에서부터 하나씩 제도를 고치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