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매일노동뉴스 조현미 기자 08-08-27

지난 4일 노동부는 올해 상반기 산업재해 통계를 발표했다. 재해자수는 모두 4만6천350명.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무려 2천531명이 증가했다. 사고성 사망자는 716명이었다. 이 가운데 사고성 사망자가 가장 많은 업종은 건설업이었다. 올 상반기에만 295명(전체의 41.2%)의 건설노동자가 일하다가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업무상질병으로 사망한 37명을 포함하면 332명이 숨졌다.

10년 간 평균 660명 산재로 숨져

건설업에서 발생한 상반기 사망자수(332명)는 전년 대비 10.3%나 증가한 것이다. 광업에서 4.5% 감소, 제조업 0.3% 증가, 운수창고통신업 7.4% 증가와 비교해 매우 높은 수치다. 노동부는 “연초에 건설경기가 전년 같은 시기보다 활발했기 때문에 산업재해가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장에 투입된 인원이 많아졌으니 산재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단순히 투입인원이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면서 비숙련노동자가 늘어난 데다 건설현장에 대한 안전관리감독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난 98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약 660여명의 건설노동자들이 일하다가 산재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외국사례와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치다.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상반기 건설노동자수는 315만명으로 이 가운데 332명이 산재로 사망했다. 10년 전 독일의 건설노동자수는 약 310만명이었다. 당시 독일에서 1년 동안 산재로 사망한 건설노동자는 401명이었다. 한국이 독일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계에 안 잡히는 산업재해자

정부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산재노동자수도 상당수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부 산재통계가 산재요양승인 통계를 기초로 산출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집계하지 못하는 산재가 적지 않다는 의미다. 건설업의 경우 특히 그렇다.

지난 4월19일 충남 아산시에 있는 코아루 에듀파크 현장에서 미장작업을 하던 전아무개(54)씨는 오전 9시께 미장작업을 하다 쓰러져 숨졌다. 사인은 ‘관상동맥경화에 의한 허혈성 심장질환’.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지속적인 과로나 스트레스가 유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사고 발생 5개월이 넘도록 산재처리를 받지 못하고 있다. 원청인 STX건설에서 유족보상·장의비 청구서 날인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에선 재해를 당하고도 산재가 아닌 공상으로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9월 실시한 ‘소규모 건설현장 산재보험 적용 타당성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노동자 가운데 19.2%만이 ‘산재보험으로 처리했다’고 답했다. 산재사고 가운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전체의 5분의 1도 안 된다는 뜻이다. ‘공상으로 처리했다’는 응답은 54.6%였다. 그것도 원청이 아닌 전문건설업체(하청)와 시공참여자(십장)가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응답도 17.2%에 달했다.

겉으로는 무재해, 안으로는 산재은폐

원청이 산재보험 처리를 꺼리는 이유는 입찰자격 심사 때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서다. 재해율이 낮은 업체는 관급공사 입찰시 신인도 평가에 따른 가산점 부여 등의 혜택을 받는다. 재해율 등급에 따라 가산점을 받는 구조다. 이처럼 정부는 재해율을 중요한 기업평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재해율을 왜곡하는 사업주의 ‘산재 미신고’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있다.

정부 통계에 잡히지 않는 건설업 산업재해는 또 있다. 바로 덤프·굴삭기 등 건설기계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산재보험 적용을 전혀 받지 못한다. 건설노조는 건설기계 사용자가 당한 산재의 경우 대부분 건설현장 안에서 발생하는 만큼 다른 건설노동자들처럼 산재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가 파업에 들어가면서 제기한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이기도 했다. 최근 이 문제를 놓고 노동부와 사용자·노조가 논의에 들어간 상태다. 두 차례 회의가 진행됐지만 노사 의견차는 여전히 팽팽하다. 노동부는 △임의가입 허용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적용 △원수급인을 보험가입자로 적용 △건설기계 산재보험요율을 건설업과 동일 적용 등 네 가지 안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측은 첫 번째 안을, 노조는 세 번째 안을 요구하고 있다.

현행법이라도 잘 지켜야

노동계는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앞으로 산재로 인한 희생자가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적정단가와 적정인원·적정공기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현행법이라도 제대로 지키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25조)에 따르면 공사금액 120억원 이상 건설현장은 노동자와 사용자 동수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이 조항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건설현장은 거의 없다.

박종국 건설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건설현장을 관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자유로운 현장출입을 허용하는 등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의 권한을 강화해 노동자들이 직접 현장을 감시해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