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성은 안전하십니까”
늘어나는 여성노동자 산업재해…임신·출산 치명적 화학물질 무방비 노출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최근 민주노총이 ‘서서 일하는 서비스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을 벌이면서 여성노동자 산업재해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제조업과 건설업 남성노동자 산업재해가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여성노동자의 산재는 지금까지 사회적 조명을 받지 못했다. 여성노동자의 안전보건은 모성보호와도 직결되는 만큼 별도의 정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6일 노동부 산재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여성노동자는 전체 재해자의 10명 중 2명 수준이다. 지난 6월까지 8천188명의 여성노동자가 산업재해를 당했고, 이 가운데 65명이 사망했다. 여성노동자 산업재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0명이나 늘었다.

지난해 6월 현재 전체 재해자 가운데 17.1%가 여성이었지만 올해는 17.7%로 0.6%포인트 늘었다. 남성노동자의 재해는 약간 감소한 반면 여성노동자는 늘어난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여성노동자 재해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02년 전체 재해자 가운데 14%(1만1천457명)가 여성으로, 6년 사이 3% 가량이 증가하고 대신 남성 재해자수가 그만큼 줄었다.

노동계는 여성노동자의 실제 산업재해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고 말한다. 산재통계가 남성노동자를 중심으로 집계되고 있어 수많은 여성노동자의 재해가 공식적으로 집계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취약한 일자리, 더 취약한 건강권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3월 현재 우리나라 여성노동자 3명 중 2명은 비정규직이다. 남성의 경우는 2명 중 1명꼴이다. 정규직 508만명(55.0%), 비정규직 416만명(45.0%)으로 정규직이 100만명 정도 더 많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는 정규직 233만명(34.5%), 비정규직 416만명(65.5%)으로 비정규직이 더 많다.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여성의 고용상황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기간제 임시근로’(남 18.9%, 여 24.4%), ‘시간제 근로’(남 4.2%, 여 13.5%), ‘특수고용’(남 2.2%, 여 5.9%), ‘파견근로’(남 1.0%, 여 1.2%) 등의 직종에서 여성의 비율이 남성보다 훨씬 높다.

취약한 일자리는 취약한 모성보호와 직결된다. 지난 3월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추락하는 여성노동자 건강권,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손미아 강원의대 교수(예방의학)는 “비정규 여성노동자의 증가는 자녀들의 건강악화를 의미한다”며 “대학을 졸업한 어머니에 비해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머니는 저체중아를 출산할 확률이 1.61배,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어머니는 2.03배 높다”고 말했다.

여성노동자 생식독성 화학물질 노출 ‘무방비’

여성노동자는 임신과 출산을 경험한다는 측면에서 남성노동자와는 또다른 산업안전보건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상당수 여성노동자들이 임신과 출산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화학물질에 노출돼 있지만 위험성은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홍윤철 서울대 의대(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여성노동자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물질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홍 교수는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여성 노동자 489명(61개사)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12.2%만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안전교육을 받은 노동자(43.2%)는 절반도 미치지 못했다. 여성노동자 상당수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화학물질이 임신과 출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식독성임을 알고 있는 노동자는 36.6%에 불과했고, 이마저도 TV나 대중매체를 통해 알았다는 응답이 26.8%를 차지했다. 사업장 교육을 통해 알게됐다는 응답자는 7.3%에 불과했다.

홍 교수는 “작업장에서 생식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노동자가 19.5%였는데 이 중 66.7%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임신시작부터 8주까지는 배아형성기로 화학물질에 의한 영향이 크기 때문에 작업장에서 임산부를 보호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학계에서 생식독성이 있을 것으로 분류되는 82종의 화학물질 중 벤젠·에탄올 등 32종의 화학물여성에게 생식독성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는 여성 생식독성 물질에 대한 분류조차 없는 실정이다. 여성노동자 모성보호를 위해서는 생식독성 화학물질 연구부터 시급한 셈이다.

홍 교수는 “여성 노동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생식독성 물질에 대한 제도적 관리와 특수건강진단에 산부인과 검사를 포함시키고 임신을 원하는 여성노동자에게 건강관리수첩제도를 실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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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산업재해율이 낮은 까닭

‘고용 불안’으로 산재신청 꺼려

여성의 산재발생률은 남성에 비해 매우 낮다. 20년 넘게 10%대를 유지하고 있다. 여성의 취업률이 늘고 있음에도 재해율이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남성 중심의 산업재해 통계가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정진주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재해통계가 성별구분이 없거나 여성노동자들이 주로 진출해있는 서비스업을 ‘기타’항목에 넣어 성별 산업재해 실태파악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 여성노동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직업병이 공식적인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도 원인으로 지적된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실시한 서비스여성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5년 이상 근무할 경우 하지정맥류 발병위험이 12배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속연수와 발병위험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업무관련성이 높다는 것. 지금까지 하지정맥류로 업무상질병 판정을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이와 함께 여성노동자의 65% 이상이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고용불안 문제도 배제할 수 없다.

정채경희 산업의학전문의는 “고용불안과 저임금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까봐 산재신청하기도 어렵고 신청한다 해도 직업병으로 판정될 가능성도 낮다”며 “여성 스스로에게 감내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