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 산재법 시행도 전에 산재불승인 수두룩
현재순 화섬연맹 노동안전보건국장
따르릉~. 얼마 전 화섬연맹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전북지역에서 노동안전보건지도위원을 맡고 있는 동지였다. 그는 “최근 한 사업장에서 3건의 근골격계질환 산재신청을 냈는데 모두 불승인됐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근골격계질환은 거의 100% 산재승인됐는데, 올해는 100% 불승인되고 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산재법 개정안 시행 앞둔 현장은?
연맹에서 노동안전보건국장을 맡고 있는 필자로서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다. 사실 이런 전화가 요즘 부쩍 늘었다. 근로복지공단이 작년까지 어렵지 않게 산재로 인정해주던 작업관련성 질환 대부분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불승인 판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산재 불승인에 항의를 하면 공단측은 ‘자문의사협의회 결정사항’이라며 ‘억울하면 법대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래서 연맹 노동안전보건국장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산업재해보상법 개정에 대한 현장 대응투쟁을 전면적으로 제기해야 노동부와 공단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데…”라는 궁색한 변명밖에 없는 실정이다.
보장성 후퇴, 불 보듯 뻔해
민주노총을 비롯한 안전보건단체들은 줄기차게 40년만의 산재법 개정이 ‘개혁’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투쟁해왔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이명박 정부와 경총을 비롯한 경영계가 산재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일방통행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시행되는 개정 산재법은 산재보험의 사회보장적 성격을 더욱 후퇴시킬 것이다. 노동부가 지난 2월25일 산재보험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한 내용을 보면 산재승인을 더욱 까다롭게 하고 보장성을 약화시키는 조항들로 채워져 있다.
산재승인 더욱 까다로워져
특히 산재로 승인받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개정안에서는 자문의사협의회의 권한이 더욱 강화됐다. 민주노총은 그동안 산재법 개혁의 핵심은 ‘심의기관 독립화’에 있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산재 승인여부를 결정짓는 자문의사협의회에 산재노동자와 주치의의 권한을 더 많이 이양했다.
산재노동자로부터 특진기관 선택권을 박탈하고 자문의사협의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또한 치료종결ㆍ치료기간ㆍ입원ㆍ통원 등 주치의의 권한을 없애고 자문의사협의회의 몫으로 돌렸다.
이와 함께 산재승인 장벽이 더욱 높아졌다. 산재신청에 필요한 구비서류가 더 늘었으며 산재결정 처리기간을 지금보다 일주일 연기할 수 있는 7개 단서조항을 삽입했다. 개정 산재법의 시행시기는 다음달이다. 하지만 이미 현장에서는 개정된 법조항대로 적용되고 있다. 한 달도 남지 않은 시행시기 때문에 노동계에서는 이를 막아내기 위한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 일부 현장에서는 단체협약으로 공단의 산업승인 여부에 상관없이 재해자에 대한 치료ㆍ보상을 책임지거나 원직복직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산재불승인의 굴레에 갇혀가고 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전면화하면 각종 안전보건규제도 완화될 가능성이 높다. 산재위협에 시종일관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이중삼중의 고통에 신음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촛불정국을 넘어 민주노총 6~7월 총력투쟁만이 안전보건분야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되찾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