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지와 가치의 작은 바람 

– 은평 돌봄노동자 건강권 교육프로그램 현장보고



이서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은평에 바람이 불었다. 부동산과 신도시 개발관련 뉴스로만 접했던 은평. 그러나 뉴스에는 나올 수 없는 깨알 같은 노동의 이야기가 숨겨진 은평이었다. 


은평 돌봄노동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프로그램에는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건강검진을 받고 전문의와 상담을 하는 한편, 심리상담과 미술치료, 물리치료, 스트레칭, 명상 프로그램과 함께 교육사업도 병행되었다.

노동건강연대에서는 프로그램 전반의 기획과 운영에 전폭적으로 참여하고 전문 의료진과 강사진을 집중 투입하였으며,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교육프로그램에 관하여 생생히 보고하겠다.


교육프로그램은 두 종류, 4주 코스와 8주코스로 각각 2기로 진행하였다.

1기는 요양보호사 중심이었으며, 2기에는 보육, 간병, 장애인활동보조인이 조금씩 참여하게 되었다. 강의내용은 건강권과 더불어 산재보험 특강, 인권교육, 노동권교육, 글쓰기 강좌로 자신과 마주하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자신과 마주한다고 했지만 참으로 생소한 경험이다. 이런 참여형 교육을 접한 적도 없을 뿐더러, 동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생소한 것이다. 직업의 특성상 돌봄을 받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일해야 하고, 시설이 아닌 가정집을 돌며 환자와 1:1로 만나는 재가요양보호사들은 다른 동료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자기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은평에서 만난 돌봄노동자들은 참으로 솔직하고 발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신다.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작업은 이야기가 많아서 즐겁다. 


[몸지도 그리기]


‘삼순아, 이거 네 몸이야. 너 가슴 짝짝이잖여~ 호호호’

몸지도 그리라고 큰 도화지를 드렸더니 안 그려도 될 것 까지 그리신다. 옆 모둠을 힐끔힐끔 컨닝하면서 서로 경쟁적으로 예쁘게 그리느라 난리가 났다. 


9 은평사진 1.jpg 

자기 몸 만한 그림위에 아픈 곳을 표시하는데 표시가 안 되는 곳이 없다. 환자를 노상 일으켜 세우고 이동시키고 목욕시키느라 주요 관절과 근육에는 온통 빨간 스티커 투성이다. 환자 휠체어에 발이 찍힌 사람, 종일 서서 일하느라 발바닥이 아픈 사람도 부지기수. 머리에도 스티커가 수두룩하게 붙는다. 두통과 스트레스다. 

 

9은평사진 2.jpg


모둠별로 토론하는 순서가 되자 엄청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재가요양보호사 한분은 시간이 촉박해서 카드리더기에 급하게 달려가다가 계단에서 구르셨다. 다른 분은 환자모시고 택시 타다가 교통사고가 났다. 할머니 대신 고추밭에서 밭 매다가 다친 사연, 자기얘기에 덤으로 들은 이야기까지 풀어놓으신다.

아픈 이야기의 2부는 언제나 민간요법이다. ‘약국 가서 뭘 달래서 발라보니 좋더라’

약국을 애용하는 분들이 있고 찜질기구를 달고 사는 분들, 각종 처방이 난무한다. 사람들이 가장 눈을 빛내는 것은 어느 정형외과가 싸고 확실하게 치료해주는가 하는 부분이다. 

또 다른 화제는 성희롱이다.

 ‘내가 가는 집의 할아버지는 목욕시킬 때마다 꼭 내 앞에서 팬티를 훌렁 벗으신다’

이럴 땐 옆의 요양보호사 선배한테 마이크를 넘겨드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럴 땐 난 냅다 소리 질러. 할아버지 막 혼내고’

9년차 선배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데 그 표정이 정말 진지하다. 


[인생곡선 그래프 그리기]


보통 나이가 50대 후반을 넘는 분들은 인생곡선을 그려보라고 하면 처음엔 난감해 하지만 결국엔 굴곡진 그래프를 그려내신다. 출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인생그래프를 그려보면 그 사이 자신의 건강 곡선도 함께 보이니 서로 발표하면서 재미있어 하신다


9 은평사진 3.jpg 9 은평사진 4.jpg


중요한 것은 돌봄노동에 종사하게 되는 계기인데, 몸도 안 좋고, 마음이 안 좋고, 집안 형편이 좋지 않을 때(특히 남편 부도-IMF때)의 계기가 많았다. 힘들고 박봉이지만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보면 몇 가지 유형이 나타났다. 어떤 분들은 어려운 사람을 ‘돌본다’는 가치를 스스로에게 부여하면서 심리적인 만족을 갖는데 이 경우 종교가 있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이런 분들의 발표를 듣고 있으면 신앙심과 소명의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보다 더 많은 경우는 직업으로 돌봄노동을 선택한 것인데 이분들에게는 노동의 대가, 즉 환자, 협회 와의 관계에서 경험하는 대우, 저평가와 저임금 등에 상당히 불만이 많았다. 



[일터지도 그리기] 


업무의 종류를 구분하고 어떤 자세로 일하는지, 어디가 많이 아픈지, 아픈 이유는 무엇인지 정리해 보았다. 

돌봄 과정에서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휠체어, 택시 이동에서 힘든 일이 많았고 집안에서도 욕실에서 목욕시킬 때 무리한 자세를 많이 이야기하였다. 이런 힘든 작업에는 각자의 노하우가 제법 있었는데 환자를 어떤 자세로 부축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목욕을 어떤 방법으로 하는 것이 서로 안전한지에 대해 열띤 이야기가 오갔다. 


[엄마아빠놀이 – 요양보호사 역할극]


가운데 앉은 사람은 요양보호사이고 왼쪽은 협회장(사업주), 오른쪽은 노동조합간부 역할이다. 요양보호사의 노동조합 가입에 관해 협회장은 ‘가입하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고, 노동조합 간부는 ‘가입하자’고 설득하고 있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남을 설득하고, 상대방의 논리의 이해해보는 훈련프로그램인데, 몇몇 요양보호사는 취지와는 상관없이 ‘노동조합이 원래 더 좋으니까’라며 감정적인 선택을 해서, 심지어 협회장도 같이 노조에 가입하기로 결론이 나기도 했다. ‘웃기긴 한데, 근데 정말 그러면 좋겠다, 그렇지?’

9 은평사진6.jpg  9 은평사진 7.jpg



[강의-나는 왜 노동조합 부위원장이 되었는가]


공공운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의 서울대병원 간호사시절 경험담을 들었다. 현정희 부위원장은 강의에서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솔직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이날 강의를 듣고 전원이 그 자리에서 노동조합 가입서를 쓰게 되었다. 


9 은평사진 8.jpg


[산재보험 특강 – 2만6천원 받으려고 그 고생을]


환자를 돌보다 다쳐서 산재보험 신청을 했는데 며칠 일도 못하고 근로복지공단을 쫓아다닌 결과, 고작 2만6천원 보상받았다며 ‘그 고생을 했는데’ 라며 울분을 토로하였다. 


9 은평사진 11.jpg


[하루 종일 시달리는 문자메시지]

한 요양보호사가 살짝 보여준 문자. 지적장애인을 돌보고 있는데 그분으로 부터 매일 수십통씩 이런 문자를 받는다고 한다. ‘스트레스 받으시겠어요?’라는 질문에

‘뭐 괜찮아요, 이런 식으로 밖에 누군가한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그 아이가 딱하니까’ 답하였다. 이 직업은 착한 심성이 필요한 것 같다. 


 9 은평사진 10.jpg



[산재보험 강의]

어려운 법 이야기에 복잡한 신청절차. 강사말씀 들으랴, 메모하랴, 질문하랴 참가자들이 바빴다. ‘사실 다 필요 없고 그냥 우리한테 전화하세요’ 라는 노동건강연대 박혜영 강사의 말에 빵 터졌다. 


9 은평사진 13.jpg 



[강의-돌봄노동자들이 건강하지 못한 이유]


노동자들이 왜 건강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지, 사회적으로 건강 불평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노동건강연대 임준 집행위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어려운 이야기를 강사가 솔직하고 쉽고 강력하게 전달하여 높은 호응을 받았다. 

한 참가자는 ‘똑똑한 의사선생님들이 우리 편이니까 우리이야기 좀 잘 해 주세요’ 라고 말했는데 옆의 다른 분이 ‘우리얘기를 우리가 해야지, 직접 우리가 해야 사람들이 잘 들어주지’ 대꾸하신다. 



[1박2일 졸업여행과 수료증 수여]


남을 돌보기만 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1박2일 졸업여행을 갔다. 

진행자들이 차려준 밥상을 받아든 이들은 감격했다. 

‘누군가로부터 이렇게 돌봄을 받는 것은 처음이고 참 행복하네요’

수료증을 주는 사람도 처음이고, 받는 사람도 처음이라며 쑥스러워하고 감사해 하였다. 



수료증을 끝으로 교육프로그램은 마무리 되었고 종로 종각 앞에서 ‘돌봄노동자대회’를 함께 하였다. 

돌봄노동의 각 영역-보육교사, 가사돌보미, 간병인, 장애인활동보조인, 요양보호사-의 여성노동자들이 돌아가며 마이크 잡고 이야기 하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무리 정교하고 혁신적인 기계도 절대 할 수 없는 영역이 바로 ‘사람을 돌보는 일’이다. 우주를 왕복하고 초정밀 기계를 다룰 수는 있지만 아픈 사람의 몸을 만져주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많은 노동자들이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회가 인정을 해야 한다. 돌봄노동의 가치가 다시 평가되고 자리 잡아야 우리는 더 안전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계속 드는 생각이 있다. 언젠가 우리는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된다.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서도, 내가 나이가 들어서도. 그래서 요양보호사들이 ‘언젠가는 우리도 시설에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게 되겠지’ 하시는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