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이슈
파키스탄 카라치의 ‘알리 엔터프라이즈’ 의류 공장 화재 
박진욱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2012년 9월 11일 오후 6시 30분, 파키스탄 신드(Sindh) 주(州) 카라치 서부에 위치한 알리 엔터프라이즈(Ali Enterprises) 의류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공장 안에서는 500여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었고, 불이 나자 이들은 건물 안에 갇혔다. 파키스탄 역사상 최악의 산재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후 노동자들을 구출하기까지 36시간 이상이 걸렸다. 이후 진행된 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건물에는 화재 예방을 위한 설비도 없었고, 소화기도 비치되어 있지 않았으며, 공장의 비상구는 언제나 잠겨있었고, 비상구 앞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복도로 나가는 문은 바깥에서 잠겨있었고, 심지어 현관문도 화재 발생 후 도난을 막는다며 잠가버렸다고 한다. 탈출할 길이 없는 5층짜리 건물 안에 갇힌 노동자들은 유독한 연기로 가득 찬 건물 안에서 질식사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건물 바깥으로 뛰어 내려야 했다. 꼭대기 층에 있던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창문에 설치된 쇠창살을 부수고 건물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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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장에 발생한 화재를 진화하는 소방대(photo by AFP)
당국이 밝힌 공식적인 집계는 화재로 인해 259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110명 이상이 다쳤다는 것이지만, 사망자가 더 많을 수 있다는 조짐도 보인다. 화재 원인은 11월 2일 현재까지 정확히 밝혀내지 못했지만, 전기 합선이 일어나 원자재와 나무에 불이 붙어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고 발생 이틀 뒤인 9월 13일, 카라치 경찰은 공장의 공동 소유자 세 명을 살인혐의로 기소했다. 이 세 명은 화재 발생 직후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되었다. 파키스탄 의회는 만장일치로 이번 사건의 조사를 결정하고 공장 관계자들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실시하는 등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 과정에서 공장 소유주들이 화재가 발생하자 도난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경비를 시켜 정문을 봉쇄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경비는 이들의 지시에 따라 문을 잠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11월 2일 현재까지도 화재에 대한 조사 보고서는 제출되지 않은 상태로 재판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비즈니스 프랜들리 정책이 불러온 참혹한 사고 
사건 발생 후 청문회나 관계자들의 증언 또는 당국의 발표에 의해 알려진 사실들은 충격적이다. 알리 엔터프라이즈 공장은 불법 건축물로 적법하게 등록되지도 않은 상태였고, 한 번도 건물 점검이나 정부 조사를 받은 적이 없으며, 비상구도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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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발생 다음 날 구조 작업을 지켜보는 지역 주민들 (photo by AFP)
문제는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공장 건물이 파키스탄에 한두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파키스탄 노동자 연맹(All Pakistan Labor Federation)에 따르면 공공부분이건 사기업이건 산업안전보건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공장 건물, 특히 사기업의 경우는 비상 탈출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하면 건물 안에 갇힐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노동자가 사망한 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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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 발생 다음 날 공장 건물 밖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며 슬퍼하는 어머니들(photo by Reuters)
파키스탄에는 노동안전보건에 관한 법률이 별도로 없다. 다만 1934년 만들어진 공장법(Factories Act 1934) 아래 1963년에 만들어진 위해 직업 규칙(Hazardous Occupation Rule 1963)에 안전보건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안전보건 규정을 위반해도 처벌 받지 않을 뿐더러, 공장법은 노동자 보호를 소홀히 한 경우 사용자에게 500루피(약 5,700원)의 벌금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파키스탄에서 안전 설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사용자는 그간 한명도 없었고, 사용자들은 관료들의 비호 아래 안전보건을 무시한 채 사업을 하고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파키스탄의 허술한 노동법과 법을 어겨도 규제가 거의 없는 부패한 문화가 불러일으킨 참사였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신드 주의 경우는 근로 감독을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되어 있지 않다. 지난 신드 주 주정부에서 근로 감독 자체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신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산업 및 비즈니스 프랜들리(business-friendly. 친기업) 환경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2003년 근로 감독 시스템을 폐지했고, 2003년 이후 공장 건물에 대한 안전 점검이나 감독이 이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허술한 노동안전보건은 같은 날 펀자브(Punjab) 주(州)의 라호르(Lahore)에 위치한 신발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라호르에서는 이날 화재로 25명이 사망했다. 2012년 9월 11일, 파키스탄에서 화재로 사망한 노동자는 284명이었다. 
다국적 기업의 하청공장의 노동 현실과 허울뿐인 인증제도
이번 사고는 유럽과 미국 등의 선진국에 기반을 둔 다국적 기업들이 제조 원가를 낮추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시아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현실이 불러 온 또 하나의 비극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1993년 5월 10일, 심슨 인형을 생산하던 태국의 케이더 장난감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화재로 188명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사상자가 많았던 주된 이유는 노동자들이 인형을 훔쳐갈지 모른다는 우려로 공장 문을 잠가 놓은 데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부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을 잠재적 도둑으로 여기며,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보다 상품 몇 개의 도난으로 인해 자신들이 입게 될 손해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화재가 발생한 알리 엔터프라이즈는 유럽과 미국에 기성복을 수출하는 의류 회사다. 약 1000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한 달에 5,000~10,000루피(한화 약 5만 7천원~11만 4천원)의 임금을 받고 청바지, 니트 등의 의류를 만들었다. 알리 엔터프라이즈의 주된 고객은 독일의 KIK라는 저가 의류 회사로 사고 당시에도 KIK에 납품할 의류를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사건 발생 이후 KIK는 하청업체들이 안전 규정과 노동법을 준수하도록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로는 KIK가 2007년에 카라치 공장에서 실시한 안전 점검에서 화재 안전 관련 문제가 있음을 파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KIK는 2011년에 이러한 안전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KIK는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망 노동자 1인당 2,000달러(한화 약 220만원)의 보상금을 희생자 가족에게 지급하겠다고 밝혔으나, 피해자 가족들과 노동조합은 이 금액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들어 해외에서, 특히 선진국에 기반한 다국적기업의 하청 공장들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나 열악한 노동 현실에 관한 고발들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경향이 있다. 바로 노동 조건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는 단체 또는 비영리기구를 통해 문제가 발생한 사업장을 조사하거나, 또는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겠다는 기업들의 선언이다. 마치 ‘에코’라는 라벨을 붙여 친환경이라는 가치 자체도 상품화해서 팔아버리는 것처럼, 각종 감시 기구나 인증 제도 참여를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 윤리적 경영을 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이를 마케팅의 일환으로 삼아 수익 창출에 이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알리 엔터프라이즈는 사건 발생 3주 전에 이탈리아의 인증 회사인 리나(RINA)를 통해 SA8000 인증서를 발급받았다. SA8000은 작업장 안전보건을 비롯하여 아동노동, 강제노동, 차별, 가혹행위, 노동시간, 임금수준, 모성보호,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교섭할 권리 등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이 보호되고 있는지 여부를 회사의 정책, 절차, 문서 등에 대한 감사를 통해 파악하고, 문제가 없을 경우 질 좋은 일자리(decent work) 임을 인증해주는 국제 인증 제도이다. SA8000 인증 과정은 SAI(Social Accountability International)라는 비정부단체가 관리하고 있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21개의 인증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 리나도 그 중 하나로 이탈리아계 회사이지만 카라치에 지부를 두고 파키스탄에서만 100여개의 회사에 인증을 부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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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발생 후 알리 엔터프라이즈의 내부 모습(source: http://tribune.co.pk)
이러한 인증을 받는 관행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기업의 자발적인 인증 노력도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안전보건을 향상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그러나 안전보건 제도가 강화되어 모든 노동자가 법적으로 보호 받는다면 이러한 인증 자체가 불필요할 것이다. 왜 이러한 인증을 받는 기업들이 서구 유럽이나 영미권 국가에 위치해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면 뻔한 일이다. 게다가 이러한 인증이 실제 노동 조건이 자격을 충족하지 못하는 데도 발급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만약 알리 엔터프라이즈가 정말로 기본적인 규정들을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면, 혹은 인증을 위한 감사가 제대로 실시되어 이러한 문제점들이 개선되었다면 수많은 목숨이 화재 속에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인증을 발급해준 리나도 이번 사건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SA8000과 같은 인증제도의 신뢰성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기업이 노동자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안전하고 윤리적으로 경영하고 있음을 감시해야 할 단체들이 형식적으로 조사를 실시하고, 조사를 의뢰한 기업에 면죄부를 부여하여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에 기여하는 시스템으로 악용되는 것은 누가 감시해야 하는가. 이러한 단체들이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자신들의 수익 창출 수단으로 삼는 것을 어떻게 감시할 것인가도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