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5일에 시작되어 2월 11일, 결국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이집트 혁명은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이집트 노동자들의 투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번 호 에서는 혁명 전후 이집트 노동 운동 동향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1)

§ 혁명 전, 억압받아 온 노동운동의 자유

 

이집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쟁취한 것은 1942년이다. 1952년 나세르 혁명2) 이후 정부는 상급단체인 이집트 노총의 결성을 허가했지만, 1천 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경우에만 상급단체 가입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가했다. 이후 2011년까지 이집트에는 전국단위 노총이 단 한 개만 존재했다. 1957년에 설립된 이집트 노총 (Egyptian Trade Union Federation)은 정부와 여당(국민민주당, NDP)의 지배하에 노동운동을 억압하는 어용노조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1976년에 제정된 노동조합법은 사업장에서 최소 50명의 노동자를 조직해야 노동조합으로 인정해주었고, 이집트노총에 소속된 23개 일반노조 중 하나에 무조건 가입하도록 강제했다. 또한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이집트 노총의 승인을 받아야만 하는 등 결사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적인 자유와 인권이 제한되어 있었다. 이에 더해 2003년 새로운 노동법이 통과되면서 사용자들은 노동자를 임의로 해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략 반대 시위에서 비롯된 사회 분위기는 민주화를 요구하면서 노동자 파업 투쟁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여러 제약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2004년부터 약 3천 건의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높은 실업률, 오르지 않는 임금, 복지혜택의 삭감, 생필품 물가 인상 등은 노동자 투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섬유 노동자들로부터 시작된 투쟁은 운수, 음식서비스, 건설 부문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었고,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인 교사, 언론인, 세금징수원 등도 합류하면서 마침내 모든 부문의 노동자들이 투쟁에 동참하게 되었다. 특히 2006-07년 등에 일어난 마할라 지역의 섬유노동자 파업에 72만 명의 노동자가 참여하면서 노동자 계급 투쟁은 본격화되었다. 물론 이집트 노총 산하의 지역 노동조합 위원회는 파업을 인정하지 않았고 노총은 투쟁 지원을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개별사업장에서 그들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이렇게 노동운동이 성장하면서 노동자들은 공식적인 노동조합 구조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지배정당의 요구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는 독립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생존권 쟁취에서 시작되어 사회적, 정치적 투쟁으로 확장되었다. 이렇게 이집트 전역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집트 민중이 가진 힘을 자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뒤이은 이집트 혁명의 토대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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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4일에 열린 공공운수노동자 독립노조 설립 대회

 (사진 출처 : JANO CHARBEL 블로그 http://she2i2.blogspot.com)

 

§ 혁명 후, 이집트 판 “87년 노동자 대투쟁”

2009년 4월, 부동산 세무노동자 노조 (The Real Estate Tax Authority Employees’ Union, RETA)는 이집트 정부에 최초의 독립 노동조합으로 인정해 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이들의 뒤를 따라 독립교사협회 (The Independent Teachers’ Syndicate), 이집트 보건기술직협회 (Egyptian Health Technologists’ Syndicate), 연금수급자 연맹 (Pensioners’ Federation) 등이 뒤따라 독립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리고 2011년 1월 30일, 혁명에서 비롯된 자유의 흐름을 타고 기존의 4개 독립노조가 연합한 조직인 이집트 독립노총 (The Egyptian Federation of Independent Trade Unions EFITU)이 설립되었다. 그 후 3월 24일, 역시 독립노조인 공공운수노동자 독립노조 (the Independent Union of Public Transport Authority Workers, PTA)가 설립되었으며, 현재 이집트 독립노총은 약 25만 명, 12개의 독립노조로 구성된 전국단위 노총으로 급성장 중이다.

그러나 이집트 노동운동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순조롭게 급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혁명 이후에도 노동 운동을 억압하려는 시도들은 여전하다. 

3월 13일, 이집트 노동부는 노동자들이 노동부 또는 노동부 지방사무소에 서류를 제출하기만 하면 독립노조를 만들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이 법은 어업, 농업, 청소노동자 등 기존에 노조가 없던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데 자극이 되었다. 4월 14일, 이집트 최초의 농업인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4월 17일에는 어업인 노동조합도 결성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결성 과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순조롭게 노동조합 결성 서류가 받아들여지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독립 노조 설립에 관한 새로운 정책을 고지 받은 바 없다며 서류 접수를 거부당하고 있다. 또한 이집트 정부는 지난 4월 12일에 발효된 법을 통해 시위와 파업을 불법화하고, 시위참가자들을 구속하거나 무거운 벌금을 매기고 있다. 새로 발효된 법은 공공기관의 일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는 등의 농성이나 여타 행동에 참여, 장려한 사람을 수감하거나 5만 이집트 파운드 (약 910만 원)의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했다. 만약 시위도중 폭력이 발생하거나 공공 또는 사유 재산에 해를 가하면 ‘생산 수단 파괴’ 또는 ‘국가의 통합과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저해했다는 명목으로 최소 1년의 징역이나 벌금 50만 이집트 파운드로 처벌 수위가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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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일,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집회

(사진 출처 : JANO CHARBEL 블로그 http://she2i2.blogspot.com)

 

이집트 노동자들은 이러한 노동운동 억압에 맞서 여전히 투쟁하고 있으며, 지난 54년간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 노동운동을 억압해온 이집트 노총을 해체하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3) 이집트 노동운동은 여전히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며,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 등을 통해 정치세력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지난 5월 1일, 거의 60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와 상관없는 독립적인 노동절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30년 만에 처음으로 무바라크 대통령의 후원 없이 치러졌다. 노동조합, 정당, 여성 그룹, 인권 운동 조직, 대중 위원회 등이 이날의 행사를 기회했고, 타흐리르 광장에서 진행된 행사에는 수천 명의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참가하여 독립노총의 결성을 축하하고 이집트 혁명에서 죽어간 사람들을 추모했다.

한국의 87년 6월 항쟁을 그린 최규석의 만화 100°c 에는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라는 구절이 나온다. 60년의 억압을 지나 마침내 끓어 넘치기 시작한 이집트 민중들의 투쟁이, 부디 급속히 식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때까지 그 열기가 지속되기를 바란다.


1) 이집트 및 튀니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혁명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을 원한다면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에서 발간한 “북아프리카에 부는 변화의 바람, 노조 민주화와 젊은 비공식 노동자 운동” (http://www.awm.or.kr/bbs/view.php?board=pssp_awm_repo&id=45), 한편 이집트혁명 이후 계속되는 노동운동에 대한 소식은 Jano Charbel의 블로그 (http://she2i2.blogspot.com) 를 참고하면 된다.

2) 1952년 7월 23일 나기브와 나세르를 지도자로 한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통해 이집트의 친영국 왕조인 메메트 알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수립한 혁명. 이후 나세르는 옛 헌법의 폐지, 농지개혁 등의 사회개혁을 실시하고, 영국군을 이집트에서 완전히 철수 시켰으며, 영국의 통제하에 있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등 이집트를 완전한 자주독립 국가로 만들었다.


3) 현재 이집트 노총의 지도부는 얼마 전 해체된 국민민주당(NDP) 인사들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