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외침이 터져나오는 사회
[기자의 눈] ‘사회통계조사 결과’를 보고

2006-12-05 오전 10:35:45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부나 정치권 모두 “경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모든 정책에서 경제논리가 가장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경제는 갈수록 나빠지고, 게다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서민들이 입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나오는 각종 ‘숫자’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그 속에 서민들의 한숨과 절망, 분노가 짙게 배어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서민들의 “죽고 싶다”는 외침이 들리는 듯하다.

‘돈’에 따라 달라지는 삶…”아, 죽고 싶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소득수준과 자살충동 사이에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전체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충동을 느끼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나타났고, 소득이 낮을수록 자살충동을 느꼈다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사람 중 자살충동을 느낀 경우는 15.8%이고 100만 원 이상 200만 원 미만은 12.6%, 200만 원 이상 300만 원 미만은 8.6%, 300만 원 이상 400만 원 미만은 6.9%, 400만 원 이상 600만 원 미만은 5.3%, 600만 원 이상은 5.7%가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한다.

특히 월소득 200만 원 미만자로 자살충동을 느낀 사람 중 절반 이상이 ‘경제적 어려움’을 그 이유로 꼽았다. 반면 고소득자들은 경제적 어려움 외에 가정불화, 외로움·고독 등도 고르게 자살충동을 갖게 한 이유로 꼽았다.

“죽고 싶다”고 외치는 서민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도 낮았다. 월소득 100만 원 미만부터 600만 원 이상까지 100만 원 단위로 나눈 소득수준에 따라 삶에 대한 만족도를 비교한 결과,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올라갔다. 당연히 삶에 대한 불만족도는 정반대의 경향을 보였다.

물론 소득이 높을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질 개연성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득이 삶에 대한 만족의 압도적인 근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번 통계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는 ‘돈’ 말고는 삶을 기댈 수 있는 또 다른 무엇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 사회가 음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혹은 자녀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응답 결과를 봐도 음울하긴 마찬가지다. 자신을 스스로 하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번 조사결과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수직적 계층이동에 대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리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도 내일도 삶이 팍팍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널리 확산된 것은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말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서민들의 바람과 거꾸로 가는 정부와 정치권

사실 조금만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이같은 내용은 굳이 통계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일상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현 정부 들어 이미 10여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목숨을 끊었다. 집값 폭등에 좌절한 집 없는 서민들은 “더 이상 정부를 못 믿겠다”고 외치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우리의 음울한 삶을 더욱 피폐하게 만들 것으로 보고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나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갈수록 깊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고 있는데 노동유연성을 강화한답시고 비정규직 노동자 수를 더 늘릴 소지가 있는 법을 만들었고, 집값 잡아달라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핵심을 겉도는 주택정책으로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

무엇보다 압권은 한미 FTA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국민들 대다수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미국의 ‘빅스카이’란 지역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5차 한미 FTA 협상을 벌이고 있다. ‘4대 선결조건’이란 말이 암시하듯 시작부터 굴욕적으로 시작된 이 협상을 내년 초까지 타결한다는 게 정부의 목표다.

시민사회는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 사회는 더욱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고 경고음을 울려 왔다. 한미 FTA 비판 대열에는 각종 시민사회단체뿐만 아니라 현 정부에 들어가 정책을 만들기도 했던 학자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게다가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사회문제에 대한 발언을 자제하는 수많은 대학교수들까지 같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정부가 한미 FTA 홍보를 위해 언론을 통해 발표한 통계들 가운데 상당수가 조작됐다는 사실마저 드러났다.

그래도 일단 시작했기 때문에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정부는 미국의 비아냥도 감수하며 협상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한미 FTA 5차 협상 개시 전날인 지난 4일 미국의 한 상원의원이 협상장소인 미국의 빅스카이에서 한국 협상단을 앞에 두고 미국산 쇠고기를 씹으며 “정말 맛있습니다. 이 쇠고기가 한국에서도 팔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비아냥’이 아닌 다른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까?

이는 최근 뼛조각이 포함된 것이 발견돼 미국에서 수입된 쇠고기 전량을 반송 조치한 우리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압박이자,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에 대한 비아냥이다. 그럼에도 그 자리에 있었던 우리측 협상단 중 어느 누구도 “왜 약속을 어기고 뼛조각이 들어 있는 쇠고기를 우리나라에 보냈소? 우리 국민들이 광우병에 걸리란 말이오?”라고 따졌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이문동 쪽방에서 얼어죽은 노인을 추모하며

얼마 전 서울 이문동 쪽방에 기거하던 80대 독거 노인이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전기장판 사용을 자제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겨울 동안 이 노인처럼 삶을 외롭고 쓸쓸하게 마감하는 사람이 더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부터 경고음이 울리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 저변에서 이같은 경고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이같은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 대결이니 세 규합이니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거나 다음 정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 술수를 짜내고 휘두르는 데에만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우리 사회의 심연에서 울려나오는 절규가 이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일까?

4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통계조사 결과’에 숫자로 포착된 서민들의 눈물과 아우성, 분노가 앞으로는 통계숫자 뒤에만 숨어 있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들이 터져 나오면 지금처럼 알량한 공권력과 여론몰이로는 그것들을 다시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때 만약 또 다시 정치권과 정부가 그런 시도를 해서 임시방편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면 우리 사회는 소리 없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김경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