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꾹 참아라!” 병원 간호사 등 잇단 자살 왜?

[노컷뉴스 2006-10-26 10:43]

종사자 설문조사…수직적 명령구조 신체적·언어적·성적·폭력 자행…가해자 ‘의사’ 많아

최근 대형 병원에서 간호사 등 직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이는 병원내 각종 폭력과 수직적 인간관계 등 비민주적 조직문화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지난 8월까지 9개월간 전남대학교 병원에서는 간호사 2명과 소독담당 기사 1명 등 모두 4명이 자살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이어 지난달 1일에는 대구의 한 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유족과 동료들은 하나같이 병원에서 받은 비인격적 대우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실제 원인은 무엇얼까?

그런데 실제로 이들의 주장처럼 병원내에서 각종 신체적, 언어적, 그리고 성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음을 입증하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와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최근 전남대학교 병원노동자 49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본 결과 70%에 이르는 340명이 신체적, 언어적, 성적 폭력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간호사의 경우 전체 323명 가운데 81.2%가 이같은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신체적인 폭행을 당했거나 당할뻔한 노동자가 23%, 욕설을 포함한 폭언을 경험한 노동자는 53%에 이르렀다. 또, 성희롱 발언이나 신체적 접촉을 경험한 노동자도 15%를 넘어섰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은 환자나 보호자, 의사, 수간호사 등이 고르게 포함돼 있다. 특히 응답자 가운데 22%인 110명이 의사로부터 신체적, 언어적, 성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고, 5%인 26명은 수간호사 등 관리자에게 당했다고 답했다.

원진녹색병원 산업의학과 윤간우 과장은 “매일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사람한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는 것같은 일회성 폭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충격을 준다”며 “이 경우 가해자를 만날 때 항상 긴장하게 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K대학 병원 노동조합이 지난 5월에 간호사 5백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 병원의 경우 응답자의 73%가 폭언과 폭행 가해자의 1순위로 의사를 꼽아 병원내 폭력이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특히 이들 가운데 단 10%만 사건과 관련해 사과를 받았고 나머지 90%는 무조건 참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그 밖에 서울대학교 병원의 경우 날짜없는 사직서를 강제로 받은 뒤 본인의 동의 없이 퇴직처리 하는 등 각종 인권침해 사실이 밝혀져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로부터 개선 권고를 받기도 있다.

이같은 병원내 각종 폭력과 비민주적 관행이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낳고 결국 이것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들을 몰고 간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원진녹색병원 윤간우 과장은 “이번 조사결과에서 직장내 폭력에 시달린 사람들의 경우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아주 높았고, 일부분의 경우 즉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남대병원의 경우도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자살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직무와 관련된 자살의 경우 산업재해를 인정받더라도 해당기관이 작업장에 대한 시정명령이나 현장조사를 전혀 거치지 않고 있는 점이다.

따라서 병원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이 개인적인 문제로 끝날 뿐 조직문화나 작업환경 개선 같은 후속조치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이주호 정책기획실장은 “병원 노동자들이 죽고 이것이 작업환경이나 조직문화의 잘못인 것이 명백함에도 이를 감시하고 감독해야할 노동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심신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병원에서 오랫동안 반복돼 온 각종 폭력과 비민주적 관행에 대해 이제라도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CBS사회부 임진수 기자 jslim@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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