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질병 아니라도 숙소에서 사망했다면 회사 책임”
서울행정법원 “노동자 보호의무 소홀”…업무상재해 인정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업무상질병이 아니라도 회사 숙소에서 증상이 악화돼 노동자가 사망했다면 회사측에 책임이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사업주가 노동자 보건관리 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게 판결 요지다. 법원은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 기타질병이 아니더라도 근로계약에 수반되는 부수적 의무로서 사업주는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김용찬 부장판사)는 17일 ㄱ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고 17일 밝혔다. 평소 심비대·심장관상동맥 등 질환을 겪고 있던 ㄱ씨는 2006년 5월 춘천시에 소재한 댐 설치공사 현장에 철근조립공으로 채용됐다.
사고당일 출근해 4시간 정도 작업을 수행한 ㄱ씨는 갑자기 온몸에 오한이 느껴지고 식은땀이 나는 증상을 느꼈다. ㄱ씨는 더 이상 작업이 힘들다고 판단, 작업반장의 허락을 받고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당시 ㄱ씨의 동료들이 몇 차례 식사를 권했지만 제대로 말을 못하고 손만 내젓자, 동료들은 “ㄱ씨가 몸이 아파 하루 더 쉬어야 할 것 같다”고 작업반장에게 보고했다. ㄱ씨는 다음날 저녁 혼수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며칠 뒤 뇌출혈로 숨졌다.
ㄱ씨의 유족들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공단이 “ㄱ씨가 이틀 간 휴식을 취한 뒤 불과 몇 시간 작업한 것으로 미뤄볼 때 급격한 작업환경 변화나 과로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거부하자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ㄱ씨는 30년 간 건설현장에서 근무한 숙련된 철근조립공이지만 공사현장에 채용돼 불과 4시간 정도밖에 근무하지 않았기 때문에 업무상 과로나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인적·물적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할 보호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며 “보호의무를 위반해 노동자가 재해를 입은 경우라면 업무와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