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기업살인운동 시즌2

기업살인법 다시 주목받다

– 외국사례로 본 법의 필요성

이태경 /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1. 영국 최초 기업살인법 처벌 사례


2011년 2월 영국의 Alexander Wright라는 한 젊은 지질학자의 죽음에 대하여 영국 법원은 Cotswold Geotechnical이라는 회사에 대하여 기업과실치사의 책임을 물어 38만5천 파운드(한화 약 6억9천6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기업과실치사1)및 기업살인법; ‘기업살인법’으로 통칭하기로 한다)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사례이다.

 

노동자 사망과 사업주의 책임


사건의 줄거리는 이렇다. 2008년 9월 27세의 젊은 지질학자인 Alexander Wright는 작업중 3.8미터 아래 구덩이에서 지반침하로 질식사했다. 이 젊은 청년이 2년 반 동안 일했던 Cotswold Geotechnical(주)은 1992년 건강 및 안전에 관한 자체 문서에서 1.2미터 보다 더 깊은 구덩이의 경우 말뚝 또는 지지대가 사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규칙을 사망한 젊은 학자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굴속에서 작업을 한다면 한 사람은 지상에서 감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고 당시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사고 후에도 구조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에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적용 경영상의 실패(management failure) 책임을 물어 사업주에게 고액의 벌금형을 선고하게 되었다. 물론 이 회사는 사업주 1인지배 구조의 단순한 형태로 경영상의 책임 소재가 분명한 조그마한 기업이라 책임자가 누군지에 관해 논쟁이 되지는 않았다. 영국의 언론들도 각계의 반응을 전하면서 이 사건의 해당 회사보다 더 복잡한 경영구조로 이루어진 큰 회사의 사례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시험을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기업의 안전의무를 해태로 발생한 여러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기소는 하였지만 처벌에는 번번이 실패한 사례가 있었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2. 영국이 기업살인법을 제정하고 적용하기까지


영국 사회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심각한 부주의로 사람을 사상케 한 기업주를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 제정을 요구해왔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업의 과실에 의한 끔찍한 일련의 사건이 배경이 되었다.(아래 표) 이를 단순 과실치사로 보지 않고 ‘공공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관하여 ‘살인죄’를 적용하여 사업주 및 경영층을 처벌함으로써, 사업주 또는 이사 기타 관리자의 책임의식을 강화해야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노동조합과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이 제정되어 2008년 4월6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Lyme Bay tragedy

1933년 Lyme Bay에서 카약 사고로 10대 4명이 사망한 사건으로 책임이 있는 회사의 주인이 3년간 투옥되고, 6만 파운드의 벌금에 처해졌다.

Herald of Free Enterprise

1987년 벨기에 연안 도버 해협에서 ‘Herald of Free Enterprise’라는 페리호는 출항하고 1시간 만에 선원들의 중과실로 침몰하고 만다. 이로 인해 193명의 목숨이 차가운 바다에서 희생되었다. 항해사 등 선원은 처벌을 받았으나 기업주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못했다. 국제안전관리규약(ISM CODE) 제정의 계기가 된 사건이다.

Clapham rail disaster

세 열차가 1988년 12월 12일에 서로 충돌한 영국 최악의 철도재해로 35명이 사망했다. 철도 신호엔지니어들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음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대리책임’ 원칙하에 과실 치사 혐의에 대하여 이사회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Transco

2003년 에든버러 항소법원은 Larkhall에서 4명의 가족 사망에 대해 가스파이프라인회사인 Transco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기각한 사례. 단지 직장보건 및 안전법령 위반으로 회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Hatfield disaster

2000년 영국 Hatfield 지역에서 열차 충돌사고고 4명이 사망했다. 사고의 책임을 물어 네트워크 유지 및 보수회사인  Balfour Beatty의 경영진에게 기업과실치사에 관한 혐의로 기소가 되었으나 임원 모두가 무죄가 되고 다fms 법령 위반으로 회사는 벌금형을 받았다.

그 외 1979 년 뉴질랜드의 마운트 에레 보스 사고, 1992년 캐나다 Westray 광산 폭발, 호주의 1998년 에소 롱퍼드 가스 공장 폭발 사건 모두 기업의 의무 위반으로 발생한 ‘재앙’사례이다.

3. 자본주의 기업과 기업살인법


지난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 번의 사고로 여러 명의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사망과 중대재해에 대해 기업주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거나 일선 담당자에게만 일반 형사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를 묻고 넘어간 것은 한국과 선진 외국이 비슷하다. 앞선 영국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영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기업이 야기한 중대 사망 사고에 대하여 기업주가 기소되어 형사처벌된것은 소수에 불과하고 처벌되더라도 실제로 벌금형을 받는 수준에 머물렀다. 기업의 과실로 발생한  ‘공공재해’를 예방이라는 목표면에서는 기존 법률의 명백한 실패를 보여 주었다. 기업활동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하는 나라의 공통점이고 미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국가에서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이 일어난 원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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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는 2006년 “Corporate manslaughter: a proposed corporate killing offence for New Zealand” [2006]을 제정 논의 했고, 호주에서도 몇 개 주(빅토리아주, 뉴사우스웨일스주, 퀸스랜드주) 의회에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Act)안이 상정되어 논의된 바 있다.  캐나다 역시 기업살인에 관한 정부입법안이 제안되었었다. 이들 법안의 주요내용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 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거나 다치게 한 기업주를 범죄자로 봐서 구속처벌’하는 것이다.

각국의 이런 흐름은 전 세계 100여 개국이 참가하는 ‘4월28일, 국제 산재노동자 추모의 날’에 까지 이어져, 국제자유노련(ICFTU)은 2003년 주제를 ‘노동자의 안전과 보건에 대한 기업의 실질적 책임’으로 정하고 각국 정부와 기업에 이를 촉구했다. 2)



4. 한국 현실과 기업의 책임


  OECD 국가 중 산재사망률 1위는 바로 한국이다. 노동부 통계 2011년 산업재해 사망자는 2,114명. 매일 6명의 노동자자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노동부의 2007년~2010년 6월 10대 건설회사 현장 사망자 발생현황에 따르면 국내 시공능력평가 10대 건설업체(대한건설협회 기준)의 현장에서 141건의 산업재해가 생겨 154명이 목숨을 잃었다. 한 해 산재로 사망하는 노동자가 수천 명에 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자가 처벌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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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laborhealth.or.kr/vote/ 페이지에 들어가시면 각 기업 설명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1년 주요 사망사건의 판결 결과도 벌금형이 대부분이고 실형을 선고한 예는 거의 없고 그나마도 집행유예를 선고 하는 수준3)이었다. 산안법상 사업주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4)이 있고 법인의 대표자나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 사용인, 그 밖의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법위반 행위를 한 경우에는 행위자와 법인 또는 개인에게도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도록 양벌 규정을 두고 있다. 형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죄 규정도 있다. 그러나 사업주등 법인 대표자나 관리자 등에 대한 실제 처벌수준이 벌금형 수준에 그친다면 그 법률이 가질 수 있는 예방효과는 물론이고 법규 자체의 취지도 무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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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살인법’ 의 입법 핵심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안전·보건의 의무가 있는 기업주에게 책임을 물어야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진외국보다 높은 사망률을 자랑하고 있는 나라에서 기업의 중대한 주의의무 위반에 대한 ‘기업살인법’ 같은 강력한 제재가 절실히 요구 되는 것은 당연하며 다시 새로운 ‘기업살인법’ 제정 운동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1)  manslaughter : 고살(故殺) homicide without malice aforethought (브리태니커)

영미법에서는 사람을 죽인 범죄를 통틀어 homicide(살인죄)라고 하며 이를 murder와 manslaughter로 구분한다. murder 모살죄(謀殺罪)는 사람을 죽일 의사를 사전에 품고 살해한 경우이며 manslaughter는 이러한 고의 없이  살해가 이루어진 경우다. manslaughter는 다시 voluntary와 involuntary로 나누어지며 전자의 경우 싸우는 과정에서 욱하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우발적 살인을 말하고 후자는 행위자가 제대로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고 행동하다가 사람의 죽음을 야기한 경우라는 것이다. 즉, 우리가 말하는 과실치사의 경우 involuntary manslaughter와 같은 개념이며 다른 입법례(뉴질랜드)에서도 corporate manslaughter의 의미는  involuntary manslaughter로 제한한다. ‘살인’이라고 변역하기도 하나 우리의 법체계상 고의가 없는 ‘과실치사’에 가깝게 해석하기도 한다.


2) 2003년 노건연 기업살인법팀 논의 자료 중


3) 정해명,  간접고용?하청구조에서 사망사고에 대한 법적 처벌결과 고찰, 2011


4)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 안전조치 의무 위반 처벌규정:

67조(벌칙)사업주가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 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 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 질 수 있다.

66조의2(벌칙)사업주가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위반하여 사망 사건이 발생한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더보기 : 

  1) 우리는 왜 기업살인법을 내걸고 싸워왔는가 /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2) 기업살인법 다시 주목 받다 : 외국사례로 본 법의 필요성 / 이태경, 노동건강연대 정책국

  3) 사업주 책임 강화를 위한 기업살인법 제정의 필요성  / 유성규,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