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가 세계 최대 석유회사인 로얄더치 쉘과 BP, 엑손모빌, 토탈과 이라크 내 대규모 유전의 보수와 기술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계약을 맺었다. 이 기업들은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 내 석유를 국유화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다국적 석유 기업들을 쫒아낸 지 40여년 만에 다시 이라크의 석유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이라크 석유부 장관 샤흐리스타니는 이번 계약이 “서비스 제공”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과정과 이번 계약의 성사 과정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를 얼마나 탐냈는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은 이라크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인 석유가 외국자본에 넘어가는 것을 우려해왔던 많은 이라크 인들에게도 큰 충격이 되고 있다. 이라크는 중동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석유를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전쟁과 유엔 경제제재로 유전개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석유 매장량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이라크의 석유는 그 동안의 경제제재와 전쟁으로 무너진 사회기반 시설과 사회체계를 복구하기 위한 자금을 얻을 수 있는 확실한 자원이다. 그런데 만약 외국 자본이 이라크의 석유를 관리하게 되면 이라크 정부가 석유생산으로 얻을 수 있는 수입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로얄더치 쉘과 BP, 엑손모빌, 토탈은 20세기 초에 이라크 석유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기업들이다. 이들은 1912년에 이라크석유회사(Iraq Petroleum Company)를 세우고 1928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사업을 시작했다. 각 회사들이 23.75%의 주식을 소유했고 나머지 5%는 미국의 한 사업가의 소유였다.

이라크석유회사는 1931년에 이라크 정부와 모술 지역의 석유생산에 대한 완전한 통제권을 부여받는 계약을 맺는 등 이라크 석유 생산량의 3/4를 장악했다. 그러다가 1972년에 사담 후세인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면서 이라크에서 쫓겨났다. 그 후로 지금까지 36년 동안 이들은 미국과 영국이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 정부를 압박하고 이라크를 침공하는 과정을 통해서 이라크에 돌아오기 위한 노력을 벌였다.

2003년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점령한 이후, 이들 거대 기업들은 불안정한 이라크의 정치 상황과 안전을 이유로 이라크 사업 재개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때’를 기다려왔다. 현재의 이라크 상황이 이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에도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이라크에 들어오게 된 것은 그들이 원하던 수준의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라크 정부와 계약한 내용에 따르면 4개의 기업들은 현재 이라크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250만 배럴을 300만 배럴로 증가시키는 것을 조건으로 5억 달러의 현금이나 그 가치에 상응하는 석유를 받게 된다. 석유기업들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보상으로 현금과 석유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얕은 눈속임에 불과하다. 기업들은 당연히 석유를 선택할 것이다. 드디어 그들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이라크 석유에 직접 손을 댈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석유회사들이 이 기회를 계기로 이라크 석유에 더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손을 뻗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들은 유전을 정비한다는 구실로 이라크의 석유 생산을 관리하려고 할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라크의 석유가 대규모 석유회사들에게 넘어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점령 이후에 이라크 사람들은 이라크 석유산업엔 외국자본이 개입하는 것을 크게 경계해 왔지만 이라크 석유부 장관 샤흐리스타니는 이라크 석유의 생산량을 최대로 늘리고 이라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간과 조건에 따라서 외국자본의 투자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샤흐리스타니는 이라크 정부가 이번 계약의 대상이 된 유전과 동일한 유전에 대해서 곧 장기개발계획에 대한 입찰을 하게 될 것이며, 이번 달 초에 첫 번째 개발허가권 입찰을 공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 석유 기업의 투자를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샤흐리스타니의 의지는 이번 계약이 이루어진 과정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라크 정부와 4개 석유회사들의 계약이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사되었다는 것은 이번 협정이 졸속으로 터무니없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입찰은 한 사업을 어떤 회사에 맡길 때 반드시 거치는 과정이다. 입찰 과정이 없인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며, 특히 이렇게 한 국가의 중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시사지 타임즈에 따르면 이라크 석유부는 이미 러시아와 중국, 인도 등 다른 나라 출신의 46개 회사와 양해각서를 맺었으나 그 어느 회사도 이번 계약의 입찰에 참여하지 못했다.

미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이라크 석유 계약을 따내는 문제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적 영역의 문제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석유기업 쉐브론의 전 간부였던 라이스가 이런 식의 계약이 어떤 의미인지를 모른다면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꼴이다. 여전히 이라크 석유부에 미국 출신의 고문을 두고 있음에도 미국 정부가 이렇게 큰 계약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작년에 미국 정부는 이라크 중앙정부에 이라크 내 석유 생산을 통제하는 법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계속적인 요구와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이라크 국회는 외국자본이 석유를 차지할 것에 대한 우려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석유생산에 따른 이익을 분배하는 문제를 두고 의견 차이를 겪으면서 석유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석유법의 통과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에서 이라크 정부와 거대 석유기업들은 지방정부와 의회를 따돌리고 미리 선수를 치고 나온 것과 다름없다. 특히 석유부장관 샤흐리스타니는 쿠르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허락 없이 다른 나라 기업들과 석유개발 허가권 계약을 맺은 것에 크게 비난하며 쿠르드 지방 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

작년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라크국영석유회사는 쿠르드 정부와 계약을 맺은 회사와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 석유기업들이 쿠르드 정부와 계약을 맺은 후에 이라크 중앙정부와 거래해오던 한 한국 석유기업에 석유공급을 일시 중단했던 일도 있었다. 샤흐리스타니는 석유법 통과가 불확실하고 지방정부와 의견을 조율해 석유법이 통과되어 중앙정부의 석유통제권이 제한되는 상황이 오기 전에 거대 석유기업들과 계약을 맺어 석유통제권을 선점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인 것이다.

거대 석유 기업들과 샤흐리스타니는 자신들의 발 빠른 계획이 성공적이었다고 축배를 들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탱크와 미사일을 앞세운 미국의 무력 침공이 그러했듯이 이들도 이라크 민중의 거센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글 _ 수진 (경계를넘어 http://www.ifis.or.kr )
::참고자료
Big oil cashes in on Iraq slaughter, World Socialist Web Site(www.wsws.org), 2008. 6. 20.
Big Oil Returns to Iraq, Zmag(www.zmag.org), 2008.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