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적용, 시작부터 ‘흔들’

매일노동뉴스 박인희 기자 08-06-18

특수고용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이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르면 다음달부터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특수고용노동자 산재적용 특례조항이 명시된 산재보험법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보험설계사·학습지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레미콘 기사 등 4개 직군에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이번 법안은 개정 당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전체 90만명의 특수고용노동자 가운데 절반에도 못 미치는 38만명에게만 산재보험이 적용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재보험 적용대상이 되는 4개 직군에서도 산재보험 가입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업체들은 벌써부터 단체 상해보험으로 대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하위법령 고시조차 늑장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과연 특수고용노동자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사용자, 산재보험 피하려 ‘단체상해보험’ 가입

노동부는 17일 산재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개정법 시행을 불과 2주일 앞둔 시점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아 현장은 이미 혼란에 빠진 상태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미숙(43)씨는 “지금까지 일하다 다쳐도 보상은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앞으로 산재보험이 적용돼 치료비도 나오고 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나 “산재보험 가입을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그는 “날아오는 공에 맞고, 카트에 부딪히고, 농약 때문에 피부병도 생기는데 모두 다 산재 적용이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일부만 적용받을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씨처럼 산재보험 적용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지 못해 답답하다고 호소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사용자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는 “산재보험을 준비할 수 있는 시행령이 마련되지 않아 후속절차를 진행할 수 없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사용자들이 산재보험 대신 상해보험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게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다. 학습지업체들의 모임인 교육산업협회 관계자는 “학습지업계는 산재보험이 배제된 교사들에게 상해보험을 제공하고 있다”며 “산재보험이 적용돼도 상해보험 선택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별교사가 원하는 보험에 가입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상해보험의 경우 사용자가 전액 부담한다. 반면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절반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산재보험 가입이 얼마나 늘지는 의문이다. 보험업계도 자사의 상품을 산재보험으로 대체할 전망이다. 생명보험협회 관계자는 “단체상해보험으로 산재보험을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산재보험법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손해보험협회는 “단체상해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아 각 회사마다 단체보험을 도입할 것인지, 산재보험에 가입할 지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상해보험은 전액 사용자가 부담한다는 측면에서 산재보험보다 혜택이 커 보이지만 정작 산업재해를 당하면 보상금이 적어 노동자에게는 오히려 피해로 돌아온다. 특히 일부 골프장업체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하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 “돈만 내고 보상받기도 어렵다”는 말로 경기보조원들의 산재보험 가입을 막으려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반쪽짜리 산재보험, 노조도 ‘가입 거부’

이영화 서비스연맹 조직국장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5:5로 보험료를 부담하고 당연적용이 아닌 선택적용 조항을 뒀기 때문에 처음부터 반쪽짜리 법안이었다”며 “특수고용직의 노동자성을 부인해온 사용자들이 산재보험 가입을 외면하는 것은 이미 예상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때문에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조가 나서 산재보험 가입 거부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기도 했다. 학습지산업노조는 산재보험 가입 거부를 조직방침으로 정했다. 노조는 산재적용 거부를 위한 조합원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강종숙 대교지부 지부장직무대행은 “학습지교사는 여성의 비율이 높아 육아 등의 문제로 대개 근속연수가 짧다”며 “1~2년 일하는 이들이 보험료를 사용자와 절반씩 부담해 제대로 된 혜택이나 볼 수나 있겠냐”고 반문했다.

한편 레미콘업계는 노사 간 마찰이 발생하자 고용관계를 피하기 위한 목적의 ‘소사장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산재보험 가입을 둘러싼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이같은 추세는 노동부도 잘 알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은 당연적용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특수고용노동자의 가입률이 일반노동자보다 훨씬 낮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보험가입 신고기간인 70일이 지난 후 추이를 보고 하반기 연구용역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