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가는 대한민국] 上. 의료사각 방치된 불법체류자 2세들
[경향신문 2006-02-07 20:09:41]
# 지난해 7월 호흡기 장애를 갖고 태어난 다니엘라는 5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출생 직후부터 격한 기침으로 호흡곤란 증상을 보이던 다니엘라는 ‘선천성 성문하협착증’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이주한 다니엘라 부모에게 수술비 3백만원은 큰 부담이었지만 안산의 직장동료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수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니엘라의 ‘행운’은 여기까지였다. 하루 10만원 정도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부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병원은 입원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퇴원에 반대했지만 다니엘라 부모는 “병원비를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병원 문을 나섰다. 병원측은 집에서도 산소호흡기를 사용할 것과 계속 통원치료를 받을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산소호흡기는 제일 싼 것이 30만원 이상이다. 다니엘라 부모의 월 60만원 수입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산소호흡기 없이 집에서 생활하던 다니엘라는 지난해 12월 끝내 숨졌다. 어머니는 “딸이 조용해서 오랜만에 곤히 자고 있는 줄로 알았다”면서 “너무 너무 짧게 살다가게 해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방글라데시인 마히야(40)는 돈 때문에 갓 태어난 딸을 퇴원시켰다. 간과 심장이 좋지 않아 출생 직후부터 일주일간 입원을 했는데 병원비만 1백60만원이 나왔다. 한달 수입 1백만원으로는 입원을 계속할 수 없어 퇴원한 뒤 경기 마석가구단지에서 구리의 종합병원까지 통원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통원치료비까지 합쳐 2백만원이 들었다”면서 “숙련공 대접을 받아 그나마 월급이 많긴 하지만 병원비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푸념했다.
# 몽골인 도와(35)는 딸 한다(12)가 몽골에서 한 편도선 수술의 후유증으로 목이 부어 있지만 병원에 데려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퇴근을 빨리 해도 오후 7시30분, 문을 연 병원이 거의 없다. 점심시간 이용은 한국인 상사의 눈치가 보여 말도 꺼내지 못한다. 도와는 “병원비가 얼마나 비싼지 모르겠고 병원에 갔다가 불법 체류자 신분이 들통날까봐 딸에게 참으라고만 한다”고 안타까워 했다.
‘불법 체류자 2세들’이 높은 병원 문턱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
지난해 5월부터 시행된 공공보건의료법령에 따라 국내 이주노동자는 불법 체류자 여부와 관계없이 적십자병원 등 전국 40개 지정병원에서 1인당 최고 5백만원 한도 내에서 무료진료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불법 체류자 본인만 혜택을 받을 수 있을 뿐 그 배우자와 2세는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불법 체류자 2세들은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는 것이다.
불체자 본인의 의료지원을 하는 이 제도 역시 불체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제도 시행 8개월 사이 얼마나 많은 불체자들이 혜택을 보았는지 통계도 없다.
많은 불체자들은 기자의 질문에 “그런 제도가 있느냐.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체자들은 그보다 스스로 의료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라는 단체를 결성, 매월 6,000원씩 받아 기금을 조성하고, 이 돈으로 의료지원을 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공동부조인 셈이다. 전체 회원 1만7천명의 90%가 불체자라고 협회 관계자는 전했다.
공공보건의료법의 혜택을 볼 수 없는 불체자 2세는 결국 부모가 가입해있는 이 협회를 통해 의료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내 거주 불법 체류자 규모가 20만명(법무부 2004년 통계)임을 감안하면 협회를 이용하는 불체자는 10%에도 못미치는 실정이다.
게다가 실제 병·의원을 이용할 때 이주노동자가 의료비를 먼저 계산한 뒤 건강협회를 통해 치료비의 일정 부분을 30~60일 이후에 정산하는 방식이어서 응급상황을 제외하고는 선지급할 목돈이 필요하다.
그나마 한국정부의 불법 체류 노동자 단속이 강화되면서 회원수와 회비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이주노동자건강협회 김미선 사무처장은 “부모의 체류자격 때문에 자녀의 건강권이 박탈당해서는 안된다”면서 “자녀에게 임시적으로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줘 의료권을 보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를 하는 이운창 가정의학과의원 원장은 “무료진료소는 임시방편일 뿐, 병원 문턱을 낮춰 일상적인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철·임지선기자 cho197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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