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폐환자 건강보호 위한 요양체계 갖춰야”
개정 추진 중인 진폐법, 진폐환자 보호에 턱없이 부족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폐장에 축적되는 먼지 때문에 발생하는 진폐는 지난 64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시행에 따른 건강검진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직업병으로 등장했다. 정부는 84년 ‘진폐의 예방과 진폐근로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진폐법)을 제정해 진폐환자들에 대한 관리와 보상을 실시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노동부는 진폐법의 전면적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진폐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지급하는 일시지원금을 연금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논의되고 있는 월 연금액은 40여만원에 불과해 진폐환자들의 생계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노동건강연대와 천주교노동사목은 지난 24일 ‘진폐요양제도, 의료지원에서 사회적 요양으로-재가 진폐환자들의 생활건강실태 발표와 함께’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재가 진폐환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과 복지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해법이 모색돼야 한다”고 밝혔다.

분진작업자 150만명, 진폐증 진단 3만명

우리나라에서 직업병으로 인한 진폐환자는 얼마나 될까. 백 교수에 따르면 분진에 노출된 노동자는 광업 30만명·제조업 20만명·건설업 100만명 등 대략 150만명으로 추정된다. 매년 특수건강검진을 받는 노동자 70만명 중 10만명이 분진에 대한 검사를 받고 있다.

실제로 64년 산재보험법 실시 이후 지금까지 진폐정밀진단을 받은 노동자는 6만명에 달한다. 지난 2000년까지 약 4만5천여명이 진폐정밀진단을 받았으며 이 중 3만여명이 진폐증으로 판정됐다. 진폐증 확정판정을 받은 노동자 중 1만5천여명이 사망했고 현재 1만7천542명이 생존해 있다. 진폐정밀진단을 받지 못한 노동자 중 사망자도 1만5천여명이고 생존자는 1만5천명, 진폐의증은 4천여명으로 추정된다.

현행 진폐법은 진폐판정을 받고 합병증(9종)을 가지고 있느냐, 진폐 판정을 받았느냐, 진폐의증 소견을 보였느냐에 따라 치료와 보상에 상당한 격차를 두고 있다.

그러나 백 교수가 90년 1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진폐정밀진단을 받은 1만5천145명을 조사한 결과 일반인구의 표준화사망비는 93수준이었으나 합병증이 있어 요양대상이 되는 진폐환자의 표준화사망비는 221, 요양대상이 되지 않는 진폐환자는 102로 나타났다. 진폐의증 환자의 사망비는 123에 달했다.

의료적·사회적 요양서비스 제공해야

백 교수는 “현행 진폐관리체계에서 진폐의증과 진폐증 환자 간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으며, 대다수의 광산분진작업자들이 합병증 발병을 원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폐증 환자의 최종 사인은 대개 만성폐색성폐질환으로, 광산분진으로부터 멀어졌다 해도 질병이 계속 악화돼 결국 사망에 이른다”며 “별도의 요양·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진폐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아있는 동안 폐기능 감소의 속도를 줄일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의료적 요양과 함께 사회적 요양을 제공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백 교수는 “광물분진 노출 작업자들에게 나타나는 속발성 기관지염 등의 경우 요양대상에 포함되지 않아 경제적 보상을 받기 위해 기능장애 감소를 방치하는 등 도리어 합병증을 유발하고 있다”며 “불필요한 의료적 요양을 막기 위해서는 진폐요양제도를 기존 의료지원에서 사회적 요양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가 진폐환자 월평균 소득 59만원

이날 토론회에서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는 “정부가 지난 2001년 9월 재가 진폐환자의 생계비 지원을 포함하는 ‘진폐환자보호종합대책’을 마련한 바 있지만 이행되지 않아 재가 진폐환자들이 사회적 불평등과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강원 남부 재가 진폐환자 1천2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 가족구성원수는 2.13으로 나타났다”며 “이들의 전체 월 평균수입은 58만6천원으로, 지난해 2인 가족 최저생계비 73만4천원보다 적은 금액”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가 진폐환자 가운데 2명 중 1명이 만성폐쇄성폐질환 등을 앓고 있으나 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 40%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만성폐쇄성폐질환이나 심장질환은 지속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심폐기능 증상이 더욱 악화돼 매우 위험한데도 10명 중 9명의 환자들은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월 40만원, 연금 산정기준이 뭐냐”

성희직 한국진폐재해자협회 후원회장은 토론자로 참석해 진폐법 개정을 추진 중인 정부를 질타했다. 성 회장은 “정부가 산정한 월 40만원 수준의 기초연금은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상향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협회에 따르면 정부가 월 73만원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하더라도 5년이 지나면 현행 진폐법에 따라 지급되는 예산규모는 오히려 1천억원 정도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협회는 △진폐환자에 대한 기초연금을 월 73만원으로 상향조정 △진폐판정에 대한 공정성 확보 △진폐환자의 건강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마련 등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