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라는 용어는 대중에게는 생소하다. 대공장 노동자나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에게, 그것도 개인 부주의로 발생하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일하다 죽는 건 남의 일이면서 동시에 ‘바보’들에게나 일어나는 일로 여겨진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지만 언론이나 대중이 관심 갖지 않는 이유다.
국제노동기구(ILO)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매일 6300명, 매년 230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죽고 있다. 이를 경제 규모로 환산해보면 전 세계 GDP의 약 4%에 달한다. 문제는 한국의 산재사망 비율은 세계 1위라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한국은 산재 왕국이다. 노동부 공식 통계상 2011년 한 해에만 2114명, 하루에 6명의 노동자가 죽었다. 10만 명당 산재사고 사망은 11.4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사망률이 가장 낮은 영국에 비해 16배, OECD 평균보다 3배 높은 수치다.
하지만 이 통계는 산재보험 급여를 받은 산재사망 수만 포함돼 있어 실제로는 더 많은 산재사망이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산재보험 급여 자료에 의한 산재사망 수에는 산재보험 급여를 신청하지 않은 산재사망(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노동자의 산재사망, 사업주에 의해 은폐된 산재사망), 직업성 암, 직업성 호흡기 질환 등 유해물질에 의한 사망 수는 포함돼 있지 않고 있다.
사람이 계속 죽고 있지만 정작 산업 현장의 작업환경은 변화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노동건강연대는 산재 추모 주간을 맞아 24일부터 26일, 3일간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에서 릴레이 강연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산재사망 사고가 줄지 않는 이유, 산재사고는 왜 비정규직에만 몰리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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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한국사회에서 산재사고는 왜 발생하는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건강 불평등’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임준 노동건강연대 집행위원장(가천의과학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한국 사회에서 산재 사고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임 집행위원장은 “한국은 노동자가 죽는 것을 크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라며 “심지어 판사가 ‘일하다 보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스웨덴 사람에게 ‘일하다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사람이 일하는데 왜 죽느냐’고 의아해했다”며 “나는 당시 그 답변이 한국의 상황과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에 산재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임 집행위원장은 “산업안전보건법에 조항은 아직도 1980년대 굴뚝산업을 기반으로 짜여 있다”며 “사업주가 하지 말아야 할 사항들을 나열했지만 조항들이 전부 옛날 얘기”라고 지적했다.
그는 “요즘은 대부분 공장에서 신물질을 쓰거나 신공정을 도입했는데 법에 관련 규정이 없다”며 “열거된 옛날식 안전보건 조치만 이수하면 기업에 면죄부를 줄 것이 아니라, 포괄적인 안전을 규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작업환경에 책임지지 않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임 집행위원장은 “현대자동차가 설계한 자동차라인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현대차가 직접 책임지지 않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외국에서는 원청은 물론 발주처까지 노동자 안전에 책임을 물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하청기업은 사실상 작업환경에 대한 권한이 없는 만큼, 위험한 작업환경을 제공한 원청이 작업 안전에 책임질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어겨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것도 문제다. 예를 들어 지난해 이마트에서 일하던 노동자 4명이 냉동고에서 질식사했을 때 이마트가 낸 벌금은 100만 원에 불과했다. 임 집행위원장은 “사업주는 정규직이 일하다 다치면 많은 돈을 들여 위험한 작업환경을 시정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투입한다”며 “하지만 외국에서는 사고가 날 경우 해당 사업주에게 엄청난 배상을 청구함으로써 사고재발을 막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안전보건법을 혁명적으로 바꾸라는 것도 아니고 국제노동기구(ILO) 규정대로만 바꾸라는 것인데, 경총이 강력하게 반대해서 그조차 잘 안 된다”며 “사업주를 보호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을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노동자 그룹에서도 소외된 여성, 통계에도 없어
사회에서 소외받는 노동자 그룹 안에서도 소외받는 계층은 존재한다. 여성노동자가 그렇다. ‘반쪽의 과학 : 여성노동자의 건강을 숨기려는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강연한 정진주 사회건강연구소 소장은 한국 사회 산재사고에서 취약 계층, 특히 여성 노동자에 관한 연구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정 소장은 “여성은 권력이나 역할에서 취약한 부분에 서게 된다”며 “그렇다 보니 여성노동자의 건강권도 전혀 이슈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이런 이유에는 여성노동자 산재 관련 연구결과가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외국 자료로 추측하는 정도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 소장은 “남성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의 경우, 일을 남성보다 어느 정도 하는지, 여성 건강위험 요인은 없는지 등의 조사가 이뤄져야 그 뒤 여성노동자의 건강권이 어떻게 지켜지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지만 한국에는 이런 연구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일례로 대형마트, 백화점 등에서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의 경우 하지 정맥류, 방광염 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하지만 이러한 게 얼마나, 어떤 식으로 발발하고 있는지 정확한 수치가 나온 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또한, 일하는 여성에게 나타나는 생리 불순, 불임, 호흡기, 피부 문제 등에 관한 조사도 부족한 현실이다.
이러한 원인을 두고 정 소장은 “돈이 있어야 취약 계층을 연구하는데, 연구비 수주는 대부분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는 연구를 할 때 가능하다”며 “여성노동자의 건강권 등 새로운 분야는 돈을 수주받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 소장은 “과학은 통계로 평균치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하는 습성이 있다”며 “거기에는 여성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정 소장은 “여성을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다시 봐야 하는 대상으로 전환하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왜 노동자의 건강권이 존중받지 못하나
‘홍삼먹고 야근하는 한국사회 –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연구원은 노동자의 건강권이 한국사회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한국사회에서는 남의 돈을 벌려면 죽는 것도 감내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아기 분유에서 벌레가 나오면 세상이 뒤집어지지만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고 하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물론 법과 제도를 강화하면 사람의 목숨을 중요시하는 모든 여건은 만들 수 있지만 한국사회는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며 “2008년 이천 코리아 냉동고에서 40명의 노동자가 죽었을 때, 회사는 벌금 2000만 원만 냈다. 이마트에서 노동자 4명이 죽었지만 벌금 100만 원밖에 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이렇게 법과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누가 산업안전보건법을 지키겠느냐”며 “이윤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고, 산재사고는 끊임없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안전 시설 미비와 유해 제품 사용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인간이란 존재는 실수할 수 있는 존재”라며 “그렇기에 그것을 대비할 수 있도록 산업 현장에는 여러 기술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발을 헛디디는 걸 예상하고 난간을 설치한다든가, 건강이 위독해질 것을 예상해 인체에 덜 해로운 재료를 쓰는 것 등이 그것이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원은 “하지만 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강제적으로라도 하기 위해선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장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가 관리자 눈치를 보는 구조가 지속하는 한 사람이 죽어나가는 구조는 계속될 것”이라며 “노동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일하는 사람의 건강 문제가 전반적인 사회적 건강의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허환주 기자,김윤나영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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