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이 산업현장의 위험한 작업을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협력업체의 근로자의 희생이 늘고 있다. 산업현장의 사망·부상자는 대부분 하청 근로자들이었다. 문제는 사고에 따른 사용주 처벌이 극히 미약하면서 기업들이 개선조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1월 삼성전자 화성공장 불산 누출사고부터 지난 5월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사고로 숨진 5명의 근로자까지 희생된 하청 근로자는 10명이 넘는다.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은 지난 4월 열린 산재사망 처벌 및 원청 책임강화법 개정 방안 토론회에서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선 산업에서 산재사망사고 만인율이 사내하청이 1.79로 원청 0.49에 비해 세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법·제도 개정에 나섰다. 노동부는 지난 5월 하청업체에 산재가 발생할 경우 원청업체 경영진에게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하는 내용의 ‘중대 화학사고 등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사고 시 처벌을 받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로 ‘사업을 총괄하는 자’ 즉 사업주나 공장장 등 경영진을 명시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 같은 개선 대책의 수준이 미진하다며 원청 사업주 처벌 수위가 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건강연대는 논평을 통해 “유해작업은 아예 도급을 주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조치가 필요”하며 “위험 작업은 원천적으로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부가 기업들로부터 의무적으로 받는 공정안전보고서(PSM)에도 문제가 제기 됐다. 이 제도는 지난해 8월 LG청주화학공장 폭발 사고에서 허점을 드러났다. 당시 11명의 사상자를 낸 이 사고의 원인은 공장에서 PSM으로 보고까지 마친 설비를 사용하지 않아 일어난 것이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보고를 해놓고 기업들이 이를 변경해 사고가 나는 경우는 우리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전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산재사망감시팀장은 “처벌을 강력하게 하면 기업들이 대비할 것”이라며 “2011년 이마트 탄현점 냉동창고 사고 고발 당시 벌금 100만원 나왔는데 이 정도로 안전관리를 하겠는가. 과태료 수준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당시 이마트 사고에서는 하청노동자 4명이 냉매가스 유출로 질식해 숨졌다. 그는 정부 주도의 무사고 운동에도 문제를 제기하면서 “기업이 정부로부터 무사고 달성 인증을 받기 위해서 작은 사고는 숨기려 든다”며 “작은 사고가 은폐되면서 잘못된 부분이 수정되지 않고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노무법인 ‘산재’ 관계자 역시 “건설업의 경우 공공기관으로부터 건설수주를 받으려면 PQ라는 점수를 높게 받아야 한다”며 “문제가 생기면 불이익이 발생하니까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나더라도 산재처리를 안 하려고 한다. 합의를 보라고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박 팀장은 “영국의 산업안전근로감독관은 활동이 왕성하다. 고용노동부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며 “산업안전을 잘 모르는 경찰이 사고 현장을 훼손하는 경우도 있다. 산업현장 사고는 조사는 노동부가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할 필요도 있다”며 정부 역할을 강조했다.
한편 심상정 의원은 지난달 25일 노동자 사망재해에 대한 사업주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과 ‘산재사망 가중처벌법’을 대표 발의했다. 심 의원실 관계자는 “무조건 처벌을 하기보다는 일단 법률 위하(겁주기) 효과가 없기 때문에 강력하게 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며 “벌금형 등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빼고 집행유예로 1번만 나오도록 강하게 법을 개정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