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절감 때문에 안전교육·보호구 착용이 ‘전부’
사용자 “정부 지원없이 중소기업 재해예방 불가능” 하소연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연간 9만여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고통을 받고 있다. 산업재해자 10명 중 7명은 3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발생한다.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예방사업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산재왕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는 산업안전공단노조(위원장 김용선)와 공동으로 산업안전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소규모 사업장을 찾아 산재예방 현주소를 진단했다. 지난 25일 인천에 위치한 4개 제조업 사업장을 직접 방문해 경영진과 노조 산업안전 담당자를 만났다. 그들로부터 정부의 소규모 사업장 산재예방정책에 대한 평가와 실태를 들어봤다.
①사업주가 본 소규모 사업장 재해예방
②노동조합이 본 소규모 사업장 재해예방
주물공장이 모여 있는 인천 서부공단에 위치한 ㅌ산업. 프레스가공품을 생산하는 공장에 들어서자 쇳덩어리를 깎고 자르는 굉음이 진동을 한다. 13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기름때가 시커먼 장갑을 낀 노동자의 주름이 깊다. 공장이 설립된 지 올해로 20년째라고 말하는 대표이사 반아무개씨는 “제일 젊은 직원이 40대 중반이고 대부분이 50대 이상이며 15년 넘게 근속한 숙련자들”이라고 소개했다.
ㅌ산업에서는 2000년 이후 산업재해 발생신고가 단 1건도 없었다. 반씨는 그 이유를 “나도 똑같이 작업복 입고 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씨는 “연간 매출액이 12억원 정도이지만 영세사업장은 사망사고 1건만 발생해도 쫄딱 망한다”며 “자면서도 사고가 나는 꿈을 꾸는 바람에 제일 위험한 작업은 모두 내가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공단노조에 따르면 실제로 ㅌ산업처럼 20인 미만 사업장 대부분은 별다른 조직체계가 없어 사장이든 노동자든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위험하다. 다만 대표이사가 공장 밖에서 영업업무에 치중하느냐, 공장 안에서 생산업무에 치중하느냐에 따라 안전관리수준이 달라진다. 사장이 주로 공장 내에서 일할 경우 위험요소에 대한 경각심이 더 높다. 자신도 산업재해의 희생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험노출, 사업주나 노동자나 매한가지
ㅌ산업에서 안전보건관리로 지출되는 비용은 연간 1천700여만원으로 연간 매출의 0.8%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산재보험료가 1천500만원이고 나머지는 작업환경측정이나 보건진단(특수건강검진 포함) 비용이다. 안전점검 비용을 아끼기 위해 반씨는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직접 취득하기도 했다.
공장에서 안전교육은 산업안전공단에 제작·보급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반씨가 직접 실시한다. 2004년 공단으로부터 클린사업(작업환경개선 비용을 지급하는 사업) 지원을 받아 분진발생을 줄이고, 안전장치를 설치했지만 프레스작업은 잠시 한눈만 팔아도 신체 일부분이 기계에 끼일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안전교육을 하고 있다. 그나마 직원 대부분이 15년 넘게 일한 숙련자여서 위험작업이 신중하게 이뤄지는 편이다. 반씨는 “작업 중에 나와 눈이 마주친 직원들은 엄하게 질책한다”고 말했다. 작업 도중 기계에서 눈을 뗀 것만으로도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ㅌ산업의 가장 큰 취약점은 노동자의 건강관리다. 고혈압·고지혈증 등 뇌심혈관계질환의 경고등이 켜지는 40대 이상 중·고령자들이 많아 보건관리가 절실한 형편이다. 2년 전부터 국고보조를 받아 보건진단 대행기관에 위탁하고 있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ㅌ산업은 최근 3년 간 재해가 발생하지 않아 노동당국에서 안전감독을 나오지 않는다. 노동부의 산업안전 감독대상 사업장은 3년 동안의 재해발생건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씨는 정부의 재해예방 정책에 별다른 이의제기가 없다. 다만 행정처분이 부담스러울 따름이다.
“요즘처럼 고용이 부진한 때 제조업 경영하는 사람은 애국자 아닙니까. 올 들어 철강값이 몇 배나 올라 가뜩이나 어려운데 정부가 사업주만 쥐어짜면 안 됩니다. 산재보험료를 내지 못해 문 닫는 사업장도 있어요. 산재예방 잘해서 사고 안 나면 낸 보험료 50%는 환급해줬으면 좋겠어요. 하다못해 ‘안전제일’ 플래카드라도 지급해주던가….”
“생산할 시간에 안전교육, 인건비 아깝다”
프레스가공품을 제조하는 ㅌ산업을 나와 이번에는 프레스를 직접 제조하는 ㅎ공장을 찾았다. 직원은 44명이지만 사내하청노동자가 40명 정도 고용돼 있어 제법 규모가 있는 사업장이다. 연간 매출은 320억원 정도다.
ㅎ공장은 2004년 이후 산업재해가 3건 발생했는데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기계에 손가락이 끼여 발생한 협착사고다.
그러나 프레스 제조과정은 14~16미터 땅을 파 기계를 안착한 채 작업하기 때문에 추락재해 위험이 크다. ㅎ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안전모를 쓰고 있었지만 정작 추락을 막아줄 안전대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ㅎ공장 생산이사 이아무개씨는 “낙하나 크레인 사이에 끼이는 등 사고위험이 있는 것은 알지만 원활한 작업을 위해 안전대를 설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안전모는 꼭 착용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무더위에 안전모 쓰는 것이 고역’이라고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경량 안전모를 수소문 해봤지만 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안전모가 추락재해를 막지는 못한다. 김용선 위원장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대개 목이 부러져 사망하는데 안전모는 머리만 보호해줄 뿐”이라며 “개인보호구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고발생에 대비한 최소한의 보호장비”라고 지적했다.
ㅎ공장의 안전교육은 ㅌ산업과 마찬가지로 산업안전공단에서 제공된 자료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매번 정기조회 시간마다 ‘안전점검’을 강조하고 주 2회 실시하는 팀장회의에서 별도의 안전교육을 진행한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온 7명의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지만 이들의 안전교육도 정기조회 시간에 똑같이 진행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말로 진행되는 안전교육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말에 서툴러요. 그래서 동영상 교육을 실시하려고 하는데 아직 시간을 못 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아요. 베트남 노동자들은 재고용했고, 중국노동자는 동포라서….”
말끝을 흐리던 이씨는 “재해예방을 위해 안전교육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짬이 안 날 때가 많다”며 “생산에 투입될 인력을 빼는 것인 만큼 안전교육 시간에 대한 인건비를 정부가 보상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건비를 보상해주면 어느 사업장에서 안전교육을 마다하겠냐는 것이다.
이씨는 “대기업은 별도의 안전관리부서를 만들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며 “정부 지원과 보조가 없으면 소규모 사업장 재해예방은 그저그런 희망사항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고용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공장부지나 생산설비를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업주가 해야 할 일이다. 현재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 재해예방을 위해 사업장 감독과 보조금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50인 미만 사업장만 130만개가 넘는 상황에서 정부의 행정력이나 예산이 곳곳에 미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 현행 산업안전보건정책 하에서 재해율이 줄지 않고 있는 이유다.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