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모든 지식인들께 간곡히 호소합니다 (펌)
김연각

저는 서원대학교 법정학부에 재직하고 있는 김연각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다지 잘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는 대충 짐작하고 있고 그래서 그것을 다하고자 애를 쓰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입니다. 오늘 저는 우리 지역 청주에서 발생한 참으로 가슴 아픈 사연 하나를 소개하고 감히 우리 지역의 모든 동료 지식인들에게 관심과 도움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청주의 어떤 사람들은 이미 1년 가까이 재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고생고생 하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누구한테 머리가 수박 통 깨지듯, 눈알이 터지도록, 목뼈가 부러지도록 얻어맞고 또 끌려가 갇히고, 이렇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별 희망, 대책, 대안이 보이지 않은 극한적인 상황으로 내몰려 있습니다. 바로 우리 지역의 대표적 대기업 가운데 하나인 “하이닉스-매그나칩스”라는 회사의 사내 하청노조 사람들 얘기입니다.

얘기의 줄거리는 대략 이렇습니다. 작년 이맘때 쯤 이 사람들이 정부가 정한 소위 최저생계비 수준을 넘나드는 정도의 박봉으로는 도저히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임금인상 투쟁에 나섰습니다. 이런 종류의 투쟁이 늘 그렇듯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투쟁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노조도 만들어지고 다소 법을 어긴 단체행동도 있었고, 경찰의 명백한 과잉진압도 있었고, 사용자측은 계속 “법대로 하자” 식으로 버티면서 대화에 응하지도 않았고, 뭐 그렇고 그런 뻔한 얘기들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우리 지역사회에서도 뜻있는 시민-사회-노동단체, 종교단체들이 나서서 어떻게든 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해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정부 유관 기관에서도 불법파견 결정을 내림으로써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사람들의 처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으며 급기야 한 노동자가 경찰에 의해 목뼈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지금 드리고자 하는 말씀은 경찰이 잘못했다, 사용자측이 잘못했다, 아니,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온 주된 책임은 노동자들에게 있다, 그것도 아니다, 법이 잘못되어 그런 것이다, 등등 이런 종류의 주장을 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건, 책임이 누구에게 있건 지금 이 마당에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중요한 것은 이 땅의 젊은 일꾼들이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고 그저 목숨 걸고 싸우는 길 밖에 없어 목뼈가 부러져도 오로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는 참혹한 현실입니다. 이들이 하고 있는 투쟁은 그 무슨 노동해방을 위한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것도 아니고, 한 달에 봉급으로, 이를테면 200만원 쯤 받는데 더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한만큼 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최저생계비”보다는 좀 많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정도만큼만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최소한도의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정도의 보상을, 아니 생존을 위한 절규입니다. 그러나 겨우 이 정도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돌아 온 것은 체포와 해고, 그리고 무자비한 폭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런 해결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더욱 극단적인 투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저는 이런 현실을 지식인 선후배 동년배 동료님들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아니, 이런 현실이 바로 우리 지역사회에서 벌이진 현실인데 이 사회의 지식 계층으로서 살고 있는 우리가 오불관의 자세로 구경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얘기를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아직 때가 아주 늦은 것은 아닙니다. 노사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면 양측이 모두 이기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지역사회의 모든 기관, 단체, 그리고 뜻있는 인사들이 나서서 노사간의 대화와 타협을 종용하고 또 그것이 성사될 수 있는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한다면 노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기는 행복한 결말을 가져 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우리 지식인들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지역의 모든 양심적인 시민-사회단체, 종교단체, 노동단체, 그리고 충북도와 청주시청 등 관계기관이 모두 떨쳐나선다면 안 될 것도 없지 않은가, 여기에 우리 지식인들이 동참해서 안 될 이유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각자가 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각자 사정에 맞게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한 데 모으면, 하다못해 이름 석자라도 빌려 준다면 그것이 큰 힘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바로 이런 확신 때문에 제가 감히 붓을 놀려 지면을 더럽히게 된 것이니 널리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면의 일로서 오는 11월 10일에 뜻을 함께 할 분들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습니다(별도 문건 참조). 우선 이 자리에 모두 나와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또한 아래에 저의 연락처를 적어 두겠습니다. 저에게 지도 편달을 주십사 하는 뜻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5년 11월 4일

김연각 드림
kyg@seowon.ac.kr
(043)299-8614; 011-9254-23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