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할수록 뱃살 늘고, 허리 굵을수록 임금 낮아
노동자 ‘뱃살에 대한 사회적 책임…공공 건강관리서비스 필요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20대에 날렵한 몸매를 자랑했던 김인호(가명·35)씨. 그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줄곧 살이 찌기 시작했다. 잦은 회식에다 빡빡한 일정으로 운동할 짬을 내기 어려웠고, 실직기간에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김씨는 지금 80킬로그램이 넘는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그는 ‘과체중·복부비만’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로부터 “뱃살을 빼지 않으면 간이나 심장에 무리가 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졌다.

우리나라 20세 이상 성인 가운데 22.5%가 복부비만이다. 20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복부비만 성인은 해마다 22만5천명씩 늘어나고 있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허리둘레가 남성 90센티미터 이상, 여성 85센티미터 이상이면 복부비만에 해당한다. 지난 98년 700만5천291명이던 복부비만은 2005년 현재 858만2천502명으로 7년 새 22.5%가 늘었다.

비만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는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성인의 32.4%가 비만인구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10여년 전보다 1.6배나 증가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2025년에는 우리나라 성인 2명 중 1명은 비만이 된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2005년 현재 연간 1조8천억원에 달한다. 국민전체의료비의 약 5%가 ‘살’ 때문에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취업포털 커리어(www.career.co.kr)가 직장인 3천18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직장인 63%가 ‘나는 비만’이라고 답했고, 체중관리를 위해 한 달에 평균 5만1천원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잠복한 위험, 뱃살

비만은 단순히 ‘외모’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얼짱’, ‘몸짱’으로 대변되는 다이어트산업으로 지나치게 왜곡된 부분은 있다. 하지만 의사들은 “비만은 건강상태를 평가하는 척도”라고 말한다. 정부 차원에서 ‘살과의 전쟁’을 벌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비만은 ‘에너지 섭취와 소비의 불균형으로 인해 체내에 지방조직이 과다하게 축적된 상태’로 정의된다. 체중이 많이 나간다고 꼭 비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것을 체질량지수(BMI)라고 한다. 병원에서는 체질량지수가 25가 넘으면 ‘과체중’, 30이 넘으면 ‘비만’으로 본다.

비만은 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과 함께 뇌심혈관계질환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한림대 의과대학 연구팀이 보건복지가족부의 연구용역으로 진행한 ‘근로자 뇌심혈관계질환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병 위험도 평가 및 사업장 내 건강증진 시스템 구축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과체중 또는 비만일 경우 심혈관계질환으로 인한 사망률이 각각 2.5배, 4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복부비만이 더 치명적이라는 연구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비만은 심장근육의 무게와 혈액량을 증가시키는데 체질량이 10킬로그램 늘어나면 심혈관계질환 위험도는 15% 상승한다. 뇌심혈관계질환은 암에 이어 한국인 사망원인 2위이자, 지난해 업무상질병으로 인한 사망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노동안전보건의 ‘최대의 적’인 셈이다.

노동자들의 비만관리는 기업과 정부 입장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다. 미국 듀크대가 노동자 1만1천730명을 대상으로 8년 간 추적 연구한 결과를 보면 비만 노동자가 많은 기업은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관련비용이 두 배를 웃돌았다. 가장 뚱뚱한 노동자들은 정상적인 노동자에 비해 결근일이 최대 13배 많았다. 또 부상도 많아 회사의 의료비 부담이 7배 가량 증가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과 공공기관들은 직원들의 건강관리에 나서고 있는 편이다. LG전자는 매달 한 번씩 건강강좌를 열고 직원들의 당뇨·혈압·체성분·피부탄력 등을 무료로 진단해 준다. LG전자 창원공장의 경우 비만 직원들이 체지방 감량 목표를 달성하면 금 한 돈을 지급하면서 체중관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 정부도 세종로·대전 청사에 건강관리지원센터를 두고 내과의사를 고용해 고혈압·당뇨·비만 등 만성질환에 대한 진단 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 특히 상대적으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머나 먼 이야기다.

실제로 비만은 소득수준에 반비례한다. 서울백병원 가정의학과 강재헌 교수팀이 2001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바탕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월 평균 가구소득이 50만원 이하인 저소득 계층은 2명 중 1명이 비만이었지만 101만∼200만원인 계층은 26.4%, 월 소득 300만원 이상인 고소득 계층은 20.44%로 밝혀졌다. 비만과 경제력 사이에 역관계가 성립되고 있는 것이다.

교육·소득에 따라 ‘뱃살’도 양극화

교육 수준별로도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인구의 19.54%가 비만이었지만, 중졸 학력인 경우 34.71%, 그리고 초등학교만 졸업한 경우에는 41.64%가 비만이었다. 특히 여성의 경우 소득·교육 수준별 비만 발생격차가 남성보다 훨씬 더 컸다. 또 엄마가 비만이면 아이도 비만일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강 교수는 “소득·교육 수준이 높으면 비만에 대한 경각심이 높고, 그만큼 건강관리에 더 투자하지만 저소득층에선 이런 비용 지출이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서도 건강의 차별이 존재한다. 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사망률은 정규직의 3배다. 10개 병원 산업의학과에서 8천377명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봤더니 정규직의 34.1%는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계약직과 임시직은 각각 69.7%, 74.2%가 일주일에 단 한번도 운동을 하지 않았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은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돈 때문이라는 응답은 정규직이 1.7%인 데 비해 임시직은 4.1%로 3배가량 높았다. 또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는다는 응답은 정규직이, 자주 과식한다는 응답은 임시직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현재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비만한 사람은 앞으로 가난해질 가능성도 높다. 미국의 경우 비만한 여성이 정상 체중인 여성보다 임금수준이 2.3∼6.2% 낮으며, 비만한 남성은 정상 남성보다 0.7∼3.4% 적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관리도 ‘공공성’ 필요

이처럼 소득수준과 고용형태에 따른 건강관리 불평등이 뚜렷한데도, 이명박 정부는 건강관리 산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잇단 의문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노무현 정부는 내년부터 중소·영세사업장에 ‘사업장방문 간호사제’, 1천명 이상 대형사업장에는 ‘사업장 주치의 컨설팅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건강검진체계를 실효성이 있게 개선하고 예방 중심의 사업장 지도감독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전국 지방노동청에 의사 출신 산업안전감독관을 배치해 건강관리팀을 별도로 운영키로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예산 10% 절감을 앞세워 신규사업을 허용하고 있지 않아, 이 사업은 추진단계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대신 이명박 정부는 건강서비스시장 활성화에 골몰하고 있다. 대통력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중점과제로 선정해 눈독을 들여온 ‘건강서비스’는 보다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금연· 절주·식이·운동 등 생활습관을 개선해 스스로 건강을 증진하도록 평가·교육·상담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예컨대 고혈압이나 비만예방을 위해 주기적으로 생활패턴을 체크하고 관리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질병 이전 단계의 건강관리를 통해 국민건강을 증진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건강증진보다는 건강서비스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한다. 지난 4월 보건복지가족부가 구성한 ‘건강서비스 활성화 TF팀’을 보면 병원업계와 건강관리회사는 물론 민간보험회사까지 대거 포함돼 있다. 정부는 ‘건강서비스 활성화 TF 논의결과’를 토대로 오는 10월 건강서비스기관 관리체계 및 공공보건사업 민간위탁 등의 내용을 담은 건강증진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가뜩이나 부족한 공공 건강관리서비스마저 시장에 내맡겨질 위기에 놓였다.

뱃살까지 법으로 관리하는 일본

최근 외국의 정부와 기업·학교 등은 개인의 뱃살에 개입하고 나섰다. 급증하는 비만환자로 인해 고혈압·당뇨병·정신질환과 같은 각종 질병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만의 핵심인 ‘뱃살’은 어느덧 사회를 위협하는 ‘재앙’으로 떠올랐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15세 이상의 세계인 가운데 비만으로 분류되는 사람은 약 4억명, 과체중 인구는 16억명에 이른다.

특히 일본은 강력한 비만퇴출작전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지난 4월부터 40~74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내장지방형 비만을 건강진단에 추가한 ‘특정 건강진단·특정 보건지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허리둘레의 경우 남자는 85㎝, 여자는 90㎝ 이하로 무조건 줄여야 한다. 만약 3개월내 기준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적용하고, 6개월 후에도 개선이 안되면 재교육을 실시한다. 해당기업과 지방정부에 대해서는 과태료도 부과하고 있다. 일본은 앞으로 4년 이내에 비만인구를 10%, 7년 이내에 25%를 감소시켜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비용을 줄인다는 포석을 깔고 있다.

이에 따라 대기업들도 ‘메타보(비만)사원’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도요타와 NEC 등 대기업들은 법정 연령 기준보다 낮은 30대 초·중반의 사원들도 비만도 측정을 받도록 하고 있고 선스타 등 일부 기업은 비만 판정을 받은 사원을 다이어트 학교에 보내 저칼로리 음식을 제공하고 운동을 시키며 직접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