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업살인운동 시즌2

 우리는 왜 기업살인법을 내걸고 싸워왔는가

이상윤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가 심각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그리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노동자 건강권 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을 ‘살인 기업’으로 명명하고 살인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운동이 간헐적으로 진행되어 온지 길게 보면 10여년이 흘렀다.

우리는 기업들이 산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드는 현실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업주들이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제하는 것,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고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산재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어떻게 사업주가 산재예방을 위한 행동을 책임 있게 수행하도록 만들 수 있는가?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하지만, 그 중 한 가지로 중요하게 추진되어야 하는 것이 사업주에게 산재 사망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무겁게 묻는 것이라고 우리는 판단했다.

외국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산재사망을 줄이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의 고위 임원을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라고 밝혀져 있다. 산재예방을 잘 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보다, 법을 어긴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산재예방에 더욱 효과적인 것이다. 산재예방정책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산재사망예방 정책이 우선순위를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산재 예방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사업주를 포함한 고위 임원이 강력히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하거나, 기업 자체에 크나큰 사회적 패널티를 부여하여 기업의 이미지에 타격이 되도록 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이러한 체계가 무너져 있다. 기업이 산재 예방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도 전혀 문제가 없도록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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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면 경찰과 근로감독관이 동시에 조사를 수행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와 업무상 과실치사죄 적용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문제는 두 가지이다. 첫째, 법원에서 산안법 위반과 업무상 과실치사죄 둘 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만이 가해져 턱도 없이 낮은 벌칙을 부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는 둘 이상의 범죄를 범하였을 때, 앞선 범죄로 인하여 처벌을 받았을 경우 뒤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한 것이다.

둘째, 업무상 과실치사죄에 의하여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영세사업장 사업주만이 처벌받고 있다.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직접적’으로 사인을 제공한 이에게만이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대기업이나 중간 규모의 기업은 대부분 작업장 안전관리자나 중간관리자가 처벌을 받게 되고, 위계 구조가 단순한 영세사업장만이 때때로 사업주가 처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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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사망에 대한 책임을 사업주에게 물음으로써 산재예방 효과를 거두기 위해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이 아니라 형사상의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업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안법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고, 사업주에게 예방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기에, 산재 사망이라는 결과에 대한 처벌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벌칙은 형사법 위반에 따른 벌칙보다 가벼우며, 사업주들은 산안법 위반에 따른 벌칙에 대해서는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업주의 무책임한 경영으로 산재 사망이 발생하였을 경우, 이 사망에 대한 책임을 현재 존재하는 업무상 과실치사죄보다 더 엄중히 묻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와 같이 대기업 고위관리자를 처벌할 수 없는 구조는 산재예방에 전혀 효과적인 장치가 될 수 없다. 무책임한 경영으로 말미암아 노동자가 사망하였을 경우 그 사망에 대한 책임을 ‘살인’에 버금가는 형태로 고위관리자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법률 제정이 필요하다. 산안법의 벌칙을 무겁게 하는 것은 법논리상 한계가 있고, 현재의 업무상 과실치사죄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때문에 새로운 법률 제정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캐나다, 호주의 일부 주와 영국에서는 이미 이러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법을 제정한 나라들은 각국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법안 형태를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법안의 형태는 다양해도 목적은 모두 같다. 사업주의 태만 혹은 과실에 의해 발생한 노동자의 사망에 대해서는 사업주나 고위 임원을 형사적으로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법 도입 상황을 보면 법 개정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법 체계에 ‘기업의 산업안전보건 범죄’라는 특별한 범죄를 도입하는 것. 이는 특별법을 제정하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예는 호주의 일부 주에 해당된다. 두 번째 산업안전보건법의 개혁을 통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 이 역시 다양한 가능성들이 있는데 산업안전보건법에 다음과 같은 조항들을 신설하거나 개정하는 것이다. 기업 살인과 중대한 신체적 상해에 대한 벌칙 조항 신설, 사망이나 중대한 신체적 상해를 유발한 배임죄를 신설, 벌금형의 최고액을 높임. 고위관리자의 책임을 명확히 함 등. 이 역시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 개혁의 내용이다. 세 번째는 존재하고 있는 형법에 ‘기업의 살인’이라는 범죄 행위를 신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법을 가진 나라는 캐나다, 영국 등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한국에서도 태만이나 부주의로 산재사망을 일으킨 기업과 사업주를 형사적으로 강력히 처벌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얘기하면 적지 않은 법률가들은 우려를 표명한다. 그러한 법률의 목적은 현재 존재하는 다른 법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러나 기업이 그릇되게 사망이나 상해를 유발했을 때 형법과 구별되는 다른 영역의 법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서, 형법이 저평가될 수는 없다. 형법이 국가에 의해서 집행된다는 사실은 국가의 전문성과 자원이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장하는 데에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형법 제도 내에서 피고에게 적용되는 절차상의 보호가 필요하다. 이는 기업이나 기업의 고위 임원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적 처벌의 효과이다. 그것은 행위자를 고발하고, 잘못된 행동을 처벌하고, 피해자와 사회 전체에 정의가 실현되었다고 느끼도록 하고, 추가적인 범법 행위를 제지하고, 위반자를 갱생시키도록 할 수 있다. 이는 법학자들이 말하는 형법의 존재 이유이다. 이러한 존재 이유가 그대로 기업의 살인 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회 변화와 사회적 합의 수준을 반영하여 새로운 범죄를 규정하고 이러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특별법의 형태로 형사 처벌하는 법은 이미 많이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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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이유로 노동건강연대는 몇몇 법률가들과 함께 부주의나 태만에 의해 산재사망을 일으킨 사업주와 기업을 동시에 처벌하는 ‘특별법’을 만들자는 싸움을 10년 가까이 해 오고 있다. 최근 산재 사망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넓어지면서, 산재사망 기업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우리의 운동에도 탄력이 붙고 있다. 하지만 이 운동의 목표와 과정에 대해 아직도 운동사회 내에서 많은 논란이 있다. 그리고 이 운동이 승리로 마감되어지기 위해 마련되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것들이 차근차근히 준비되며 운동이 벌어져야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오해와 비판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는 이 운동을 단순히 특별법 제정 운동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둘째는 이 운동이 사업주 처벌 강화 방안만을 목표로 한다는 오해이다. 이는 그렇지 않다. 이러한 오해와 비판은 운동 초기부터 제기되었는데 이는 우리 운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으로 축소될 수 있는 운동이 아니다. 제1의 목적은 산재사망 문제 해결이다. 기업살인법 제정은 이 운동의 하나의 유효한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처음부터 이 운동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으로 협소화될 수 없음을 얘기했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는 특별법 하나를 제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재사망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은 법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업주의 행태와 의식, 노동자의 힘,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편향 등 여러 가지 모순이 중첩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결도 다방면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현재의 이데올로기 지형에서 기업살인법이 제정되기도 어렵겠지만, 설령 제정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효과를 내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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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왜 우리는 기업살인법 제정을 주요 요구로 내걸고 싸워왔는가? 이는 이러한 요구가 산재사망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해 온 바와 같이 산재사망은 기업의 살인이라고 규정할 때, 그리고 그러한 기업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그나마 산재사망에 대한 사회적 반향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기업살인법과 관련된 또 다른 편향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 준다. 또 다른 편향은 기업살인법을 보다 구체화하여 실제 법 제정안을 국회에 내자는 주장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에 힘을 빼느니 당분간은 특별법의 취지와 목적을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법조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들어갈 경우 의미 없는 법조문 논쟁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동 초기에 이러한 법의 한국적 적용 가능성을 두고 운동 사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필요 없는 에너지 소비가 있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는 운동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산재사망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특별법 제정뿐 아니라, 다른 처벌 방식의 강화, 노동부의 사업주 지도감독 강화, 노동자 참여 확대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방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덜해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뿐, 우리는 구체적으로도 노동안전보건청의 설립, 노동자 안전보건대표제의 도입 등을 주장해 왔다.

2000년대 초부터 이러한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 사회적 반향은 적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우리 운동에 관심을 보였고, 정부도 산재사망 문제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운동 때문에 노동부는 2005년 산재사망 특별대책을 세웠고, 그 이후 몇 가지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도 했다. 산재사망자 명단을 공지하는 전광판 설치, 산재 불량 사업장 명단 공표, 산안법상 사업주 처벌 최고 형량 향상 등이 우리 운동의 성과로 이루어졌다. 2005년 한 일간지에서는 우리 운동을 주요 주제로 9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운동이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 정책 부재의 현실 속에서 산재사망 문제로 운동을 만들어가기 힘들었던 객관적 조건 탓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혁신하며 운동을 만들어 가지 못한 주체의 문제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는 아직 실태를 구체적으로 충분하게 드러내는 데 부족함이 있다. 그래서 이러한 부분에 역량 투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산재사망의 구체적 양상과 이후 처리 실태가 충분히 조사되어야 한다. 한국의 산재사망은 어떠한 산업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자주 벌어지고 있는지, 산재사망이 일어났을 때 사업주는 어떠한 행태를 취하는지, 신고 이후 경찰과 정부의 조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조사보고서 작성 후 검찰 송치 과정의 문제는 없는지, 검찰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 나는지 등등에 대한 세세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다.

더불어 산재사망 문제의 심각성을 보다 입체적으로 그리고 감성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례가 많이 모아져야 한다. 산재사망의 특성상 당사자가 사망하고 없기에 사례를 수집하기 힘들고 유족을 조직하기도 매우 힘들지만, 그래도 이에 대한 노력을 통해 사례 수집과 유족 조직화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요구안에 대해 보다 구체적 내용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주 세세한 요구부터 이데올로기적 요구까지 체계적으로 요구안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고,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도 다시 검토될 필요가 있다. 법안을 만들어 제출되었을 때, 쓸 데 없는 법률 논쟁에 휘말릴 위험을 경고했지만, 필요하다면 그러한 논쟁을 일부러 촉발시키기 위해 법률을 던질 필요도 있다. 이를 위한 다양한 전술적 고려가 운동 사회 내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보면 산재사망으로 기업을 형사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이후로 적게는 10년 많게는 20여 년이 흐른 후에야 법안이 사회적 논의의 장에 올랐다. 그리고 사회적 운동이 있는 경우에 그러한 법안이 실제로 국회를 통과하였다. 한국의 경우 이제 겨우 10여년 정도 흘렀다. 그리고 노동운동의 힘도 실제 법안이 제정되었던 나라보다 작다. 그러므로 우리는 길게 보고 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다듬는 작업을 지속해야 한다.



  1) 우리는 왜 기업살인법을 내걸고 싸워왔는가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2) 기업살인법 다시 주목 받다 : 외국사례로 본 법의 필요성 / 이태경,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3)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  /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