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5명 석면폐증 ‘숨막힌 삶’…“국가 보상을”
입력: 2008년 07월 04일 02:46:52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창립기념 심포지엄’이 열린 3일 서울대 호암관. 박영구 ‘한국석면피해자와 가족협회’ 회장(53)은 “그냥 먼지가 많은 공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숨쉬기가 어렵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박영구 회장이 석면폐증으로 사망한 아내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석면폐증 진단을 받았다. 13년 전 아내(하경생씨·당시 37세)도 석면폐증으로 잃었다. 석면 공장에서 함께 일한 가족·친지 8명 중 5명이 석면폐증을 앓고 있다. 가문 전체가 ‘석면과의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다.
박씨는 15살이던 1970년 석면방직업체인 부산 제일화학에 입사했다. 하루 12시간씩 일한 공장은 석면 먼지로 자욱했지만 누구도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먼지 속에서 일하고 도시락을 먹고 쪽잠을 잤다. 박씨는 “석면가루가 눈처럼 날렸다. 마스크를 벗으면 코 주변에 하얗게 가루가 쌓였다”고 당시 공장의 모습을 기억했다.
아내 하씨를 만난 곳도 공장이었다. 공장 야유회 때 몰래 손수건을 건넨 아내에게 조개 목걸이를 사준 게 인연이 됐다. 두 사람은 77년 결혼했다.
아내가 기침을 시작한 것은 85년 무렵. ‘감기 참 지독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엔 숨이 갑갑하다고 했다.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병명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산소호흡기까지 달아야 했던 아내는 95년 폐가 굳어 세상을 떠났다. 유난히 기침을 많이 하던 처형, 박씨의 누나와 동서도 석면폐증으로 진단됐다. 모두 알음알음 한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박씨는 “지난해 동료로부터 ‘공장 석면에 문제가 있었다’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고 했다. 석면입자가 폐에 들어가 허파꽈리를 굳게 만든다는 석면폐증은 아내와 가족들이 겪은 증상이었다. 박씨는 “죽음 전까지 아내의 고통을 지켜본 나로서는 앞으로 겪게 될 고통이 도저히 감당되지 않고 두렵다”며 고개를 떨궜다.
70~80년대 건축재로 널리 쓰인 석면은 석면폐증·악성중피종 등 호흡기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용이 금지되는 추세다. 우리나라도 내년부터 모든 석면제품의 제조·수입·사용이 금지된다. 그러나 지금도 석면의 고통은 진행형이다.
석면 피해를 연구해 온 안종주씨는 “한때 전국적으로 40여개의 석면공장이 운영됐다”고 전했다. 박씨는 “국가가 석면피해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피해자들의 산업재해 승인 절차를 간소화해 적절한 보상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